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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이사야

▼ 이사야 46:1-7 그 사랑 ! 영원히 변함없고 다 함이 없어라

by 朴 海 東 2018. 4. 21.

그 사랑 ! 영원히 변함없고 다 함이 없어라

이사야 46:1-7

묵상내용

얼마전 기도하기 위해 산을 찾았다가 내려가는 길에
지름길로 가기 위해 부득이 한 절을 지나게 되었다
거기 절 마당과 담장 곁에는 자신의 소원 성취를 쓴
수많은 등과 패가 걸려 있어서 바람에 흔들거리는 것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의 소원 이외도
이미 죽어 세상을 떠난 이들의 극락장생이나
좋은 곳으로 천도되기를 바라는 문구를 쓴 것들도 많이 보았는데
얼마나 많이 시주하였는가에 따라 등의 크기도 다른 것을 보았다.

처음 석가모니에 의해 불교가 창시 되었을 때는
고행이나 묵상을 통해 자기 수양이나 해탈을 목적으로 했다는데
결국은 자기 소원성취를 위한 기복적 종교로 변질 된 것을 보며
생명의 종교라고 하는 우리 기독교 안에도
이런 변질된 요소들이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보았다.

오늘의 말씀에서 이사야는 유다 인들이 바벨론에서 목격하게 되는
벨이나 느보와 같은 우상들이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 힘도 없어서
고레스의 군대가 침공해 왔을 때 파괴되고 실려 가게 될 것을
예고하면서 이처럼 사람이 의지하는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니
너희는 어미의 사랑 같고 아비의 사랑 같은
인격적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권고하는 것을 본다.

이사야가 언급하는 여기 바벨론의 신 벨은 마루드크의 별칭이며
느보는 벨에게 부종하는 부하 신하 급의 신이라고 하는데
이것들이 고레스 군대의 침공에서 파괴되고 탈취되어
피곤한 짐승의 수레에 신세를 지고 실려 가니
어찌 이런 것들이 너희를 구원할 신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하심이다.

이사야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참으로 의지할 신으로 소개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인격적 사랑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으므로
아이를 태중에 잉태하고 낳아서 품고 엎으며 양육하는
어미의 사랑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고 다함이 없어서
노년에 이르고 백발에 이르기까지 (혹은 사후 영원한 내세에까지도)
이어지는 돌보심이요 사랑이라고 가르쳐 준다.[46:3-4]

이처럼 눈동자 같이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시17:8]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돌보아주시고[마23:37]
독수리가 그 새끼를 날개 것 같이 한다고 하신 [신32:11]
하나님의 사랑을 이제는 나를 잉태했고 낳았으며 품고
엎고 가시는 부모의 사랑으로 표현하는 이 말씀 앞에서
나는 내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 앞에서
굳이 나의 소원 성취를 아뢰는 기복적 신앙을 갖지 않아도
어린 아이가 제 어미의 품에 안겨 있으면
어미의 모든 것(보호와 사랑과 돌봄 같은 것들)이
절로 자신의 것들이 되는 것을 생각해보며
성숙한 신앙생활의 참된 본질로 들어가야 함을 배우게 된다.

주님과 함께 하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타 종교에서 보는 것처럼
자신의 소원 성취나 기복하는 저급한 형태에서 벗어나
나에게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을 주신
주님과의 관계에서 생명과 생명,
인격과 인격의 만남으로 이뤄져야 하며
말씀과 기도와 교제와 순종 가운데
더 깊은 교제와 관계 발전 속으로 들어가야 함을
이 아침 마음 깊은 교훈으로 받아 드리게 된다.

기도하기

주님!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나를 잉태하시고 낳으셨으며
나를 품고 안으시며
어깨에 업으시는
에미의 사랑보다 크다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세상은 변하고 사람들은 변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나의 노년과
내가 백발이 되기까지 변치 않는 사랑이며
돌보심이라고 가르쳐 주심을 감사합니다.

때로 나는 나의 모습이
주님이 바라시는 수준에서 너무 멀어서
나는 정말 주님께 사랑받는 자인가
나 자신을 의심할 때가 있는데

주님의 사랑은
나의 어떠함에 따라 변하는 사랑이 아니라
내 모습이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낳으시고 나를 양육하시며
품고 안고 엎으시는 사랑이기 때문에
나의 평생과 내세에 까지도 영원히 변치 않으며
다함이 없는 사랑인 것을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이 하루도 이 사랑의 힘으로 힘차게 살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