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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 열왕기하 *

▼ 열왕기하 23:21-30 화액 전에 데려감을 당한 요시야의 죽음을 묵상함

by 朴 海 東 2016. 2. 23.

화액 전에 데려감을 당한 요시야의 죽음을 묵상함

열왕기하 23:21-30

묵상내용

다윗 왕국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빨리 데려갔으면 좋을 것 같은 악한 왕이 있는가 하면 더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일찍 데려가신다고 애석해 하는 왕들도 있습니다.
악한 왕이면서 장기간 통치하고 가는 “므낫세”는 무려 55년을 다스리고 67세에 죽게 되는가 하면 기울어가는 유다를 다시 일으켜 세워보려고 개혁에 개혁을 거듭했던 요시야 왕은 개혁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39세[8+31]로 마감하는 애석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추진에서 나타난 “유월절”의 부활을 보여주고 있으며[23:21-22] 한 걸을 더 나가 그 땅에 모든 우상과 미신적인 것들 그리고 가증한 것들을 제거시킨 것을 보여 줌으로 그의 종교개혁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23:24]

그리고 이러한 개혁의 이면에는 그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발견한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적고 있으며 열왕기 저자는 요시야 왕의 한 평생에 대한 평가를 그가“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따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이어지는 말씀은 이 거룩함으로 불타는 종교개혁의 선봉에 서서 이 나라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우고자 했던 이 개혁가 요시야 왕이 아직 더 일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39세의 나이로 그의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가 죽게 되는 직접적이고 표면적인 이유는 애굽 왕 바로가 앗수르 유브라데스 강을 향하여 올라가는 원정길을 막아서는 전쟁에서 죽게 되는 것으로 보여주는데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역대기의 말씀을 보면 요시야와 싸우기를 원치 않았던 애굽 왕 느고가 자신은 지금 하나님께서 시키신 전쟁을 하러 가는 길이니 길을 비켜달라고 요구하였고 요시야가 이 상관없는 싸움에 끼지 말라고 부탁하는바 요시야는 그래도 끝까지 싸우기를 원해서 변장하고 싸우고자 하다가 활에 맞아 죽게 됩니다. [23:29]
그런데 역대기 저자는 애석한 요시야의 죽음에 대해 짧은 해설을 달고 있는데 그것은 요시야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애굽왕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한 결과라고 적고 있습니다[대하 35:21-23]

그러나 어찌 죽게 되었든지 이 거룩함으로 불타는 종교개혁가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볼 때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더 깊은 섭리가 숨겨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미 유다를 향하여 타오른 하나님의 진노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고 애굽 왕 바로가 돕기 위해 원정길에 올랐던 앗수르와 자웅을 겨뤄서 이기게 되는 바벨론에게 유다의 운명이 맡겨질 것이었기 때문에 이 비극이 날이 오기 전에 미리 데려감을 당했다고 이해하게 됩니다.

요시야의 죽음에 대해 온 백성들이 얼마나 슬퍼했는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역대기에서 소상히 밝히고 있는데 [ 대하35:24-25] 그러나 그의 애석한 죽음 이면에 오직 하나님의 숨은 섭리가 있음을 이사야의 글을 통해 엿보며 이 거룩한 종교개혁가의 죽음에 대한 의미로 받아 드리게 됩니다.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로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 [이사야 57:1-3]


한 편 요시야가 애굽 왕 느고와의 전투에서 죽었기 때문에
평안한 죽음이 아니었다고 곡해할 수 도 있겠지만
이미 그의 죽음이 조상들에게로 가기 위해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는 죽음이라고
여선지 “홀다”를 통해 전달 받은 것이 있기 때문에

비록 한 창 일할 나이에 데려감을 당한 것이나
혹은 애굽 왕과의 전투에서 죽은 것에 대한
안타까운 애석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죽음은 평안한 죽음이요
복 있는 자의 죽음이라고 받아 드리게 됩니다[22:20]

주님 !
이 세상에서 내가 살다 가는 한 평생을
길고 짧음으로 평가하지 않게 하시고
예수님처럼 사도들처럼
그리고 요시야 왕처럼
하루를 살아도
천 날의 의미를 담은 날들로 이어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