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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사무엘하

▼ 사무엘하 14:25-33 너무 늦은 화해

by 朴 海 東 2016. 2. 18.

너무 늦은 화해

사무엘하 14:25-33

묵상내용


1. 사람은 외모로 행복하지 못하다 [14:25-26]


오늘의 말씀에서 흠잡을데 없는 압살롬의 외모에 대해 말하면서
더욱 특별히 그의 머리칼에 대해서 말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성경의 저자는 곧이어서 나오는 압살롬의 반역에 대해서 언급하기 전에
먼저 그의 출중한 외모와 사람들의 칭송을 전제함으로써
그가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매력이 있었다는 것과
이에 따른 국가 반역이 따라올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런데 그가 자랑할만한 외모로써 더욱 특별히 머리카락을 언급하는 것은
이 자랑할 만한 머리칼이 오히려 그의 생명을 앗아가는 화가된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말씀에서 보게되는 것처럼
그는 자기의 부왕인 다윗을 향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수풀에서 싸우는 중
노새를 타고 달리다가 이 머리카락이 상수리 나무에 걸려서
결국은 이 머리카락 때문에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요압의 창 끝에 찔려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삼하 18:9-15]

그러고보면 압살롬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받고 자랑할 만한
외적 요소들이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반역하는데 사용되었고
그로 인해 화를 당하여 비참한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보면서

오늘 내가 자랑할만한 외모나 매력이 오히려 나에게 강점이 아닌
약점이 되고 불행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교훈으로 받아 드린다

나는 그리 잘난 것도 없고 자랑할만한 것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혹여 잘 생기고 잘난 것이 있는 것 때문에 교만해져서
이런 것들이 나에게 복이 아니라 화로 작용하여 나로 하여금
파멸로 가게되는 일이 없게 되기를 이 아침 겸손히 기도드린다

2. 사람은 자식 잘 둔 것으로도 행복하지 못하다 [14:27]


성경의 저자가 압살롬의 자식들을 아들 셋, 딸 하나로 언급하며
그 딸은 자신의 고모인 다말의 이름이나 아름다운 미모를
그대로 물려받은 점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는 자녀 문제에 있어서도 그 누구도 남부럽지 않은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처럼 다복하며 예쁘게 잘 자라준 자식들이라도
그에게 행복이 되지 못한 것은 그는 다윗 왕가에 반역을 도모하여
그의 자식들까지 모두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낳은 자식들이 많거나 적거나 혹은 잘났거나 못났거나
이런 것들이 중요하고 행복의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이 되어야하고
믿음으로 잘 키워진 자식들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을 암시받는다

3. 사람은 서로 얼굴 맞대고 소통하며 살아야 행복하다 [14:28]


압살롬은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모든 외적 조건을 갖추었고
남부럽지 않은 다복한 자식들과 가정도 이루었지만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 안에 살면서도
부왕인 다윗의 얼굴을 무려 2년 동안이나 보지 못하고 살았으니
그가 얼마나 불행한 시간들을 보내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러한 압살롬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도 될 수 있으니
내가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할만한 내가 속한 교회에서
목사님과의 관계나 장로님과의 관계 혹은 성도 상호 간의 잘못된 관계로
마음을 닫고 살 때에 그것은 마치 아비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살았던
압살롬의 불행같이 되어지는 것이며
이것은 더 나가 나에게 자비의 얼굴을 비쳐주실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사는 것처럼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압살롬이 이태 동안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살아간 [14:28] 이 불행이

내가 하나님의 교회에 속해 있지만 사람들과 막힌 관계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하신 얼굴을 보지 못하고 사는 것 같은 불행이 되며
더 나가 은혜 받지 못한 마음에 쓴 뿌리가 차 올라서
마침내 교회를 해롭게하는 자로 까지 변질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왜 압살롬은 자신이 직접 그의 부왕인 다윗을 찾아가지 못했을까 ...(?)
그의 마음은 자신이 먼저 나서서 아비의 얼굴을 구하며
아비의 은총을 구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웠을까...(?)
결국은 모든 불행의 근저에는 내가 나를 낮추지 못한 교만이 있음을 본다

묵상적용


4.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붙어 나는 놈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내려다 보신다 [14:29-31]


성경의 저자는 압살롬이 자신의 아비 다윗을 대면하기 위하여
자신이 직접 나서기 보다 요압을 불러내서 그를 다리로 삼아
아비 다윗에게 나아가기를 도모하는 중
요압이 자신의 요청에 응답이 없자 요압의 밭에 불을 싸질러서
마침내 자기 발로 찾아오게 만드는 과격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다윗 왕국에서 다윗 다음으로 2인자라고 할만한 요압이라는 사람도
사울의 군장 아브넬을 죽이는 과정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 성깔이나 사람됨이 보통이 아닌것이 분명한데

압살롬이 요압에게 이런 정도의 엽기행각을 벌인 것을 보면
과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붙어 나는 놈 있다는 말처럼

압살롬은 요압보다 한 수 위고 이런 성깔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이어서 나오는 역모와 반란의 주모자가 될 만한 사람이었던 것을
성경의 저자는 그려내고 있는 것같다.

그러나 뛰고 날고 붙어 날아보아도
가장 위에 계신 분의 은혜가 아니면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요압에게 행폐를 부려서라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고했던
압살롬의 성깔과 엽기적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오늘 하나님 앞에서 나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어떻게하고 있는 사람인가를 돌아 본다.

시쳇말로 세상의 싸움에는 더 성깔있고 기가 센 사람이 이기는 것 같지만
이렇게해서 얻어내는 결과는 압살롬의 경우처럼
도리어 파멸로 가는 지름길 이라는 것을 교훈으로 받으며

나의 성질을 죽이고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져서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내가 나갈 길을 찾아야 할 것을 마음 깊이 다짐한다

5. 너무 늦은 화해와 용서 [14:33]


많은 교훈들을 시사하고 있는 오늘의 말씀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깊은 교훈으로 마음에 닿아지는 구절은 마지막 절에 나타난
다윗 왕과 압살롬의 때 늦은 만남이며 너무 늦은 화해이다.

이 때 다윗은 진심어린 화해와 용서의 입맞춤을 한 지는 모르지만
압살롬은 그렇게 받아 들이지 않은 것같고
마치 가륫유다가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께 입맞춤을 한 것처럼
압살롬은 화해의 입맞춤을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 그것은
이어지는 15장의 말씀에서부터 압살롬의 반역 음모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너무 늦은 만남과 너무 늦은 화해가 이런 화를 키운 것 같다
그러고보면 용서와 화해에도 때와 기회가 있는 것이며
용서와 화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을 이 두사람의 만남에서 본다

오늘 내가 화해하거나 용서하야 할 사람을 직접 챙기지 않고
미뤄놓고 있는 대상은 없는지 .... 나의 주변을 살펴보게된다

다윗의 실수처럼 용서하되 너무 늦지 않게 되도록 할 것이며
압살롬처럼 용서를 구하되 너무 늦게 구하지 않게 되기 위해서
용서나 화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교훈을 마음 깊이 받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