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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시편

▼ 시편 89:38-52 그 첫사랑(언약)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by 朴 海 東 2018. 5. 31.

그 첫사랑(언약)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시편 89:38-52

묵상내용

돌아오는 주일[6월 3일]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 ** 교회에서 
말씀 사역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자그마한 시골교회 이지만 언제부터인가 꼭 가보고 싶었던 
내 마음 속의 교회이기 때문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렙니다. 

한편 내가 그 곳에 가서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
주님께서 그 교회를 향하여 주고 싶으신 말씀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틈틈이 기도하면서 최종적으로 결정한 주제는 
최근 숨 가쁘게 돌아가는 우리 한반도의 정세를 생각하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주제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자그마한 시골교회 이지만 그 작은 무리를 통해서도 
그 곳에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의 제단이 서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간절한 열망이 이렇게 나타난 것으로 받아드렸습니다.

주님!
지금 급변하고 있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 조국 대한민국 곳곳의 교회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구국 제단들이 되게 하시고
성막을 덮은 구름기둥, 불기둥처럼
그곳이 주님의 임재를 나타내시는 영광의 처소가 되게 하소서 

[ 오늘의 말씀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

비교적 긴 문장으로 되어있는 시89편을 마감하는 오늘의 본문은
왠지 모르게 미완성 교향곡처럼 끝났던 앞선 시편 88 편처럼 
이 시의 저자는 기도의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묵직한 슬픔 그대로 남겨 놓은 채 기도를 마감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영원히 찬양할지어다" 
아멘 아멘으로 끝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미스테리하게 여겨지고 
이 시를 깊이 들여 마신 독자로써 긴 여운이 남겨지기도 합니다. 

이 시의 저자는 서두에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끔찍이도 사랑하시며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하였고[89:1-18]
이 시의 가운데 토막 같은 본론에서는 
이 모든 은혜와 축복이 다윗 언약에 근거한 것임을 밝히며 
언약에 신실하신 그가 얼마나 믿을만한 분인지 밝혔는데[89:19-37]

이 시의 결론 부분이 되는 마지막 단락에서는 [89:38-52]
날개가 부러져 끝없이 추락하는 가련한 새처럼 
아름다웠던 지난날의 축복과 영광은 모두 다 어디로 가고
지금은 외세에 의해 한 없이 짓밟히고 있는 조국의 참담한 모습과 
백성을 대표하여 기름부음 받은 자신들의 왕 조차
견딜 수 없는 비방과 모욕을 받고 있는 참담함을 토로하고 있는데
그것을 마치 땅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왕관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지난 날 찬란했던 다윗 왕국의 영광과
그 영광이 대대로 영원할 것처럼 보장했던 그 언약은 어디로 가고
지금 폐허의 잔재 위에 서서 기도하는 시인은
이 비참과 고통이 언제까지 갈 것인지 두려워하면서 [89:46]
제발 자신이 이 세상에서 눈을 감게 되기 전에 
자신의 조국과 기름부음 받은 왕의 위상이 
다시금 회복되는 모습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영영 숨어 계시렵니까? 
언제까지 주님의 진노를 불처럼 태우려고 하십니까? 
내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기억해 주십시오. 
............
주님!
주님의 신실하심을 두고, 다윗과 더불어 맹세하신 
그 첫사랑(언약)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 주님의 종들이 받은 치욕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뭇 민족이 안겨 준 치욕이 내 가슴 속에 사무칩니다. 

주님, 
주님의 원수들은 주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깔보며 가는 곳마다 모욕합니다. 
주님, 영원토록 찬송을 받으십시오. 아멘, 아멘. [새 번역]

묵상적용

-------그 첫사랑(언약)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지난 3일 동안 연재되고 있는 시편 89편을 마감하면서 
주님의 마음을 뜨겁게 해드리고 
주님의 돌아선 마음에 감동을 안겨드릴 기도로써
마음에 새기고 싶은 단 한 구절의 기도가 있다면 
주님!
그 첫사랑[언약]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라는 구절입니다

물론 시인은 지금 당면하고 있는 민족적인 수취와 고통이
마치 자신의 남편을 두고서도 심하게 바람피운 아내처럼
언약의 당사자인 하나님을 등지고 
음란하듯 이방의 우상들을 따라간 결과이며 

자신들의 진정한 왕이시며 보호자가 되시는 하나님보다 
주변 강대국을 의지하여 국가적 난제를 해결코자 했던
불신앙의 결과로 나타난 재앙인 것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미워도 다시 한 번 이라고 
다시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고 매달릴 구석이라고는 
이미 맺으셨던 “언약”에 기초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주님!
그 첫사랑[언약]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를 들먹이며
매달려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편 오늘의 묵상을 내려놓으면서 
언약의 당사자이신 하나님 편에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자기의 언약 백성들이 잘 못하긴 했지만 
너무 심하게 한 것은 아니신가.........(?)

그러나 이미 이스라엘의 국가 존립의 의미와 근간이 되는
언약을 체결하실 때 그들이 말씀을 불순종하고
자신들의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거절하며
언약 불이행으로 나갈 때는 어떤 결과를 맞을 것인지 
이미 다 말씀 하셨기 때문에 
이 또한 하나님 편에서는 언약의 내용대로 하신 것이며
비록 이스라엘이 감당하기에는 힘든 것 같이 보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도 다 대안이 있으시기 때문에 이렇게 하신 것이며 
오히려 이처럼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애증 가운데
변할 수 없는 첫사랑[언약]도 함께 담겨있음도 이해하게 됩니다.

오늘의 시편 묵상을 마감하면서
시편 저자가 매달리는 기도의 한 소절처럼
그래도 당신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연약한 인간인 것을 기억해 달라고 하며
그 혹독한 징계의 손길을 거두어 주시고
단축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그 첫사랑의 언약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던진 질문은

오늘 내가 지은 죄악 때문에 깊은 자격지심으로 떨어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도 없고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 되었을 때도
마지막으로 붙들 수 있는 기도 줄이 된다는 것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 

왜냐하면 나의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구약의 모든 언약을 완성하는 새 언약으로써[눅24:20]
피로 맺은 새 언약으로 나의 죄를 속하시며 
이 새 언약의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영구불변한 언약이 된다는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막1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