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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사도행전

▼ 사도행전 9:23-31 사역보다 더 중요한 낮아짐과 침묵의 훈련

by 朴 海 東 2018. 7. 2.

사역보다 더 중요한 낮아짐과 침묵의 훈련

사도행전 9:23-31

묵상내용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도
단기간에 급반전될 수 있는가 사울의 인생을 통해 본다

기독교인들을 체포 구금하기 위하여
유대의 최고기관으로 부터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그리고 자신을 돕는 수행원들을 이끌고
보무도 당당하게 다메섹으로 갔던 사울은

그곳에서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꺼꾸러진 인생이 되어
도리어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힘써 증거 하다가
유대인들의 공모 살해의 위협을 당하여
밤중에 광주리를 타고 성 밖으로 탈출해야 했으니

이것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그가 받아야 하는
기구한 운명의 장난처럼 보였고
그가 앞으로 당해야할 고난의 시작 일 뿐이었다.

형제들의 도움으로 다메섹을 탈출 해나온 사울은
그 다음 행선지로 예루살렘으로 간 것 같은데
그 곳에서도 교회를 핍박한 지난 날 행적으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들 때문에
환영받지 못한 가운데서도
그나마 바나바의 도움으로
겨우 예수 공동체에 받아들여질 수 있었고

매일 예루살렘을 출입하며
자신과 같은 헬라 파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변론식으로 증거 한 것 같은데
스데반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그의 변론 식 증거를
감히 당해낼 재간이 없는 유대인들로부터
극심한 살해 위협을 당하자
또 다시 형제들에 의해 그가 나서 자란 곳
(로마 령 길리리아 속주 다소)로 보내지게 된다[9:30]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당시 유대 사회에서 바리새파인으로
엘리트 그룹에 속하며 기세당당했던 사울이
다만 예수의 제자가 된 것 때문에
하루아침에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된 것과
또 한 가지 예수의 제자가 되어
마음껏 전도하고 싶으나 살해 위협 때문에
더 이상 전도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내지는 모습을 보면서
두 가지 교훈을 마음에 새기게 된다

1.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훈련
2. 사역보다 더 중요한 훈련
[마음껏 전하고 싶어도 참을 수 있는 훈련]

핍박 자 사울이 예수를 만나고 그의 제자가 된 후
가장 먼저 경험하는 것은
낮은 자리로 내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바로 이점이 유대사회의 바리새파로써
소수 엘리트로 살았던 그가
광주리를 타고라도 탈출해야 하는 경험이었고
자기를 동료로 받아줄 줄 알고 찾아간
예루살렘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겨우 바나바의 추천으로
예수 공동체에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인데
그러나 이런 쓰라린 경험과 저평가 된 그의 모습은
이제 더 낮은 나리로 내려가고 또 내려가야 하는
고난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가 되는 첫 번 째 단계는
내가 세상에서 어떤 지위에 있었고
어떤 화려한 생활을 했던지 불문하고
광주리를 타는 인생으로까지 내려갈 수 있어야 하고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아픔으로부터 시작되어
낮고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사울의 모습에서 배운다.

내가 주님의 이름 때문에 어떤 비참한 자리에 떨어져도
그리고 내가 나 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저 평가된 인생으로 추락되더라도
이런 것에 개의치 않는 것을 배우는 것에서부터
예수의 제자가 되고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날 수 있는
연단 받은 선교사가 될 수 있음을 마음 깊이 받아 드린다.

묵상적용

2. 사역보다 더 중요한 훈련
[마음껏 전하고 싶어도 참을 수 있는 훈련]

그러나 예수 제자의 길로 들어선 사울에게 있어서
정말 참기 어려운 더 큰 고통은
자신이 어떤 비참한 자리에 떨어지고
어떤 푸대접을 받는다고 하여도 개의치 않았지만
마음껏 전하고 싶은 예수를 더 이상 전하지 못하고
자신의 고향 다소로 돌려보내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기와 같은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마음껏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전하고 증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자신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놓고 싶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사울에게 아직은 네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아니라고 하시며
예루살렘 교회 형제들을 통해
그의 고향 다소로 돌려보내시게 하셨다.

지중해로 나가는 뱃길이 시작되는 가이사랴 항구에서
어쩌면 그는 (자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배가 출향하여
점점 자신의 조국이 시야에서 멀어져 갔을 때
최근 자신에게 일어났던 변화들을 회상하며
자신이 언제 다시 조국 땅을 밟을 것이며
언제 다시 마음껏 예수를 전할 수 있을 것인지
막연한 장래를 앞에 놓고 기도했을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후에 그가 선교사가 되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써 보낸 간증 글에서
보게 되는 것처럼 아라비아 반도로 들어갔고[갈1:17]

그곳에서 삼년 동안 숨겨진 (괄호 안)의 시간을 가졌으며
삼년 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베드로를 만나
15일을 함께 유하면서
자신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계시의 일치를 확인하고
사도들과 같이 정식 사역자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갈1:18]

그러니까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배웠지만
사울의 경우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보낸
다 알려지지 않은 3년 침묵의 시간을 통해
주님의 사도로 연단 된 것을 엿보게 되는데
바로 이 점이 그가 마음껏 전도하지 못하고
예루살렘에서부터 고향 다소로 돌려보내진
숨겨진 이유처럼 보인다.

예수 제자의 길을 간다는 것은
낮은 곳으로 그리고 더욱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훈련의 시작이며
마음껏 나서서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써 주님 앞에서 배우는
고요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오늘 주신 말씀들을 통해 충분히 엿보게 된다.

지금 나의 시간은 주님 앞에서
어떤 시점에 있는지 자신을 점검해보며
사울이 바울로 변화되고
마침내 오고 오는 모든 시대에
후대 선교사들의 대부로 우뚝 세워지기까지
그가 걸어갔던 낮아짐과 연단의 길로
나도 나 자신을 굳게 세울 수 있기를
이아침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받아 드린다.

Lord!
Let me lower & lower
Make me deeper & dee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