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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시편

▼ 시편 27:1-14 내 평생에 바라는 한 가지 일

by 朴 海 東 2016. 12. 13.

내 평생에 바라는 한 가지 일

 

묵상내용

시27편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 되는 것 같다
이 시의 전반부에서는 하나님께 향한 다윗의
아름다운 신앙이 고백되고 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27:1)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27:1-3)


다윗은 양을 치던 소년시절로부터
사울의 왕궁으로 부름을 받고
왕의 칼을 지키는 자가 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왕 위에 오르고 난 뒤에도 정복사업을 위해
평생을 생과 사가 교차하는 전쟁터를 누비며 살아서 그랬는지
이 시의 중반부로 들어가면서
이제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며 살아가는
고요한 생활을 동경하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여호와께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27:4-6)


그러나 이처럼 고요한 목가적 장막 생활은
한 낱 꿈에 지나지 않을 뿐
원수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의 현실은 녹녹치 않아서
이 시의 절반 이상에 해당되는 종반부는 하나님께 향한
그의 절절한 부르짖음으로 채워지고 있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옵소서.
.......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27:7-10)


다윗은 언제 부모에게 버림을 당한 적이 있었던가(?)
아마 사울이 그를 죽이려고 하며
심지어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까지 처단하려 했을 때
그의 부모들조차 (일시적이나마) 은신하여 버림으로
그 때 이런 쓰라린 경험을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는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천애고아처럼 되었을 때
그래서 더욱 하나님만 바라는 견고한 신앙에
자신을 세우며 주의 가르치심만을 구하고
평탄한 길로 인도해달라고 간구한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27:11)


더불어 이 시의 마지막 연은
자신이 부르짖어 간구하는 내용처럼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리라는
믿음과 소망을 표시한다.

내가 산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27:13-14)

묵상적용

C국의 깊은 오지 마을에 들어가서 말씀사역을 하다 보니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가지고 간 소형 컴퓨터나 핸드폰이
무용지물이 되었는데 어제 밤늦게 큰 도시로 이동하여
이 아침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는 마음에 기쁨이 있다.

한 편 큐티를 빼먹은 불과 몇 날 때문에
내 마음이 편치 못했던 것을 돌이켜 보며
이것이 진정 주님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 때문이지
아니면 나의 큐티 중독성에 기인한 것인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나도 다윗의 고백처럼 나의 고요한 묵상시간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시간이 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
생생하게 만나는 시간이 되고 싶다.

나의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면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 년을 지내는 동안 복음의 야전군처럼 사역하다 보니
나도 이젠 왠지 모르게 다윗의 바램과 소원처럼
더 이상 이곳과 저 곳을 전전하지 않고
나의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램이 생긴다.

주님께서 나에게 시간과 환경을 허락하시고
자그마한 기도처 공간이라도 주시면
시간을 정하여 매일 예배, 매일 기도를 드리며
남은 평생에 NK 선교를 위한
기도 사역에 올인 하고 싶은 소박한 바람도 있다.

그러나 나의 현실은 다윗의 현실처럼 녹녹하지 않다
순례자의 노래처럼 어쩌면 주님을 만나는 그날 까지
오늘 이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 전하는 사역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수천 키로 미터를 이동하면서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복음을 전했던
모든 선교사들의 아버지 바울의 삶으로
주님은 나를 계속해서 이끄시는 것 같다.

주님!
나를 가장 잘 아시기 때문에
나를 가장 잘 이끌어 주시는
주님의 인도를 감사드립니다.
다윗의 신앙 고백처럼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주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을
확실히 믿고 나아갑니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리라는 다윗의 전언을
내 마음 깊이 받아 드리며
강하고 담대함으로 주님을 기다리겠습니다.
이 기다림의 끝에서 마침내
주님의 얼굴을 뵈옵게 하옵소서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