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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시편

▼ 시편 26:1-12 시25편[침체]와 26편[부흥] 사이에서 간격 좁히기

by 朴 海 東 2016. 12. 13.

시25편[침체]와 26편[부흥] 사이에서 간격 좁히기

시편 26:1-12

묵상내용

시25편을 통해 보여주는 시편 저자의 심리상태는 기타의 낮은 음 자리만을 연주하는 묵직한 우울함이 가득 베어 나오는가하면 시26편을 통해 보여주는 시편 저자의 심리상태는 높은 음을 연주하는 활기참과 자신감이 흘러넘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 25편에서 시편 저자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깊은 죄책감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짧은 구절 속에서 무려 네 번이나 죄책감에 따르는 외로움과 괴로움을 실토하고 있다.(25:16)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25:7]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소서[25:11]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25:18]


그러나 어느 순간 시편 저자는 이 깊은 죄책감의 협곡을 지나 마치 신앙의 최고봉에 이른 것처럼 시26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완전함에 행한다고 고백하며 이러한 자신을 판단해 보시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시26:1)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제단에 두루 다니며
감사의 소리를 들려주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말 하리이다.(26:11)


마치 롤로코스터 타듯 신앙의 깊은 침체에서 신앙의 최고봉을 오르내리는 이러한 심리 상태를 어떻게 이해해야하며 또 서로 상반된 이 두개의 시편을 통해 나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시편 저자의 이러한 심리 상태는 오늘 동일한 주님을 섬기는 우리(나)의 이야기 이며 성경 속의 인물들의 이야기 이기도 하고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위대한 인물들의 이야기 인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개혁 교회의 아버지로 일컫는 칼빈도 예수님 이후 기독교의 최고의 고전으로 평가 받는 기독교 강요를 저술하였으며 제네바를 성시로 만드는 개혁을 주도하기도 했지만 정작 자신은 늘 갈급함에 허덕였으며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침상 맞은편에 시편 51편 다윗의 참회 시를 붙여 놓고 기도하면서 주님 품으로 갔으니 그 역시 다윗과 같은 시25편의 침체와 시26편의 부흥 사이를 오간 사람인 것을 엿보게 된다.

내가 천사가 아닌 이상 이처럼 신앙의 깊은 침체와 신앙의 최고봉을 오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침체와 부흥 사이의 간격을 최소한으로 좁히며 균형 잡힌 신앙에 자신을 세워 나가는 비결을 이 두 개의 시편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내가 침체에 빠져 있을 때나 신앙의 부흥을 경험할 때 공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떠나지 않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를 꼭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적 침체에 빠져 있을 때]

여호와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시25:1]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25:15]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25:16]

[영적 부흥으로 부풀어 있을 때]
(교만하여 시험에 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 하소서(26:2)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26:11]

묵상적용

어제 오늘 C국의 깊은 오지 마을에 들어가서 요한복음 한 권을 떼면서 많은 깊은 은혜를 나누었다. 옥수수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이 동네에 들어서니 끝도 보이지 않는 옥수수 밭이 지평선을 이루고 있었다. 겨울철 농한기가 되어 이들은 하루 종일 이라도 말씀을 사모하며 배우고자 하였는데 서로 민족은 다르지만 같은 말씀과 같은 성령 안에서 깊은 공감과 교통을 나누며 말씀을 전하는 자나 받는 자 모두 몇 번씩이나 눈물을 훔쳐내며 성령의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
나는 이들이 다시 만날 때까지 말씀을 통해 받은바 은혜를 소멸하지 않고 더 깊은데로 나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하였다.
어쩌면 이들에게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시편 25편의 침체와 시26편의 부흥은 동일하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인데 그러나 이 두 시편에서 공히 보여주는 것처럼 내가 어떤 처지에 빠져 있던지 주님께 향한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과 또 오직 주님의 은혜만이 침체와 부흥 사이의 간격을 좁혀주고 유지하게 하는 유일한 비결인줄 알아서 나도 바울 사도처럼 말씀과 은혜에 저들을 부탁하며 또 다른 도시를 향해 떠났다.
그 마을을 떠나올 때 아직 오후 3시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해가 기울고 어둠이 찾아온 차창밖에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오늘은 영하 30도 가까이 날씨가 급강하해서 그런지 차의 창문까지 얼어붙어서 그들과 헤어지면서 창문을 열리지 않아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온 것이 못내 마음이 아프다

주님
어제 오늘 함께 말씀을 나눈 성도들이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과 은혜 가운데
시편 25편과 26편에 나타난
침체와 부흥의 간격을
잘 메꾸어 나갈 수 있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