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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느헤미야

▼ 느헤미야 10:1-31 저주의 맹세로 목숨을 건 사람들

by 朴 海 東 2016. 6. 21.

저주의 맹세로 목숨을 건 사람들

느헤미야 10:1-31

묵상내용

이스라엘은 포로에서 돌아온 후 거의 100년이 흐른 후에
예루살렘 성벽 공사를 완료하고
10개의 출입문 중에 동남 쪽에 있었던
수문 앞 광장에서 민족 대각성 기도회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드린 기도가
단순히 기도를 위한 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구속력 있는 기도가 되게 하기 위해서
기도한 내용에 대해 언약의 인을 치고 서명하게 된다.

백성들을 대신해서 서명 날인한 사람들을 보면
제사장 22인/레위 사람 17인/백성의 두령 44인
모두 합해서 83인의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한 마디로 자신들이 먼저 솔선수범하겠다는 의지의 표시였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에서 더욱 가슴 깊이 닿아지는 것은
백성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지 못해서 자신들의 이름은
올리지 못하지만 지도자들의 솔선수범을 뒤따라서 자신들도
오직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으로만 살겠다고 다짐하는
백성들의 맹세인데 그런데 그 맹세가 다른 맹세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엄중한 저주로 하는 맹세에 있는 것이다[10:29].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따라서 이제부터는
이방인과 결혼을 통해 섞여지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안식일과 성일 그리고 안식년을 잘 지키고 일곱 째 해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빛을 탕감할 것을 맹세 하게 되는데

율법과 율례의 많은 규례들 가운데서
특별히 이방인과 결혼하지 않을 것과
안식일과 안식년에 관한 규례를 잘 지키겠다는
맹세의 다짐을 선택적으로 하게 되는 것을 보면
이 두 가지 계명이야 말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좌우하는 것에
근간을 이루는 계명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노아 시대에 셋 계열의 사람들이 가인 계열의 사람들과
결혼이라는 문화를 통해 섞여지면서 급속히 부패해졌고
이로써 홍수 심판이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되는데
사단은 이 결혼이라는 문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체성을 가장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제도문화의 도구로 악용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안식일에는 물건을 사거나 팔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는 안식일[주일] 성수의 맹세는
세상 속에 섞여 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의 문제까지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엿보게 하는 맹세이며

특별히 일곱 째 해마다 땅을 쉬게 하리라는 다짐에서는
인간의 이기적 욕심 때문에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지 않을 것이며
땅에게도 안식을 주어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매 칠년 안식년[희년]이 돌아올 때 마다
채무이행이 어려워 종으로 팔렸던 자들이라도
그들의 빚을 탕감하여 돌려보내겠다는 다짐에서는
인간 존중 사상과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최소한 경제 정의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엿보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기도하고 다짐한 것들이
하나님과 자신들 사이에 구속력이 있게 하기 위해서
특별히 사람이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저주로 하는 맹세까지 채택하였는데
이는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축복과 저주의 말씀에 근거해서
자신들의 결의를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신명기 28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따르는 축복과
불순종할 때 따르는 저주가 총68절에 걸쳐서 기록되었는데
그들은 축복의 약속 열아홉 절보다 거의 세배가 많은
징벌의 저주 마흔 아홉 절에 목숨을 거는 맹세를 한 셈이다.

어찌 보면 이들의 맹세가 좀 무모한 저주의 맹세로 보이지만
그러나 이러한 이 맹세를 통해서라도
신앙공동체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겠다고 하는
절박한 마음을 엿보게 되며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다짐이며 맹세라고 이해하게 된다.

묵상적용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문 앞 광장에서 개최한 민족 대각성 기도회를 통해
하나님 앞에 새로운 신앙공동체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바르게 살겠다는 표시로 드린 저주의 맹세는

앞선 문맥[어제 말씀]에서 보여준 것처럼
사시기 시대부터 왕국 시대와 포로기에 이르기까지
구원-타락 -징계-회개-회복을 밥 먹듯이 되풀이 해온
비극적인 사이클의 역사를 청산하겠다는 표시인데

오늘 이 시대에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비극적인 사이클을 반복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강력한 도전의 말씀으로 닿아지는 말씀 이다.

사람이 준행하면 생명을 얻게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십상이 여기고 불순종하며 저버리는 이면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을 거는 자세가 없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같이 여기지 않기 때문인데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순종하기 원한다면
이런 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써
저주의 맹세는 정말 특효약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어떤 분이 성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지옥 같은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기에
이러한 죄악을 청산하는 방법으로써
저주의 맹세를 권유해 보았는데 거절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그 분에게 말하기를
이런 죄악을 청산하지 못하고 반복한다면
나에게 교통사고가 나게 해서라도
이런 죄악을 끊을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할 수 있게냐고 물어보니
그 분은 그럴 수는 없다고 대답하였다.

한 마디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보다는 죄의 낙을 따라가는 것이 좋기 때문에
아직 이런 저주의 맹세까지 가기에는 멀게 보여졌다.

오늘의 말씀에서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저주의 맹세를 보면서
내가 하나님을 진실히 섬기게 되려면
어느 수준까지 가야하는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는 도전의 말씀으로 받아 드린다.

주님!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저주의 맹세로
자신들의 의지를 주님께 드린
절박한 마음을 보면서
오늘 나는 주님을 선택하고
주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일에
얼마나 정직하고 진실한지
자신을 돌아보는 도전이 되었습니다.

주님!
내가
하나님과 세상
순종과 불순종의 기로에 섰을 때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처럼
악순환의 사이클을 끊어내는 결단으로
저주의 맹세라도 할 수 있는
진실한 신앙의 자리에 설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