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성서당/사무엘상

▼ 사무엘상 15:1-9 부분적인 순종은 참 순종이 아니다

by 朴 海 東 2016. 2. 17.

부분적인 순종은 참 순종이 아니다

사무엘상 15:1-9

묵상내용


삼상15:1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사울을 다시 보지 않을 것처럼 사울에게서 왕위가 떠날 것이라고 경고했던 사무엘이 갑자기 다시 나타났다. 어찌 된 일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사무엘도 다시는 사울을 만나고 싶지 않았겠지만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다시 한 번 사무엘을 보내서 기회를 주시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블레셋과 대치했던 저 믹마스 전투의 날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제사를 드려버린 사울의 망령된 행동에 대해 왕위가 떠나리라고 경고했었지만 다시 한 번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전의 실수를 만회하고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렸던 마음을 회복할 참 좋은 기회가 사울에게 찾아온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사무엘은 말한다 “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적용] 하나님은 우리가 실수하고 기쁨보다 실망을 안겨드릴 때 부모가 자식 나무라는 것처럼 심한 경고성 책망을 하시므로 우리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본심은 아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사를 주심에는 후회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가 다시 바로 서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이점은 내가 잘 분별해서 잊지말아야 할 중요한 교훈이다.


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하나님은 사람들의 지난 행적에 대해서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그냥 지나치는 분이 아니시다 결코 잊지 않으시는 분이신 것을 아말렉에 대한 심판에서 보여 주신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행진해 나갔을 때 아말렉 족속은 갑자기 출몰하여 이스라엘 행진 진영의 후방을 교란시키고 약탈하며 피해를 입혔는데 아마 당시에 가장 피해를 입었던 지파는 단 지파 였다.
그 때 이스라엘의 행진 대열을 보면 맨 앞에 유다지파의 사자 깃발이 앞장을 섰고 맨 후방에는 단지파의 뱀 깃발 문장[후에는 뱀의 천적인 독수리 문장]이 후방을 지켰는데 단 지파 중에서도 공동체의 행진에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고 한 눈을 팔거나 게을러서 뒤에 처지는 사람들이 주 표적이 되었다

어찌 되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혔던 아말렉 족들이 본래는 강도떼처럼 사막에서 사는 자들이었는데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것처럼 이스마엘 족속이 거주하는 지역에 자신들의 성읍을 두고 본거지로 삼았다는 것은 특이한 변화로 보이며 이제 사울은 하나님의 심판 집행적 성격을 가진 전쟁 수행을 위해 그들의 성읍을 향해 진격하게 된다.

이제 아말렉의 심판이 임박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지금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대적하는 세력들에 대해 반드시 응징하시고 심판하실 것인데 그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성도가 세상에서 아무리 시련을 당한다 할찌라도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는 “Comming Soon”의 시제를 가지고 살아야 되겠다


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사무엘을 통하여 전달되는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자비하신 하나님이 무자비하신 하나님으로 비쳐질 수 있는 요소들이 보여진다
왜 아말렉을 진멸하는 과정에서 어른들은 몰라도 어린 아이와 심지어는 젖 먹는 아기들까지 다 죽이라고 하시는가....(?)
안티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크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 바로 이런 점들인데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 전에 또한 결코 죄를 용납지 않으시는 공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시는 것이며 특히 죄에 관한한 얼마나 철저하게 응징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신가를 보여주신다. 두렵고 떨린 이 말씀 앞에서 나도 죄에 관한한 조금의 타협점도 없이 죄를 제거하고 물리치는 일에 얼마나 철저해야 하는지 이 말씀 속에서 배운다.
주님 ! 제가 깨달은 바대로 행하며 실천하게 하소서 !


4 사울이 백성을 소집하고 그들을 들라임에서 세어 보니 보병이 이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만 명이라


전쟁을 위한 소집 나팔이 울리고 전령들의 군사모집이 12지파 전체에 퍼져나갔는데 보병 이십만명이 소집 되었다는 것은 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지난 번 불레셋과의 믹마스 전투에서는 삼십 만 명이 모였고 유다지파가 3만 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항상 이스라엘의 공동체 사역에 앞장섰던 유다지파가 적극적이지 못하고 가장 큰 지파임에도 불구하고 지원병이 1만 명 이라는 것은 왠지 모르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성경이 굳이 다른 지파는 제쳐놓고 유다지파의 지원 병력이 1만 이라고 밝혀서 강조하는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가장 앞장 서야 할 사람들이 소극적으로 나오는 것에 대한 실망의 여운이 이렇게 남겨지는 것일까....


