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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에스겔

▼ 에스겔 14:12-23 대리적 보응

by 朴 海 東 2016. 2. 23.

대리적 보응

에스겔 14:12-23

묵상내용

[오늘의 말씀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

주전 597년 유다의 실제적인 마지막 왕 여호야긴이
바벨론 왕에게 포로로 잡혀 갈 때
함께 인질로 잡혀갔던 1차 포로민들 대부분은
아직도 그 땅 바벨론에 마음을 붙여 살지 못하고
곧 다시 예루살렘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며
정처 없이 살아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에스겔에게 찾아와서
나라의 장래와 운명을 묻고 있는 장로들에게 [14:1]

에스겔은 너희가 하나님도 위하고 우상도 위하는
두 가지 마음을 품고 선지자에게 와서
묻지 아니해야 한다는 경고에 이어서[14:1-11]

오늘의 말씀에서는 지금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곧 닥칠 심판의 재앙으로 이 곳으로 끌려오게 될 것이니
너희만 불운해서 억울하게 이곳에 잡혀 온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심판에는 분명한 이유와 근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므로 이것이 그나마 너희에게 위로가 되어(?)
너희 생각이 바뀌게 될 것이고
너희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며
그나마 포로 된 땅에서라도 마음을 붙이고
살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4:23]

1. 대리적 보응

그런데 당시 1차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나
본토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바벨론이라는 풀무 불 고난을 통해
일정 기간 동안 죄악에 찌든 자신들을 정화시키려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뜻을 알지 못하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노아/다니엘/욥의 신앙과 같은
좋은 신앙의 조상들을 많이 두었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는 안전하리라는
헛된 망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의 말씀은 한 나라나 각각의 개인과 관련하여
하나님 앞에서 어떤 한 사람의 의[공의]가
그와 관련된 다른 사람을 대신하는 대리적 보응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14:2-21]

천주교에서는 대리적 보응이라는 교리를 통해서
대리적 보응의 혜택을 강조하기도 하는데
오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 옳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천주교의 대리적 보응 교리를 보면
성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구원할 만한
의가 충분히 차고 넘침으로 그 의를 다른 사람에게도
줄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기 때문에

이 같은 타인의 대리 - 보응적인 의를 힘입기 위해
성인들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성인들의 유품을 사기도 하고 고행과 선행을 통해
이미 지옥에 가 있는 가족들을 연옥에라도 올려서
낙원[천국]에 들어가게 하려는 시도들도 있는데
오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 이런 것들이 얼마나
비 성경적이며 어리석은 일인지 잘 이해하게 됩니다.

더불어 인간의 대리적 보응을 철저히 배제 시키는
오늘의 말씀은 인간 역사가 생긴 이래로
이 세상에 존재했던 그 어떤 훌륭한 인물이라도
결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알게 함과 아울러

오직 하나님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사람의 아들로 우리에게 오셨던 예수님만이
사람의 유일한 대리적 대속 적 구원자 되심을
더욱 환한 계시의 빛으로 깨닫게 됩니다.

주 예수님 !
우리에게 훌륭한 믿음의 조상들인
노아/다니엘/욥과 같은 훌륭한 인물들 뿐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의인들을 다 합한다 하여도
그들이 나의 구원을 위한 대리적 보응이 될 수 없으며

오직 한분 주님의 대리적 대속적 희생만이
나와 우리 민족에게 의와 평안을 가져오게 하고
우리 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오직 한분 주님으로 인하여
우리가 희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