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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누가복음 *

▼ 누가복음 11:37-54 예수님이 판을 깨신 식사 자리에서 배우는 것 (2)

by 朴 海 東 2017. 2. 28.

예수님이 판을 깨신 식사 자리에서 배우는 것 (2)

누가복음 11:37-54

  
1. 예수님이 판을 깨신 식사 자리에서 배우는 것[11:37-41]


남에게 식사 초대를 받아 간 자리에서
상을 뒤집어엎듯이 판을 깨버리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예수님은 어쩐 일인지 모르나
한 바리새인의 집에 점심 식사 조대를 받은 자리에서
아직 식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마치 판을 깨버리듯 엄중한 말씀으로
자신을 초대한 바리새인뿐 아니라
율법 교사들과 당대의 종교지도자들 향하여
무서운 책망과 저주까지 퍼붓는
돌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남에게 초청 받아간 식사 자리에서
이럴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실 수 밖에 없는
숨겨진 이유가 이 사건 속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자신 앞에 간사하게 베풀어진 음식을
억지로 먹고 토하게 되기보다는 오히려
간사하게 베풀어지는 식사 자리의 판을 깨심으로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받아야할 호의가 있고
거절하야 할 호의가 있다는 것을 교훈 하십니다.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 진찬을 탐하지 말지니라.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하지 아니함이라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잠23:6-8]

잠언이 보여주는 이러한 지혜자의 말씀을 배경으로
손을 씻지 않고 식사 자리에 앉은 예수님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자신들의 전통과 관습으로 정죄하는
이 바리새인의 심리가 어떠했는가를 이어지는 말씀에서 엿보게 됩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어리석은 자들아
밖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11:39-40]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접대)하라[be generous]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11:41]


이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식사 자리에 초청하기는 했으나
호의적이고 후하고 너그러우며 관대한 마음으로가 아니라
또 다른 숨은 동기를 가지고 했다는 것을 엿보게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식사 초대를 받거나 어떤 호의를 받을 때
무조건 받아 드리기보다 내가 그 자리에 나가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받지 않는 것이 좋은지 분별하는 것이 필요하며
내가 밥 한 끼 얻어먹은 것 때문에
(혹은 뇌물/선물을 받은 것 때문에)
내가 할 말을 못하는 어리석은 자리에 떨어지게 되던가
혹은 악한 자의 동류가 되는 일이 없어야할 것을
이 아침 판을 깨신 주님의 식사 자리에서 깊은 교훈으로 받아 드립니다.


2.
율법의 문자에 매어 진정한 율법의 정신을 버린
바리새인들을 향한 책망에서 배우는 것[11:42 ]


율법의 정신으로서 공의를 행함과 사랑은 빠져있으면서
율법의 문자적 조항에 매여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어려운 절반의 신앙으로써
주님은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율법 신앙의 모본을 보인답시고 십일조를 드리는 일에서도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까지 드린다고 했지만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의와 사랑은 빠져있는
율법을 지킨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십일조 신앙에 대하여
주님은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하심으로[11:42]

그들의 십일조 신앙에 대하여 인정하시면서도
그것이 알맹이가 빠져있는
형식적인 껍데기 십일조 신앙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 십일조 속에 하나님께 향한 사랑을 담는 것 뿐 아니라
율법의 다른 조항들인 공의를 행하는 신앙이 뒷받침 되어
네가 드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봉헌)이
하나님께서 받으심 직한 것이 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헌금의 상징성을 가진
십일조를 드리는 일에 있어서
나는 어떤 자세로 드리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철저한 십일조를 드리기 위해서
자신들의 채마밭에 심은 근채 뿌리 한 포기 까지도 세어서
10분의 1을 챙기려고 했던 그 열성 이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가르치는 진정한 율법의 정신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와 공도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는
신앙과 삶에 나 자신을 세울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3.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자신도 남도 가로막는
율법 교사들에 대한 책망에서 배우는 것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 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11:52]

사람은 자신이 가진 지식을 지식이 없어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자신이 가진 지식을 이용하여 도리어 남을 속여 먹고
분수에 지나친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언젠가 집안 친척이 어려운 일을 겪게 되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서 알아보니 삼백만원을 요구하기에
이건 너무 과한 요구라고 생각되어
내가 직접 나서서 인터넷을 뒤져서
법원 제출 서류를 준비하여 법원에 접수를 시켰는데
법원에서 서류를 접수해주는 사람도
변호사 사무실에서 가져온 서류가 아니라서 그런지
이 것, 저 것을 고치라고 하며 까다롭게 하며
다음에 다시 와서 제출하라고 하는 등 나를 힘들게 했는데
그래도 그냥 그 자리에서 고칠 것을 고쳐서 제출하여
재판에서 승소하게 된 경험이 있었는데
이때 내가 받은 수고비는 식사 한 번 같이 하고
십 만원 받은 것이 전부였지만 그래도 감사했고
나 스스로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재능 기부”와 같은 좋은 제도가 있는데
지식이 없어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식 기부”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자신이 전공한 분야에서 전문 지식을 잘 습득하여
지식의 열쇠를 가진 사람들은
그만큼 사회적 책임도 있는 법인데
이 것들이 잘 활용이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 시대의 율법 교사들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간 자들로 비유되고 있는데[11:52]
같은 내용을 다루는 마태복음에서는
이 지식의 열쇠와 관련하여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자도 막는 자들이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마23:13]

여기서 천국 문을 닫는다는 것은
율법의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그들이
율법의 한계를 절감하며
율법의 완성 자로 오신 예수님께 나가는 것만이
참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을 시기 질투하며 싫어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반 푼 어치도 안 되는 자신들의 지식으로
자신들은 물론 남도 예수님께 가지 못하도록 막는 죄이니
이들이 받을 화가 얼마나 큰 것인지
예수님의 준엄하신 책망을 통해 엿보게 됩니다.

오 주님 !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기에는
한 없이 부족한 신앙이지만
주님이 주신 지식의 열쇠를 잘 활용하여
말씀의 곳간에서 엣 것과 새 것을 가져와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 문을 열어주며
풍성한 신앙으로 이끌어주는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