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 표적이 일어난 과정을 통해서 배우는 것
▼ 누가복음 9:10-27
묵상내용
날씨는 차갑지만 행복한 주일의 아침 입니다
주님!
이 아침에 올리는 묵상 글이
영이요 생명의 말씀이 되어
주님이 이끄시는 생명의 삶으로 연결되게 하소서
1.누가복음 9:10 -
따로 벳세다라는 고을로 떠나가셨으나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9:10]
요즘 내가 주일 마다 찾아가는 교회는
도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마을의 교회인데
그 동리에는 유난히 무덤들이 많습니다.
아마 고려시대 때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마을이며
명당자리라고 소문이 나서 그런지 모르나
조선 국왕 왕실들의 무덤들이 많이 산재해 있고
심지어는 고려 시대의 왕실과 명장들의 무덤도
이곳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묘지 풍경들 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처소 바로 주변은
병풍처럼 야트막한 산이 둘러쳐져 있는데
나는 주일 예배 후 식사를 하고 나서는
이곳에서 키우고 있는 강아지를 데리고
이 곳 산을 한 바퀴 돌아오곤 합니다.
얼마 전에 이 동네에서 터주 대감처럼 살고 계신
나이 많으신 여느 교회 목사님을 만났는데
그분은 자신이 섬기는 교회 말고는 이 곳에
또 다른 교회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가
무덤들이 많은 이 귀신의 골짜기에
우리가 들어와 복음을 위해서 함께 일하게 되었으니
너무 감사하다고 하며 좋아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인구가 많지 않은 시골 마을에
교회가 두 개, 세 개가 생기면
먼저 터를 잡고 목회하던 분이 싫어할 수 도 있는데
그는 이 외롭고 힘든 곳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이 곳에 또 다른 교회가 생긴 것이 심히 좋은가 봅니다.
나는 매 주일 이곳에 설교를 하러 가면서
누가 이런 외지고 한적한 곳에 찾아올 수 있으려나
생각해볼 때가 종종 있는데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부질없는 것임을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의 파송을 받은 제자들이 사역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일부러 한적한 곳을 찾으셨는데
그곳은 갈리리 바다의 북동쪽에 위치한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닌 빈 들판의 한 적한 곳이었는데도
갈릴리의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아 따라온 것을 보면서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서 그 수효가 남자들만 해도
오천 명이나 되었던 것을 보면서
하나님 나라 사역에서 중요한 것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이끄는) 사람의 문제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생명력이 흘러넘치는 곳에는
그 수효를 막론하고 영혼들이 찾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을 보며
주님께서 나를 어느 곳으로 보내어 사역하게 하시든지
내가 장소 문제에 연련하지 않고 하늘 생명을 넘쳐흐르게 하는
사역이 되게 하는 것에 나의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2.9:11-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 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지금 막 제자들이 파송을 받은 곳에서 돌아왔고
좀 쉬기도 하고 요기도 해야겠지만
또 다시 몰려드는 무리들 때문에 귀찮고 피곤할 수 있겠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을 영접하셨다는 말에서 큰 감동을 받습니다.
영혼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면 피곤한 중에
결코 이런 친절과 사랑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할 때
나는 나의 사역이 지치도록 피곤할 때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혼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경우에도 나 자신보다
그들 중심으로 사역할 수 있는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기도하기
3.9:11b -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 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더라.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이 "하나님의 나라"는
항상 빠지지 않는 주제이며 사역의 핵심 입니다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에 의해 다스려 지는 나라인데
이 나라는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되었던 나라이고[창12:1-3]
다윗의 때에 구약적 의미에서 완성을 본 나라이며
이 나라의 진정한 왕으로 오실 메시야 시대를 예표 했던 바
이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첫 일성으로 이 나라의 시작을 알리셨고[마4:17.막1:15.]
이 나라의 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산상 수훈을 통해
이 나라의 통치 주권이 공식적으로 시작됨을 반포 하셨으며
모름지기 이 나라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산상 수훈을 통해 길게 가르쳐 주셨던 바로 그 나라입니다.
이 나라 곧 하나님의 통치 주권은 가장 먼저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는 자들의 심령에 임해야 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전 영역에서 나타나야 하는 것을
주님께서 가르치셨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아버지께로 부터 자신이
보냄 받은 것에 대한 표시로써
여러 표적들을 나타내 보이셨는데
그 중에서도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고침으로
자신이 있는 곳이 곧 하나님의 통치(치유)가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4.9:12-17. 오병이어 기적이 담고 있는 교훈들
1) 9:12- 이 기적의 배경:
예수님을 찾아 벳세다 들판으로 모여든 무리들은
돌아가야 할 시간인데도 도무지 떠날 조짐이 없습니다
제자들은 이들이 마을로 가서 먹을 것을 얻게 하자고 말하며
이 곳은 빈들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지만[10:12b]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으로
제자들의 믿음을 테스트 하시며
무언가 이 날에 이 큰 무리 앞에서
무슨 큰 이벤트성 사건[표적]을 보이실 조짐을 보이십니다.
2) 자신들이 가진 것 그 이상을 볼 수 없는 제자들의 한계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이 말씀 앞에서
제자들은 방금 전 자신들이 나가서
예수님이 오심으로 천국이 임한 것을 전파하였으며
귀신들을 추방하며 앓는 자들을 고쳤던 것도 잊어버리고
그리고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서 지금 이 도전을 주시는
주님이 오직 하나님 밖에는 행할 수 없는 일들을 한 것을
무수히 보았던 것도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한계 안에서 말하고 있음을 봅니다.
