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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누가복음 *

▼ 누가복음 6:12-26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by 朴 海 東 2017. 2. 10.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누가복음 6:12-26

묵상내용

1.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6:12]

예수님의 지상 생애 가운데서 보여주는 기도의 모본을 보면
습관을 쫓아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신 것과
또 중요한 시점에서 산에 올라가 심야기도 하신 것.[요6:15]

그리고 특별히 십자가를 앞에 놓으시고 동산에 들어가
땀이 피 방울이 되도록 사력을 다한 기도를 드리신 것 외에
특별히 산에 오르사 밤이 맞도록 철야기도 하신 것은
오늘의 본문에서 유일하게 밝혀주고 있다.[6:12]

무엇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이처럼 산으로 올라가게 만드시고
밤이 맞도록 기도하게 하신 것일까?
이어지는 말씀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의 지상생애 가운데 가장 가까이서
자신을 따르게 하는 12 제자를 결정하는데 있었다.

복음서에서 보게 되는 것처럼 12 제자 외에 70인이 등장하고
120 문도가 등장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무리가
많고도 많았지만 이 많은 제자들 중에서도
마치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12 지파의 이름처럼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신약 교회의 기초석이 되는
12 사도를 정하시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도 중요한 문제 였기에 이렇게 하신 것 같다.

이들 구약의 12 지파와 신약의 12 사도는
요한 계시록에서 보여주는 전체 교회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24 장로로서 세워져야하는 것이기에 더욱 중요하였다[계4:10]

그러나 예수님으로 하여금 밤이 맞도록 기도하게 하신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은 신적 혜안으로써
자신이 선발할 제자들의 면면을 아셨기 때문에
오늘의 말씀에서 소개되는 12사도 중
11번째 제자들 까지는 다 수긍하셨으나
마지막 이름으로 등장되는 가룟 유다를 12 사도 중 하나로
선택하는 문제에 직면해서는 마음이 허락되지 않아서
이 문제 때문에 더욱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뇌 가운데 한 밤을 보내신 것 같다.

그러나 십자가를 앞에 놓으시고 겟세마네 기도에서 보여주신
기도처럼 하늘 아버지의 뜻이
기꺼이 자신의 뜻으로도 받아드려지고 결단하시기 까지는
긴 밤의 기도시간이 그렇게 흘러간 것 같다.

갈릴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한 산 언덕에 올라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는 가운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 고기잡이 하던 배들의 등불이 명멸되고
새벽의 여명이 비쳐올 때에 예수님의 마음은 확고해 지셨다

따라서 이어지는 말씀은 날이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사도란 무엇인가 ?
보내심을 받은 자(디아포스톨로스)라는 의미인데
이제 이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맡은 자들로서 권위를 가지게 되며
바울이 교회에 대하여 말할 때
너희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움을 받은 자들이라고 하는 것처럼 [엡2:20]
모통이 돌이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교회의 기초 석들이 되는 영광스런 사명에 세워진 사람들이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신약교회의 기초가 되는
12 사도를 선발하고 임명하게 되는 이 중요한 일을 위해
예수님이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다는 것은
내가 주님의 나라를 위해 크든지 작든지
중요한 결정을 앞에 놓고 마음에 확신이 서지 않고 흔들릴 때
나도 예수님처럼 이렇게 밤샘 철야기도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 깊은 교훈으로 받아 드리게 된다.

신학교 시절에는 주말이 되면 자주 산에 가서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밤이 맞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기도한 후 주일 강단에 서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한국 교회에 기도가 식어지면서
이제는 산을 찾는 사람들도 많지 않는 것 같고
교회들도 철야기도는 없어지고 심야기도로 대신하게 된 것 같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나도 예수님처럼
중요한 일을 앞에 놓고 마음에 확고한 결심이 서지 않을 때는
반드시 철야 기도라도 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묻는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묵상적용

2.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6:19]

젊은 시절 주말이면 산 속 기도원을 찾아가 기도했던 것처럼
산에 가서도 기도했으면 좋겠는데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언젠가 신학교 시절 수련회를 하게 되었는데
서울 종암동에서 시무하는 어느 목사님이 학생들에게 물었던
질문이 생각난다.
집돼지가 무서운가요 아니면 산돼지가 무서운가요?

그 목사님은 자신은 산 기도를 통하여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자신은 아는 것이 없는 무식한 목사지만
이렇게 능력 목회를 하게 되었다고 간증을 했는데
예수님의 산 기도를 묵상하게 되는 이 아침
왠지 모르게 그 목사님이 생각이 떠오른다.

산기도 그리고 철야기도가 주는 중요성 때문일까(?)
오늘의 말씀은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 서신 예수님에게
온 이스라엘과 두로와 시돈의 해변에서까지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께 몰려들었고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므로
사람들이 예수를 만지려고 힘썼다고 기록하고 있다[6:19]
그렇다 능력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아니라
아버지와 교통하는 기도 가운데서
입혀지는 것임을 예수님의 기도에서 확인하게 된다

3.예수 제자의 길 [6:20-26]

그러나 오늘의 말씀에서 더욱 감동으로 닿아지는 말씀은
밤샘 산상 철야기도를 통하여 12제자를 선발하신 주님은
이제 이 12 사도를 대동하시고 자신을 따르는 또 다른
제자들에게 천국 헌장으로서 산상 팔복을 선포하신 것이다.

지금 예수님이 바라보시는 제자들은 어떤 모습인가(?)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예수로 말미암아 미움 당하는 자 .........

예수의 제자로서 보여 지는 이러한 정체성과 호칭들은
한 결 같이 세상에서 패배자들이고 불행한 모습들인데
예수님은 이들에게 복이 있다고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으며
배부름을 얻으며
웃게 될 것이며
큰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시며 기뻐하고 뛰놀라고 하신다.

나는 무엇으로 나의 행복을 평가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며 가르쳐 주시는
천국백성의 정체성과
내가 따라야 할 제자의 길을 보면서

내가 비록 세상에서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초라하게 보일지라도
결코 이러한 세상적인 가치관 때문에
나 자신이 기가 죽어 실족하게 되거나
스스로 불행하게 생각하지 말아야할 것을
마음 깊은 울림으로 받아 드린다.

주님!
세상이 나를 보는 눈으로
내가 나를 보지 않게 하소서
주님이 나를 보시는 눈으로
나도 나를 바라보게 하시고
내가 얼마나 복 있는 자인지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게 하시고
주님이 앞서가신 王道를 따라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