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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여호수아

▼ 여호수아 24:25-33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전하는 신앙교육의 계대성

by 朴 海 東 2016. 8. 31.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전하는 신앙교육의 계대성

여호수아 24:25-33

묵상내용


1. 역사 현장의 중요성과 증거물들이 주는 교훈[24:24-28]


우리 역사에서 고구려라는 나라가 가장 강성하던
장수 왕 시절에 이 왕은 자신의 아버지가 되는
광개토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당시 고구려의 수도인
국내성[현재 중국 길림성 집안 시에 위치하고 있는데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남포 시와 마주 하고 있다]에
어마 어마한 큰 돌을 세워서 간략한 그간의 역사와
부왕의 공적을 기록하여 후대에 증거로 남기고 있다.

내가 십오년 전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아쉽게도
이 큰 돌의 기념비가 콩밭 풀숲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그간 한국인들의 방문이 많아지자 관광공원을 조성하고
지금은 큰 유리관에 넣어 보관하며 입장료를 받고 있다

오늘의 말씀 서두에 우리나라 고구려의 광개토왕비를
운운하게 되는 것은 역사의 현장이 중요하다는 것과
그 역사의 현장에 남아 있는 증거물의 중요성 때문인데

이러한 역사의 현장과 증거물들의 상관관계가
오늘의 말씀에 나오는 여호수아의 언약 갱신에
이어지는 후속 조치에서 보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세겜으로 민족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우고
이미 모세를 통해서 주셨던 언약을 갱신[재확인]하고
언약의 재 다짐을 공고히 하는 표시로써
다음 단계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것은 큰 돌을 상수리나무 아래 세우는 것이었다.

"세겜 땅 상수리나무 아래" 라는 구절에서 불현듯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처음 들어왔을 때
바로 그 장소에 하나님이 나타나시고,[창12:6]
그 때 주신 약속의 말씀이 생각나는데 그 약속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는 것이었다[창12:7]

이 때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처음 들어와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해
그곳에 돌단을 쌓았는데[창12:7]

이제 여기서 다시 한 번 왜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세겜 땅 상수리나무 아래 큰 돌을 가져다 세우고
언약 갱신의 증거로 삼고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네 자손들에게 주게 되리라는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임과 동시에

아브라함의 때로부터 적어도 오백년 이상
수명을 이어온 바로 그 상수리나무 아래에
아브라함이 돌 제단을 쌓은 것처럼
증거의 기념비를 세워서 언약의 갱신을
새롭게 하는데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호수아는 여기서 조상들의 시대로부터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그 땅 가나안을 지금 자신들의 시대에 주신 것을
증거하고 확증함과 동시에
약속에 신실하신 이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할 것을
자신의 임종 직전에 다시 한 번 확실하게 해두는
민족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다.

여호수아는 언약 갱신의 표시로 세운 그 큰 돌에
의미를 부여하여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이 돌이 들었고
너희가 부정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된다는 말에서
천지간에 무 인격체인 돌들 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증거의 표지석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앞에
일말의 두려움과 경각심이 생기기도 한다.

주님 !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처음 들어왔을 때
세겜 땅 상수리나무 아래서
자신을 나타내주시고
이 땅을 자손들에게 주리라 약속하신대로
그 약속을 여호수아 시대에 이루셨기에
이 특별한 역사의 현장에서
다시 재현되고 있는 언약의식을 보면서
주님은 정녕 모든 시대를 뛰어 넘어 살아계시고
모든 약속에 신실하신 분되심을 확인하게 됩니다.

시대는 변하고 세상 풍조는 갈리어도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영존하신 주님을
내 인생의 위로와 보장으로 삼아서
나의 장래와 후대를 맡기고 살아가는
나의 신앙과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묵상적용


2. 여호수아와 엘르아살의 죽음과 매장이 주는 교훈[24:29-33]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110 세에 죽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이 관계처럼
그의 후견인이 되었던 대제사장 엘르아살도 죽게 된다.

도피성 제도에서 가르쳐 주는 바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부지중 사람을 죽인 자는
그 성에서 나오지 말라는 말씀에서 보게 되는 것처럼
공소시효가 끝나고 한 시대가 마감 된 것을 암시하는
이들의 죽음에서 이제 이스라엘은 사사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더불어 오늘의 말씀은 여호수아와 엘르아살의 죽음과 더불어
그들이 묻힌 매장지가 어느 곳인지 까지도 상세하게 밝히는데
이는 그들이 조상들의 시대처럼 어떤 임시적 장소가 아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로 그 땅 가나안에 묻히게 된 것을
강조함으로써 다시 한 번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 에게
약속하신 땅을 주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 애굽 땅에서 죽은 요셉의 유언에 따라
출애굽 때 가지고 올라온 그의 해골 뼈도[출13:19]
요셉 자손이 분배 받은 세겜 땅에 장사한 것을 기록함으로써
이제 족장들의 시대와 애굽 노예 시대 사백년을 지나
출애굽과 광야 40 년과 약속의 땅 가나안 정복 시대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얼마나 신실하게 성취되었는가를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것으로 여호수아서가 마쳐지고 있다.


3. 생명을 걸고 해야하는 신앙 교육의 계대성 [24:31]


오늘의 말씀은 여호수아의 죽음과 맞물려서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남기고 있다.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
그리고 그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하신 일들을
아는 자들이 생존하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24:31]


한 마디로 신앙 교육의 계대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또한 얼마나 어려운가도 암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험한 세대의 신앙 교육이
후대를 위하여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러한 신앙교육은 그냥 말로는 되지 않는 것이며
여호수아의 고별사와 언약 갱신 의식에서 본 것처럼
후대를 위한 몸부림치는 열성이 있어야 하는데
여호수아 후대의 장로들은 이정도 까지는 나가지 못한것 같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유업으로 물려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바른 신앙의 유업을 이어가지 못한 이스라엘은
이후 통일 왕국 시대가 열리는 다윗의 등장까지
또 다시 400 년을 절룸발이 신앙으로 이어가며
남아있는 가나안 이족들이 옆구리의 가시로 돌변하게 되는
이 안타까움을 성경의 저자는 이러한 여운으로 남긴 것 같다.

오늘 한국 교회의 세대별 구조가 마치 역삼각형 모양으로 되어
아래 세대로 내려갈 수록 감소가 심각하다 못해
최근 어린이 주일학교를 운영하지 못하는 교회들이 많으며
교회 학교의 신앙교육도 이전과 같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자녀들의 신앙교육은 가정에서 책임지는 상황이 되었는데
모세가 신명기에서 쉐마의 교훈으로 가르친 것처럼[신6장]
그리고 여호수아가 고별사와 언약 갱신에서 그토록 강조한 것처럼
부모의 세대가 자녀의 시대로 바른 신앙을 전수하는 것은
내 삶의 모든 것에 우선해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마음 깊은 교훈으로 마음에 새기며 받아 드린다.

주님!

세월은 변해도 영원히 변치 않는
영존하신 주님 앞에서
나도 믿음의 선진들처럼
언약에 신실하신 주님만 바라보며
바른 신앙의 계대성을 이루고
아름다운 믿음의 자취를 남긴 후
주님 품으로 갈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