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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사도행전

▼ 사도행전 14:1-18 왜 다른 곳으로 도망하여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by 朴 海 東 2018. 7. 9.

왜 다른 곳으로 도망하여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사도행전 14:1-18

묵상내용

나는 한 때 6. 25 동란 중에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하여
남한에 와서 큰 교회를 이루고 있는 목사님들을 보면 좀 불만이 있었다.
이것은 나 혼자만의 불만이 아니라
교단 내 의식 있는 젊은 목회자들의 불만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불만의 내용은 대체로
왜 당신들은 북한에서 교회를 끝까지 지키지 않고
양떼들도 돌보지 않은 채 핍박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 온 것이요“인데
최근 이러한 불만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도들의 선교행적을 보면서
의문이 풀려지며 이해가 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진다.

바울과 바나바가 수리아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제1차 세계 선교여행을 떠난 그동안의 여정을 살펴보면
실루기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 섬에 상륙하여]
살라미-바보에서 복음을 전하고
[다시 배타고 지금의 터키 남부 항구 버가에 상륙하여]
[내륙으로 깊이 들어가] 비시디아 안디옥 - 이고니온까지 나아갔다.

그런데 이 선교여정에 나타난 공통된 점을 보면
먼저 회당을 찾아가 복음을 전했고 이 복음에 대한 반응으로
유대인 뿐 아니라 많은 이방인들이 듣고 주께로 돌아오는데
더불어 시기심으로 가득한 유대인들의 선동으로 인하여
도시에 소요가 일어나고 많은 반대자들이 생기며
그들이 가해오는 물리적 핍박을 피해
다시 다른 도시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게 되는 순차를 따르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 역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일어난 소요와
극렬 반대자들의 핍박을 피해 이고니온에 와서 복음을 전하는데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고 주께 돌아오게 되는가 하면
극렬 반대자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들므로[14:5]
도망하여 루스드라와 더베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다.

이처럼 한 도시에서 일어난 복음 사역의 결말을 보면 항상 마지막은
도망하여 다른 도시로 가서 다시 복음을 전하는 장면으로 나아가는데
무슨 크게 잘못한 일도 없는데 왜 그들은 당당하지 못하고
도망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서 항상 마음이 걸리곤 하였다.

그런데 사도들의 선교행적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동선들은
그냥 상황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주님께서 시키신 대로 하는 것임을 보게 된다.

(네가 복음을 전할 때 )
이 동네에서 핍박하면 저 동네로 피하라 (마10:23)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사도들이 전도할 때 나타내시는 것 같은
표적과 기사로 이 몹쓸 놈의 핍박 자들을 벌하시고
계속 복음을 전하게 하시지
왜 그대로 두시고 다른 도시로 가도록 방임하시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의문은 이미 세계 선교의 시발이 된 스데반의 순교와
동시에 일어난 핍박 때문에 지중해 연변 세계로 흩어져 간
유대인 크리스찬들에 의해 복음이 퍼져나간 것에서 찾아보게 된다.

핍박이란 인간적 측면에서 보면 분명 좋지 않은 것이고
부정적인 요소로 보이지만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복음 사역에서는 이 핍박 때문에
복음 전파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아져 간다는 것을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도들의 선교행적에서도 다시 확인하게 되는데
주님께서 이러한 핍박들을 막아주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핍박 때문에 민들레 홀씨가 사방으로 퍼져나가
내려앉은 곳에서 또 다른 꽃을 피우는 것처럼
복음의 씨앗이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는 역사를 보게 되는 점에서
왜 오늘의 말씀에서도 두 사도가 비시디안 안디옥의 핍박을 피해
또 다른 도시 이고니온에 와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지 이해하게 된다.

묵상적용

오늘의 묵상 글 처음 시작에서 왜 6. 25 동란 전에 북한에 있던
교회 목사님들이 그 자리를 고수하지 않고 남한으로 피난 왔는지
부정적인 의문으로 시작하였는데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이러한 의문을 살며시 내려놓게 된다.

6. 25 동란 당시 상황을 보면 당시 한반도의 복음화는
거의 북한에 치중해 있었고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할 만한
평양을 중심으로 북한 전역에 많은 교회가 있었다.
신의주 제4교회를 맡고 있던 한경직 목사님 같은 분도
남한으로 와서 오늘날의 영락교회를 세우신 분이신데
이처럼 북한에 편중된 복음화가 동란으로 남쪽으로 피신 온
북한의 목사님들에 의해
동란 후 남한이 복음화가 촉진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왜 복음 전도에서 핍박을 받을 때
왜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도망치듯 떠나야 하는가 하는
이 의문에 대해서 이것은 비굴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가르치신 전략대로 하는 것이며
이 전략 속에는 복음의 확산이라는 신비가 숨겨져 있음을 배우게 된다.

이제 한국 교회는 마치 봄철의 보내기 시즌처럼 복음의 모판이 되어
이 많은 모판의 모들을 다른 논으로 옮기는 것처럼 되어야 하는데
가장 중점적으로 옮겨 심어야 할 곳은 북한 지역이다.
우리 남한이 이만큼 복음화 된 이면에는 핍박받은 북한의 교회들이
핍박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결과라 한다면 이제 다시 역으로
남한의 기독교가 북한의 복음화를 위해 쓰임 받아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지난 4월에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과 6월에 있었던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최근 미 국무장관 폼베이오가 북한에 가서 그 후속 회담을 하고 온 후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며 평화로 가는 길이 불가능한 것처럼
연일 쏟아내는 어떤 언론들의 보도들 보면서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분단 70 년 만에 이루어진 지각변동처럼 남북 간에 이루어지는
이러한 일들이 어찌 한 술 밥에 배부른 것처럼 될 수 있을 것인가(?)
한 반도 평화 정착은 몰라도 통일로 까지 가는 것은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이 일은 하나님께서 시작하게 하신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 분단 상황을 여전히 이용하고 싶은 어떤 사람들과
주변 열강들의 장난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남북 평화 정착과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통일의 그 날은
반드시 우리에게 찾아 올 것을 나는 믿는다.
그리고 믿기 때문에 오늘도 기도의 줄을 놓지 않고 간구한다.

주님!

분단 70년 만에 봄날처럼 찾아온
우리 한반도의 평화 무드가
반드시 종전 선언과
완전한 비핵화와 경제 교류를 넘어
평화 통일로 까지 이어질 것을 바라봅니다.

6.25 동란과 핍박으로
남쪽으로 내려 보내신 북한의 교회들을
이제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복음의 선순환이 오늘 우리 시대에 꼭 이뤄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