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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 사사기*

▼ 사사기 1:1-21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나안 정복전쟁 참전기

by 朴 海 東 2016. 2. 15.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나안 정복전쟁 참전기

사사기 1:1-21

묵상내용

오늘의 말씀에 소개되는 가나안 정복전쟁의 이유와 의미는
이스라엘의 혈통과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시대에 근원적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그 땅 가나안에서
친히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고
이 약속은 이삭을 거쳐 야곱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스라엘을 민족 단위로 성장시키고 위해
세계의 곡창지대인 애굽으로 이주하게 만드셨으며

후에 그곳에서 그들은 애굽의 노예들이 되었으나
하나님은 민족의 지도자 모세가 나오게 하시어
출애굽의 대 역사를 이루게 하셨고
또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를 통하여 가나안 정복을 이루게 하셨다

그러나 여호수아 시대의 가나안 정복은 구석구석까지 정복한 것은 아니고
가나안의 전략적 요충지가 되는 산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하신 것이어서
이제 이곳들을 중심으로하여 이스라엘은 산지 아래 평지의 구석 구석까지
정복해 나가야하는 싸움을 남겨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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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구체적인 정복전쟁의 선봉에
유다지파가 나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믿음의 사람 갈렙의 혁혁한 분투와 전공을 보여주는 것이 이채롭다

갈렙은 이미 가데스 바네아에서 10명의 정탐꾼들의 불신앙적 고백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불신하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쓰라린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그 누구보다 더 하나님께서 이미 이기게하신 싸움을 나가서 싸워 쟁취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 앞장 서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가나안 정복전쟁은 이스라엘이 나서서 싸우는 전쟁이지만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이미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신 싸움에 쓰여지는 것이며
싸움의 실제적 주체자는 하나님 이시어서
아브라함 시대에 하신 약속을 성취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이 치뤄내고 있는
전쟁 인 것을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1:2,4,19]

-------------[ 교훈과 적용 ]--------------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오늘의 말씀에 소개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전쟁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나에게도 동일한 전쟁이 있고 내가 참여해야 할 정복전쟁이 있는가 하는 관점으로
오늘의 말씀을 묵상할 때 주님께서 주신 지상대명령과 나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1. 밖으로 향한 싸움 : 주님의 지상대위임령과 나

--- 예수께서 나아와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지키게 하라
---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마18:18-20]

이스라엘 민족이 이교도들이 살고 있던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성취해가시는 하나님의 나라 건설과 확장을 위해 싸웠듯이

오늘 나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로써
모든 열방과 민족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주권 영역이 확장되어가며
모든 무룹을 그리스도 앞에 꿇게하는 일을 위해서 지상명령에 순종해야한다.

이것은 교회의 선교를 통해서 이루어질 일들로써 내가 보냄받은 선교사로서
혹은 보내는 선교사로서 이 영역 주권싸움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선교지 교회중 하나인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우리에게도 동일한 싸움이 있다는 것을 알렸는데 그것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한
싸움이 있다고 했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싸워나갈 때 접전하게 되는
세력들의 만만치 않음을 경계하고 있다 [엡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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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으로 향한 싸움 : 성령의 도구가 되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밖으로 향한 싸움에 신실한 참여자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자신을 이 거룩한 성전에 드릴마한
사람으로 헌신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베드로 사도는 이 거룩한 영적 전쟁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전쟁에 참여할 만한
무장을 갖추기 위하여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싸움에서
승리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참전하고자 하는 정복전쟁은
하나님의 싸움을 대신하는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에
내가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실패하고서는
나의 밖으로 향한 정복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12]

실제 교회 사역에서나 선교지 사역에서
성령을 좇아 행하는 일에 자신을 올인하여 자신을 성령의 도구로 드리지 못하고
육체의 소욕에 넘어지고 죄의 도구가 되어지면
그 다음 이어지는 거룩한 성전으로써 정복전쟁은 이미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교지에서 말씀사역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을 부단히 성령의 도구로
드리기 위해 거룩한 제물로 자신을 헌신하는 성결의 싸움인데
이것은 마귀가 작심하고 노리는 바이며 여기서 승리하면 다 이기는 싸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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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포기하지 말고 믿음으로 원척적인 승리에 참여하고 쟁취하기 [1:21]

오늘의 말씀 마지막 구절에서는 가나안 정복전쟁을 포기하고 가나안 이족과
적당히 동거해버린 베냐민 지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이 곧 나의 모습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신앙생활은 싸움이다.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소욕에서 이겨야하는 자신과의 싸움이며
세상과 또 세상을 이용하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겨야하는 싸움이면서
또한 내가 성령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전진시켜 나가야하는 싸움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드리는 선한 싸움을 포기할 때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가치와 의미는 상실해 버리는 것이다

여호수아 시대에 이미 원천적으로 승리해놓은 싸움을 근거로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주도해가시는 싸움에
여호수아 후 세대가 믿음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처럼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다 이겨놓으신 원척적인 승리를
나의 것으로 삼고 나로하여금 승리하게 하려고
주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나가면
나도 갈렙처럼 용맹하게 분투하는 주님의 용사로 승리할 수 있음을 믿는다

그러나 만일 내가 이 싸움을 포기하고
베냐민 지파처럼 적당히 가나안족과 동거하듯 세상과 죄와 타협하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살아간다면 나는 패배감에 젖어사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기도하기

여호수아 시대에 이미 쟁취한 원척적인 승리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여호수아 후 세대가 쟁취하며 믿고 나가는 것이 필요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지 쟁취한 원척적인 승리와
내가 승리하도록 보내주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나도 갈렙의 용맹과 분투 정신으로
주의 나라를 받들어가는 천국일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