" 우리에게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으니
이 사람들을 위해 먹을 것을 사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사람의 제한된 이성적 사고와 계산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다는 것을 제자들은
이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배우게 되는데
"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는 이 말씀은
이는 오늘 이 시대의 천국 일꾼 된 우리[나]에게도 동일하게
테스트 하시며 도전 하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받아드리게 된다.
3)
오병이어 표적이 암시하는 예수님의 정체성으로서 “하나님의 메시야”
제자들이 지금 자신들이 따르고 있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보는 눈이 가리어져서 예수님 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에 고착되어 우리에게는 “~ 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주님의 테스트에서 실격된 답변이지만
주님은 제자들의 믿음과 관계없이 다만 무리의 형편을 헤아리사
불쌍히 여기시고 동정하시는 마음 때문에
그리고 더욱 특별히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이 벳세다 들판에서
자신이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야[그리스도] 되심의 표적을 보이실 기회로 삼게 되시는데
이는 아마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이렇게 하도록 하라는
아버지의 허락에 따라 이루시게 되는 표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이 표적 행하심을 통하여 떡을 먹은 제자들과 무리들은
이 예수님을 통해 출애굽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먹게 했던
하나님의 종 모세를 연상하게 되었음이 분명하며 어떤 면에서는
이분이 모세가 예언했던 바로 그 선지자가 되시며[신18:15. 행3:20]]
모세보다 크신 이가 되시는 것을 연상하게 된 것 같은데[히3:1-6]
이것은 이어지는 예수님과 제자들만의 시간에서
예수님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베드로가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한 답변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눅10:20].
묵상적용
4) 오병이어 표적이 일어난 과정을 통해서 배우는 것[9:14-17]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고 했을 때 제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그 이상을 볼 수 없어서 “우리에게는 ~ 밖에 없습니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이 순간에도 무한 자원이신 하늘 아버지를 바라보셨고
그날 그 장소가 아버지께서 나타내실 기적의 현장이 되리라는 것을
내다 보셨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이 기적이 창출되기 위한 준비를
갖추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떼를 지어 오십 명씩 앉히라
하늘 아버지의 기적이 수많은 무리 가운데
실효성 있게 전달되기 위해서
먼저 환경 조성이 필요했고
예수님은 이러한 질서 가운데
구약의 빈들에서 일어난 하늘 양식으로써 만나가
지금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오천 무리에게
나타내게 되기를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2)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Taking them)
비록 보잘 것 없고 빈약한 것이지만
굶주린 무리에게 이 떡이 전달되기 전에
먼저 예수님 자신의 손에 들려지게 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보리떡 같이 보잘 것 없는 나 자신이라도 나를 주님께 드리면
주님께서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쓰실 것을
기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는 내가 가진 적은 물질이라도 주님께 드리면
이것이 주님 손에 들려지는 거룩한 봉헌이 되어
주님께서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시는
선한 물질의 용처로 사용하시지 않겠습니까(?)
필요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물질로 전달되기 전에
먼저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리는 헌물이 되게 했다는 것이
중요한 순서가 되는 것 같습니다.
(3)하늘을 우러러 축사 하시고
오병이어 표적이 일어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놀라운 일이 있기 위하여
먼저 예수님이 하늘 아버지를 우러러
기도하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므로 이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허락되었고
아버지께로부터 말미암아 나타난 것임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술적인 기적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로부터 기도하신 결과로서
이 축복을 나누어 주신 것을 보면서
기도는 하늘 아버지의 무한 자원을 끌어다 쓰는
유용한 도구요 통로가 됨을 예수님의 기도에서 배웁니다.
(4)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오병이어 표적이 일어난 과정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모든 과정이 은혜로운 사랑 가운데 이어짐을 보게 됩니다.
먼저 하늘 아버지의 은혜가 나타나기 위한 환경을 조성했고
이어서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주님 손에 들려지게 했으며
이것을 위하여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고
이제는 그 작은 덩이에서
떼고 또 떼며 계속 떼어서 나누어 주셨으니
이 “ 떼어”라고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영적 의미를 가진 것을 암시받게 됩니다.
주님은 후에 십자가를 앞에 놓고
성찬을 제정하셨을 도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내 몸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자신의 것을 떼어 나누고 다른 사람들에게 분여하는
희생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배웁니다.
오늘 나의 신앙과 삶 속에서 그리고 나의 사역 가운데서
주님께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표시로 떡을 떼어 주심같이
그리고 벳세다 들판에서 배고픈 무리를 위하여
한 소년의 식사거리 “오병이어”를 주님께 드려
이것을 떼어 나누어 주셨을 때
떼고 또 떼어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계속 이어 나오는 떡 조각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하늘의 기적과 은혜를
이 세상 가운데 나타내는 비결인 것을 배웁니다.
주님!
나의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주님께 드려
주님 손에 들려지게 하시고
기도로 거룩하여 지며
아버지께 받음직 하게 되어
떼고 또 떼어 줄 때에
계속해서 떼어줌이 그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다 배불리도록 이어진 것 같은 역사가
나의 신앙과 삶 가운데서도
그리고 우리들의 신앙공동체에서도 일어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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