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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누가복음 *

▼ 누가복음 9:28-45 다시 한 번 기도의 불길로 타오르게 하소서

by 朴 海 東 2017. 2. 22.

다시 한 번 기도의 불길로 타오르게 하소서

누가복음 9:28-45

묵상내용

이 복음서의 저자 누가는 변화 산에서 일어난 황홀한 사건과
변화산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통의 사건을 한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을 통해 이것이 곧
오늘 세상 속에 있는 우리들의 교회가 당면하는 현실인 것을
잘 묘사해 주고 있는 것 같다.

기도하시던 중에 그 용모가 광채로 변모되신 예수님과
천상에서 내려온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의 별세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떠나려 할 때에
이 황홀경의 자리를 끝까지 붙들어 두고 싶은 베드로는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이 좋으니
초막 셋을 지어 함께 유하자고 간청하였는데
이는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고 하였다

한 편 산 아래서는 흉악히 귀신들려 고통 받는 한 아이와
아이의 고통을 해결 받도록 제자들에게 부탁한 아비가 있고
또 이 아이에게 들어간 귀신을 추방시키지 못해서
쩔쩔매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있다.
그런데 동일한 본문을 다루고 있는 마가복음에서는
이 아이가 벙어리 귀신이 들려서
시달림을 받는 것을 더욱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제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서기관들은 마치 너희의 능력이 어디 있느냐 조소하듯
제자들과 변론만 하고 있으며 둘러선 무리들은
이 현장의 구경꾼들로만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막9:14-29]

예수님은 산 아래로 내려오셔서
사람의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참혹한 현장의 한 복판에서
이 고통 받는 아이를 고쳐주시기 전에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남기셨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9:41]


예수님이 던지신 이 책망과 질책 속에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쩔쩔매는 제자들을 향한 것 뿐 아니라
옆에서 구경꾼이 되어 관망하는 무리들과
또 이런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도리어 조소하고
변론만 하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책망도
함께 내재된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하심은
그동안 대 갈릴리 전도사역을 통해 그토록 많은
메시야 적 표적을 보이셨지만
여전히 마음을 닫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하신 것이며
또 귀신 들린 아이와 부모의 고통을 관망만하고 있는
무리들의 패역한 마음들과
또 더욱 특별하게는 이전엔 문제 해결의 권능을 받아
파송을 받아서 귀신들도 추방하고 병도 고쳤지만[눅9:6]
지금은 무능하게 되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한 책망과 한탄이
이 속에 담겨 있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또한 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들을 향해
주님이 던지시는 책망으로도 마음에 닿아진다.

묵상적용

그렇다 오늘 우리시대의 교회들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세상 가운데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
특별히 영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해결책을 제시해 주어야하는데
교회가 대형화 대고 비대해진 것에 비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영적 문제에 대해서는
빈약하게 되었으며 교회가 외형적으로 화려해 진 것에 비해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능력에서는 초라하기 그지없어
세상의 비웃음과 조롱거리가 되어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문제의 해결은 어디에 있는가?
오늘의 말씀을 읽으면서 마음속에 큰 울림으로 닿아지는
“ 기도 ”에 있음을 본다.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 되셨다고 했는데[9:29]

바로 여기에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비법이 있으니
그것은 기도 가운데 변화되고 성화됨의 길이 있음을 본다.

어디 그 뿐인가 성도는 기도를 통해서 능력을 힘입어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마귀와 귀신들을 이기며
귀신들을 추방시킬 말의 권세를 얻게 되는데
오늘의 말씀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과 제자들만 함께 있는 자리에서
제자들이 왜 우리는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 했습니까?
질문하였을 때 예수님은 정곡을 찔러서 답변하셨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이런 등급의 귀신]이 나갈 수 없느니라."
[막9:29]

그러니 기도 ! 기도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전 시대와 달리
생활이 유복해지고 편안해 지며
세상의 재미를 접할 것이 많아진 이 시대는
기도를 등한시 하며 기도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잘 굴러가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으니
이러다가 어떤 위기상황까지 내몰릴지 두려운 일이다.

이전 시대엔 주말이면 산에 가서 밤새워 부르지는
성도들의 기도가 있었고 처처에 민족 제단들이 있어
기도하는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었는데
지금은 산 기도의 불도 꺼졌고 기도원의 불도 꺼져가며
교회들의 기도 불은 더욱 희미해져서
마치 엘리 제사장 시절의 성막처럼 변질되는 모습을 본다.

언젠가 오산리 순복음 금식 기도원 집회에 참석했는데
그 기도원에 단골 강사로 오시는 분이 말하기를
이전에는 대성전에 성도들이 꽉 꽉 차고 넘쳤는데
지금은 그 때의 반도 차지 않는다고 하며 자탄할 때에
주님이 탄식하시는 음성으로 들려졌다.

주님!
다시 기도의 불을 밝혀 타오르게 하소서
저 옛날 성전의 성소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온 불을 꺼트리지 않으며
그 불로 제물들을 태운 것처럼
그리고 성전 등잔에 항상 넉넉하도록 기름을 채우고
등잔의 불을 밝혀 내소와 외소를 비추었으며
언약궤 앞에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분향을 피워 올림 같이
오늘 나 자신과 우리들의 교회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힘입어
다시 한 번 타오르는 기도의 불길로 일어서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