6 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 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


1)“ 너희는 아말렉 사람들 중에서 떠나라 ! ”는 이 말씀이 오늘 나의 가슴에는 매우 크게 들려오는 소리다. 내가 오늘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녀로써 마땅히 떠나야 할 것들에서 떠나지 못하고 함께 동거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마땅히 떠나야 되고 구별되어 있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함께 섞여 있으면 동일하게 취급받고 동일하게 심판받게 될 것에 대한 경고를 아말렉 중에 섞여 살았던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손들인 겐 사람들에게서 배우게 된다.

주님! 제가 마땅히 떨어져 나와야 할 일들과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오게 하소서
떨어져 나올 때 그동안 가졌고 누렸던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일들도 있겠지만 미련을 두지 않고 과감히 떠날 수 있게 하소서 !

2)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손들인 겐 사람들이 이렇게 아말렉을 심판하는 자리에서 떨어져 나와 구원받게 되는 것은 그들이 지난 날 하나님 앞에서 행한 선행의 보응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괴롭힌 아말렉의 지난 날 악행을 기억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처럼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선대했던 겐 족속의 선행도 기억하시는 분인 것을 보여주심으로 우리[내]가 주님 앞에서 행하는 어떤 일 하나라도 다 기억하신 바가 되며 그에 따른 상급이 있을 것을 가르쳐 주신다


7 사울이 하월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기 아말렉 사람을 치고
8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 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의 용맹성이 다시 한 번 유감없이 발휘되어 아말렉을 진멸시키는 이 장면에서 사울의 용맹성도 칭찬 받아야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지금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는 싸움을 싸우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이 전쟁을 수행하기 전에 사무엘을 통하여 전달해주신 말씀 곧 아말렉에 속한 것은 실오라기 하나도 탐내서는 안되며 전쟁의 승리에 당연히 따라오는 전리품도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을 그는 유념해야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씀에서 사울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또 한 번의 기회를 자신의 탐심으로 또 다시 날려 버리는 안타까운 모습을 본다.


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사울의 탐심에 백성들이 현혹된 것일까 아니면 백성들의 탐심에 사울이 현혹된 것일까 알 수 없지만 왕과 백성 모두가 아말렉에 속한 기름진 양과 소와 모든 좋은 것들을 보았을 때 그들은 탐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게 된다.

설령 백성들이 그렇게 탈취한다 하여도 말려야 하는 사울이 백성들과 한 통속이 되어 탐심의 야욕을 채우고 있었으니 탐심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말씀이 보이지 않고 기억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양심의 소리는 있었는지 가치 없고 하챦은 것들은 진멸했다고 했는데
기실 이런 부분적인 순종은 참 순종이 아닌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죄악은 탐심의 죄악인 것 같다. 바울 자신도 이 탐심은 곧 우상숭배 죄와 같은 것이며[골3:5] 또 이 탐심 때문에 괴로워하는 갈등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고 단발마의 비명처럼 외쳤는데 [롬7:7,-24]

그리 큰 죄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마치 감기가 만병의 시작인 것처럼 모든 죄악의 뿌리가 되는 이 탐심의 죄야 말로 내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기는 동안에 매일처럼 회개하며 경계하고 기도해야 할 제목으로 받아들인다.

기도하기

주님 !
모든 죄악의 시발이 되는 이 탐심의 죄로부터 나를 지켜 주소서
오늘 나에게 일용할 것이 있음으로 감사하게 하시고
많이 쌓아두지 못했음으로 내일을 염려하지 않게 하시며
하루 단위의 삶으로 청빈하고 거룩하게 살아갈 은혜를 주옵소서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위로삼고
다만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힘차게 살아가는 종이 되게 하소서

나의 눈으로 들어와 마음의 탐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도 많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되
부분적인 순종이 아닌 온전한 순종으로 헌신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