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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사도행전

▼ 사도행전 17:24-34 바울의 전도 설교에서 배우는 것

by 朴 海 東 2016. 2. 15.

아레오바고 언덕위의 설교에서 배우는 것

사도행전 17:24-34

묵상내용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지만 범죄하고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은 더이상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어두워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피조물]을 우상으로 만들고 이것들을 신으로 섬기게된다

저 유명한 소크라테스를 배출하였고 에피쿠르스, 스토아 학파같은 학자들을 배출한
철학의 도시 아덴의 사람들 조차도 온 도시에 우상을 가득히 만들어놓고
섬겼던 것을 보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무지와 지식의 한계를 보게된다.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아테네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접촉점으로써 이미 루스드라의 설교에서 했던 것처럼[행4:15-18]

하나님의 일반은총[일반계시]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특별은총[특별계시]로
연결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게 되는데 특히 그가 아테네 사람들에게
우상 숭배의 헛됨을 강조하기 위해서
당대의 어떤 유명한 시인들의 詩 귀절까지 인용하는 것을 보면 [17:28]

이방인 전도의 접촉점을 가지기 위해
그는 얼마나 폭넓은 인문학의 지식도 습득하고 있는지 엿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열어주기 위해서 바울이 사용한 일반계시나
인문학의 인용에 많은 설명과 시간을 활애함에 비해서
정작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예수님과 복음에 대한 말씀이 짧게 한두 절로만
소개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왠지모를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17:31-32]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덴에 내려오기 전에 전도했던 도시들에서는
많은 전도의 열매가 있었고 어김없이 교회들이 세워지는 역사도 있었는데
유독히 아덴에서만은 겨우 몇 사람만 믿고 그를 추종할 뿐이요 [17:33-34]
교회 설립의 기초도 놓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보면서 큰 아쉬움이 남는다

정작 바울 자신도 아덴을 떠나 그 다음 도시인 고린도에 들어가서는
철학의 도시 아덴에서의 아쉬움과 자신의 부족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는데
아마 아덴의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있었던 그의 설교에 대한 반성으로 보여진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린도전서 2:1-5]

--------[ 교훈과 적용 ]---------

유명한 철학의 도시 아덴의 아레오바고 언덕위에서 외쳤던 바울의 설교는
그의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을 유감없이 드러낸 명 설교였는지 모르지만
겨우 몇 명의 사람들만을 얻었을 뿐이요

그가 아덴을 떠나 찾아간 그 다음 도시 고린도에서 뻐아픈 반성과 다짐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오늘의 말씀에 대한 적용은
저절로 바울의 고린도 고백에서 찾아보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이방인 전도에 있어서
그들의 무지를 깨우치기 위해 일반계시나 문화 인류학적 접촉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주류를 이루고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복음에 크게 강조점을 두지 않으면
사람들의 영혼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전도할 때 전도의 대상들이 철학의 도시 아덴 사람들처럼 유식한 사람들이든
루스드라의 사람들처럼 사람을 신으로 숭배하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이든 무론하고
사람들의 영혼 속에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도에 촛점을 맞추어 전도해야 할 것을 이 아침 새롭게 다짐한다.

기도하기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는 것이 말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