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 호세아 6:1-11
묵상내용
언젠가 북한선교 방문 팀을 이끌고 북중 국경선을 따라 이동하게 되었을 때에 나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접할 수 없었고 볼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정말 북한과 관련된 실제적인 현장 깊숙한 곳까지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 새로운 세계와 경험에 대하여 기뻐하기는커녕 두려워하였으며 이런데 까지 안내하고 데려온 나를 원망 하는 듯 했고 분위기는 시종일관 무겁기만 하였다.
후에 나는 깨달았다. 그들이 교회에서 단기 선교를 떠날 때 매우 위험한 곳으로 가는 것 때문에 교회에서 보내려 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나온 것과 그래서 시종일관 안전 위주로만 이동하려고 하였다는 것 그리고 아무 사고 없이 돌아가야 하는 부담감으로만 가득했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나의 일방적인 생각과 나의 방식으로 위험성을 뛰어넘는 현장까지 데리고 다녔으니 내가 안내하는 모험적인 코스가 이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들이 떠난 후 나는 여러 가지를 반성했다.
나의 생각과 방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들의 수준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고 거기에 맞추어서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는 것을 때늦은 후회와 반성으로 받아드렸다.
또 얼마 전에는 남편과 이혼 직전인 가까운 친척 여동생을 만났는데 이혼 하려는 사유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전혀 교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잠자리를 같이하고 싶어도 자기 방식으로만 덤벼들기 때문에 여자인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먼저 알고 나를 배려해주는 방식으로가 아닌 일방적 자기 생각과 방식으로 사랑한다고 하니 자신은 남편에게 대해서 마음도 몸도 열려지지 않은 채 벌써 수십 년을 살아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진정한 사랑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오늘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시로 하나님께 제사하며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생각과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일방적인 생각으로 하나님께 제사하며 섬긴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하나님께는 역겨운 부담이 되었고 전혀 소통도 교감도 없는 일방적이며 형식적인 제사와 섬김이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외친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6:3A]
여기서 여호와를 알자고 함은
지식적인 앎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마음이 어떠신지
하나님의 마음의 깊이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앎으로써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반응하자고 하는 것이다.
묵상적용
창부와 같은 고멜과 결혼하여 하나님의 쓰라린 사랑을 체휼하는 마음으로 창부와 같이 변질된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호세아의 외침의 절정은 아직 늦지 않았으니 너희가 이제라도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르게 섬기는 신앙에 너희 자신들을 세우라고 하는 말씀으로 귀착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르게 섬기는 한 예증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데 그것은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6:6]는 것이다
호세아가 이 말씀을 외치던 당시 여로보암 II 세 시대에는 경제적으로도 풍부하던 시대여서 사람들은 무수한 제물을 가져와 제사 드리며 그 어떤 시대보다 하나님을 열심으로 섬기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러나 그 제사들은 바알의 신당에서 드려지는 것 같은 이교도의 제사와 혼합된 제사로서 자신들의 만족을 위한 제사였으며 제사[예배]와 삶이 괴리된 제사를 위한 제사로써 하나님을 역겨워하게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호세와 선지자를 통하여 전달하시는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알고 거기에 맞게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이다.
당시 이교도들이 섬기는 신들은 삶의 내용과 관계없이 자기에게 제사만 드려주기만 하면 만족하였고 그들은 제사의 행위로 신들의 비위를 맞추기만 하면 되었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그런 비인격적 신이 아니어서 내가 진정 원하는 제사가 무엇인지를 밝히시는데
그것은 제사 따로 삶이 따로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나의 인애[헤세드:사랑과 긍휼]을 구하는 것처럼 너희 삶 가운데서 인애와 사랑을 베푸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는 것이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를 바로 알고 나를 섬기라고 하시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면서 마음 깊이 닿아지는 것은 오늘 우리[나]의 신앙생활이 여로보암II세 시대의 이스라엘과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그들보다 더 많은 제사[예배]를 드리느라고 주일 낮 예배/ 주일 오후(저녁)예배/수요 예배 /금요 심야기도 예배/매일 새벽 예배까지 합하면 제사[예배]의 횟수에서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영광스러운 예배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드리고 있으며
이 예배의 순서에 나타난 내용들이 무엇인지,
예배 순서의 흐름들을 바로 알고 드리고 있는지
그리고 예배의 내용으로써 깊이를 가지고 드리고 있는지
더불어 나의 예배에서 삶이 반영되며
나의 삶에서 예배가 반영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며
무엇보다 예배보다 예배 이전에 인애를 원하시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시는 그 마음을 헤아리며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다시 한번 나의 예배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년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6:6-8]
주님!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주님을 바로 알고 예배하며
주님을 섬겨야 하는데
나의 일방적인 생각으로만
주님을 섬긴다고 하지 않았는지요
주님과 아무런 교감도 느끼지 못하는
메마른 예배를 반복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과 아무런 소통도 이뤄지지 않는
형식적 신앙을 답습하지 않게 하시며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같이
예배와 삶 그리고 삶과 예배가 일치된 신앙으로
주님과 생명의 교통을 이루는 신앙과 삶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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