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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에스겔

▼ 에스겔 42:1-20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의 환상 바르게 이해하기

by 朴 海 東 2016. 4. 20.
에스겔 42:1-20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의 환상 바르게 이해하기

 

40장에서 시작된 성전 척량이 42장까지 이어지는데
마지막 척량은 성전 삼면 뜰과 인접하여
지성소를 마주한 북쪽의 방 두개와 남쪽의 방 두개
그리고 최종적으로 성전 담장 척량으로 마쳐집니다

1. 제사장들의 방 [42:1-14]

그런데 이 방들이 어떤 방이기에 오늘의 말씀은
성경의 거의 한 장을 여기에 활애하고 있는지
매우 긍금한 생각이 듭니다.

척량하는 천사는 이 방들이 거룩한 방이라고 하는데
이 방들이 거룩한 방이 되는 이유는
여호와를 가까이하는 제사장들이
이 방에서 지성물을 먹으며
또 소제와 속건제 속제죄의 제물을 보관하고 더불어
제사장의 옷을 갈아 입는 방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사장들의 방은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바깥뜰에서 일곱 계단을 올라오고
또 안뜰에서 여덟 계단을 올라온 성전 뜰에도
제사장들의 방이 있었는데 [40:44-45]
그 방들에 대해서는 거룩한 방이라고
별칭이 붙지 않았던 것을 감안해볼 때

10 계단을 더 올라와 지성소를 향하여
성전 삼면 뜰에 붙어 있는 방들이기에
그리고 제사장들이 여기서
성전 제사에서 물려낸 지성 물을 먹으며
여기에서 제사 의복을 갈아입는 곳이기에
이런 호칭이 붙은 것 같습니다[40:13-14]

-------[교훈과 적용]-------

성전에 부속된 많은 방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거룩한 방이라고 호칭을 받은
제사장들의 방에 대해 강조하는 오늘의 말씀은

오늘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특별히 거룩한 성도라고 호칭을 받으며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백성이라고 호칭되고 있는[벧전 2:9]
우리들의 교회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지성소에 가장 가깝게 연접하여 있는 방이기 때문에
그리고 지성소에 들어가 제사를 드리며 제물을 먹고
구별된 의복을 입는 방이기 때문에
거룩한 방으로 구별되었던 것을 생각해 볼 때

오늘 내 영혼의 지성소인 내 마음의 방에
주님을 모시고 사는 나, 그리고 때 마다
주님의 살과 피로서 성찬을 먹으며
내가 세례 받을 때 나에게 입혀진
의의 옷을 생각해 볼 때 [갈 3:27]
나에게도 거룩한 제사장의 방을 활용하는
신앙과 삶이 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속된 세상과 구별되기 위하여
바깥 뜰 성전 둘레에 3.3M의 높이와 두께로
500척[250M]이나 되는 정방형 담장이
둘러쳐저 있어서 성속을 구별했지만[42:15-20]
그보다 먼저 성전 내부에 있는
제사장들의 거룩한 방을 강조한 오늘의 말씀은

거룩한 성전을 넘보는 세상이 아무리 악하여도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 호칭 받는 사람으로서
먼저 내 마음과 주님을 섬기는 사역과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제사장의 골방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마음 깊은 교훈으로 받아 드립니다.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나의 신분과 나의 사역에
합당한 나의 골방을 갖게 하소서

그곳에서 깊이 주님을 만나며
거룩하신 주님을
잘 섬길 수 있는
나 자신을 준비할 수 있게 하소서

2. 성전 담 벽 [42:15-20]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해서
기원전 515년에 성전을 재건하고
그것을 제2성전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도 드나드셨던 당시 제2성전의 구조를 보면
이방인 분리 벽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성전 경내에 들어갈 수 있었으나
이방인은 경계선 밖에서
엄격히 출입을 통제당했습니다.
분리 벽을 통과하는 문들의 입구에는
출입금지 경고문[Prohibit]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이방인이 읽을 수 있도록
히브리어/라틴어/그리스어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 Prohibit ]-------
이 담 벽을 지나
성전 뜰로 들어오는 이방인은
자신의 죽음을 자초할 것이다.


오늘의 말씀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에스겔의 새 성전 환상과 3.3미터 두께와 높이를 가진
500척 [250 제곱미터] 길이의 정방형 담장이 주는
그 엄중한 분리의 견고함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포로에서 돌아와 제2의 성전을 재건하면서
그들은 견고한 예루살렘 성벽과 더불어
견고한 성전 담 벽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함을 수호하기 위해 세워진 이 담장은
도리어 하나님을 그 안에 가두는 결과로 나타났고
이방인들을 거부하는 폐쇄적인 결과로 나타났는데

심지어는 예수님을 믿은 초기 유대인 신자들까지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라는
주님의 지상 명령을 따르지 못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복음의 세계화를 위해
주님은 예루살렘 교회의 핍박을 허락하셨고
예수님 승천 한 세기가 지나지 못하여
주후 70년엔 로마의 장군 디투스에 의해
이 모든 성벽들은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새 성전의 환상을 보여주신 것은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된 후
그들이 지을 성전 재건의 희망을 주신 것이지만
궁극 적으로는 이 성전의 진정한 완성 자이신
예수님 오셔서 이루게 되실 새 성전으로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초월하여 모든 성도들이 참여하는
신약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성전의 각 부분과 구조들의 척량이
하나도 빠짐없이 척량되고 세세하게 기록이 된 것은
마치 우리 몸의 모든 지체와 세포 한 분자 까지도
한 몸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성전으로 지어져가는 모든 성도들은
그가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존재하며 쓰임 받게 되든지
그들은 모두가 주님 앞에서 소중하고 필요한 사람들이며
각각의 역할과 의미가 있다는 표시로서
세부적인 척량이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2:20-22]


더불어 환상의 마지막 척량을 보여주신 성전의 담 벽은
하나님을 가두는 폐쇄적 공간으로서 담 벽이 아니라
성속의 구별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을 수호하는 상징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를 대적하는 세상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게 도전해온다고 하여도
새 성전 되신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자들은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견고한 담 벽의 상징으로 이해하며 받아드리게 됩니다.

그러나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에스겔이 받은 새 성전의 환상으로써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도 없으며
언약궤도 없고 분향단도 없고
떡 상도 정금등대도 물두멍도
기타 성전의 제사 기구들이 없는
이 새 성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에스겔이 본 환상의 새 성전에
자신들의 상식을 추가하여 성전을 지었고
막강한 성전 담 벽을 둘러침으로
자신들이 지은 성전 안에 하나님을 가두고
자기들만의 하나님이 되기를 요구하다가
결국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배타주의로
성전은 파괴되고 담 벽은 무너졌으며
하나님이 흩으심으로 이방인 가운데로
사방팔방 흩어지는 운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길게 이어졌던 새 성전 척량을 마무리 짓는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 나는 에스겔이 환상 중에 바라본
새 성전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 드리는지 자신을 돌아보며
이제도 그리스도 안에서 지어져 가는 새 성전과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완성될 성전을 사모하게 됩니다.

------[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 ------

성전 자체이시며 성전 의미의 완성 자 이신
주님께서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오심으로
이 성전이 내 안에 들어왔고
내가 이 성전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과 담벽에
주님을 가두고 이 성전을 우상화시켰던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시고

이제도 주님 안에서 지어져가는
이 새 성전을 바르게 이해하며
나도 깊이 참여할 수 있는
바른 신앙과 삶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