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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시편

▼ 시편 6:1-10 하나님의 진노를 자비와 긍휼로 바꾼 눈물과 곡성 기도

by 朴 海 東 2016. 11. 6.

하나님의 진노를 긍휼로 바꾼 눈물과 곡성 기도

시편 6:1-10


묵상내용

온 나라가 정치적 소요 가운데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요즘
시절은 하 수상하게 돌아가는데
깊어가는 가을은 어김없이 현란한 잎 새들을 하나 둘씩 떨 구며
겨울을 재촉하는......... 바야흐로 지금은 저물어가는 가을입니다.

우리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수채화 물감보다 더 진한
진노랑 은행나무 잎 새들이 다 떨 구어 질 때쯤이면
지금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는 소용돌이도 잠잠해 질까요(?)

유난히도 더웠던 지난여름이 지나가고 초가을로 들어설 무렵
진원지가 경주로 밝혀진 큰 지진이 서울까지 진동시켰던 것은
곧 이어지게 될 이 나라의 정치적 지각변동을
미리 예고라도 한 듯이 지금은 국가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혼란한 시기를 맞고 있으며 이 어려운 시기에
이 나라를 향하신 주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지
잠잠히 주님께 물어보며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은 통일왕국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서
지금까지 나라를 잘 이끌어왔던 다윗이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큰 슬픔과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가 3 개의 연으로 구분되어 나옵니다.

앞선 5장의 표제가 아침에 드리는 기도로 소개가 되었는데
아마 이 詩도 역시 간 밤에 한숨도 못자고 눈물로 지새운 채
아침을 맞으면서 드리는 기도 시로 보입니다.

이 기도 시에 나타나 있는 시상의 흐름을 보면
1. 성도의 고통이 무엇이며 [6:1-4]
2. 그 고통은 얼마나 치열한 것인지 [6:5-8]
3. 그리고 어떻게 그 고통 가운데서 벗어날 수 있는지[6:9-11]
그리고 그때의 환희가 얼마나 큰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연에서 다윗이 경험하는 고통은
그 고통이 다른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은 고통이라는 점입니다.

혹 금보다 귀한 신앙을 소유했던 동방의 의인 욥을 앞에 놓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명예를 걸고 마귀와 한 판 승부를 벌리는
하나님의 명예가 걸린 시련이고 고통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혹은 연약한 성도를 견고하게 하시기 위해 주시는 시련이며
고통이라면 이 또한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다윗이 느끼고 있는 고통은
이런 고통에서 거리가 먼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자신이 지금 주의 진노로 견책을 받으며
징계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고통이고 슬픔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 6편에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뼈가 떨리며 영혼이 떨리는 고통에 처한 것은
부하 장수의 아내[밧세바]와 간통하고 이를 은패하기 위하여
부하 장수[우리야]를 살인 교사한 죄의 결과가
이렇게 무서운 결과로 그에게 닿아진 것을 추론하게 되는데

여기서 다윗이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의 죄가 폭로됨으로 인하여
자기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게 된 나쁜 여론과
또 그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조차도 그를 버리셨고
더 이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신다고 말하는
악한 사람들의 조소였을 것입니다.
시 6편 에서는 이러한 자들을 대적하는 자[6:8]
혹은 원수들로 표현하고 있는데[6:10]
후에 이들이 압살롬의 반란에 가담자들이 된 것 같습니다.

다윗은 내적으로는 짓누르는 죄책감의 고통과
외적으로는 반대자들의 조소로 인하여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내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신다고 고백하고 있는데[6:7]


설사 실제보다 과한 과장법적 표현이라 해도 견딜 수 없는
내면의 슬픔과 고통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과 슬픔을 안고 드려진 다윗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외면치 않으시고 그의 눈물을 보시고
그의 곡성을 들어주셔서 그는 이 시의 마지막 세 번째 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위로와 소망의 빛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되었음을 고백하며
자신을 향하여 손가락질 하며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라고 조소하던 자들이 도리어
부끄러워 물러가게 될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6:9-11]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내 모든 원수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홀연히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6:9-11]

묵상적용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면서
성도가 아무리 큰 죄에 빠져서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눈물과 곡성으로 주 앞에 나가면
주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받아 주시며
모든 절망적 상황을 소망으로 반전시켜 주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배우게 됩니다.

큰 죄에 빠져서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하나님에게서 조차 버림 받은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가 슬픔과 고통을 안고 울 수 있다면
그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눈물이 값싼 감정의 표출이라 하여도
진실로 눈물은 마음을 누그려 뜨리는 힘이 있으며
막힌 통로를 열어내는 능력으로 작용될 수 있는데

그러나 나의 기도에서 이 눈물은
내가 울고 싶다고 울어지는 것이 아니며
진실함과 진지함으로 주님을 찾을 때
절로 흘려지는 영적 진주요 보배이기 때문 입니다

엊그제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문 발표에서
혹시 눈물이 보여지면 국민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 유감 발표 때
국민들 앞에서 보였던 그 처량했던 눈물은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국민들의 저항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을까요......(?)

내가 입장을 바꾸어
박근혜 대통령이 처한 것 같은 곤경에 처하거나
다윗이 경험한 것 같은 위경에 처했을 때
그리고 기도조차 말라버리고 탄식만 흘러 나올 때

나는 다윗이 흘린 눈물과
그가 통곡하며 부르짖은 곡성의 은총이
나의 기도에서도 나타날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오늘의 묵상에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주님!
내가 주님께 내보일 수 있는 것은
온갖 추함과 죄악 뿐이라 하여도
내가 나의 약함과 악함을 통탄하며
울 수 있는 눈물의 은총,!
이 한 가지 만큼은 결코 거두지 마시고
막힌 통로를 열수 있는 은총과 힘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