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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역대하

▼ 역대하 31:2-8 사명과 축복의 차이

by 朴 海 東 2018. 12. 17.

사명과 축복의 차이

역대하 31:2-8

묵상내용

어제는 목사 안수를 앞둔 한 형제와 함께 구룡 마을을 찾아갔다.
서울에서 가장 비싼 고층 아파트로 소문난 타워 펠리스가
한 블럭을 두고 연접해 있는 이 지역은 땅 값이 비싼 곳이어서
서울시에서도 오래 전부터 야심찬 개발 계획을 가진 곳인데
벌써 30년 이상 이곳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이
자신들의 생존권과 인권 문제를 주장하며 버티고 있기 때문에
강제철거를 감행했다가도 다 못하고 현제 500 여 세대가 남은 곳이다

대부분 판자 집으로 다닥다닥 붙은 촌락을 이루고 있어서
겨울철에는 화재가 많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이 마을에서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화재로 교회당이 불타서 다시 가건물을 지었다가 강제철거 당해
부득이 이 지역을 떠나버린 이전 교회가 있던 곳을 가게 되었다.

여기 저기 잡목과 잡풀이 우거진 공터에 몇 나무 가지를 이용해
붙들어 맨 천막이 그저 하늘 이슬만 가리는 정도로 쳐져 있었고
천막 주변엔 여기 저기 예배용 의자로 사용했던
장의자 여닐곱 개와 비닐 방석들이 나뒹굴고 있었는데
이것들을 잘 이용하면 노천 예배장소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라도 열심히 전도하여 목회하기를 원하는 형제와 함께
찢겨진 천막 아래서 함께 손을 맞잡고 기도하는데
기도하는 형제의 눈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눈물이
함께 손을 잡은 내 손등 위로도 촛농처럼 떨어졌다.

마을 사람 몇 분을 만나서 이 곳 사정을 물어보고 전도도 하며
예배 참석도 권유하였는데 이미 곤한 삶에 지쳐버린 이곳 사람들에겐
우선 라면 한 박스, 연탄 몇 장이 더 시급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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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에서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을 개혁하고 갱신한
이 풍성했던 유월절 행사가 일회성으로 마쳐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반열과 직임이
무너진 것을 수습하고 재정비하는 것이 급선무 인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다윗 시대의 전통을 따라
다시 제사장과 레위인 반열을 정하고
반차를 따라 자신들의 직임을 수행하도록 하였다[31:2]

그러나 왕명으로 이렇게 하라고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먹고 살아가는 생활 보장이 되지 않으면
그들은 다시 생계를 찾아 떠나버리고
이러한 제사장 레위인들의 반열이 다시 무너질 것을 알았기에
그는 왕실 재산 중에서 얼마를 정하여서
그들의 생활을 뒷받침 해줌으로 이 일을 견고히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수도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들에게도 명하여
성전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먹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서
그들이 맡은 직무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하였다.[31:4]

더불어 성전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돌아보게 하는 이 선한 일은
전 국민적으로 확산되어 이 땅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제 더 이상 성전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버려두지 말고
마땅히 드려야 할 것들을 드려서 돕자고 하였는데
이 일은 전 국민적인 호응을 얻어 백성들이 가져온 물자들이
무려 다섯 달 동안 성전 곳간과 마당에 쌓여지게 되었고[31:5-7]
개혁을 주도했던 히스기야는 이러한 백성들을 축복하였다.[31:8]

묵상적용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느 무명의 작가가 남긴
사명과 축복의 차이" 라는 詩가 떠오른다.

히스기야와 백성들이 그동안 버려두었던
성전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돌아보아
잊혀졌던 것들을 다시 기억하고
무너졌던 것들을 다시 세운 것처럼

오늘 내가 잊고 있었던 것들,
그리고 내가 방관했던 것들을
다시 기억하고 일으켜 세움으로
주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주의 뜻이 이땅에 이루어지게 하는 사명에
다시 나 자신을 세워야 할 것을
이 한 편의 詩에서 다시 한 번 도전 받는다.

--------사명과 축복의 차이 -------

모야모야병을 앓고 있는
15세 소녀의 투병기를 지켜보다가 울었다
문득 건강한 것은 축복이 아니라
거룩한 부담이이며 사명임을 깨닫는다.

곰팡이 냄새나는 지하 교회
서너 명 교인이 전부인 셋방 교회에서
월세 내는 날을 두려워하는
미자립 교회들이 존재하는 한
더 이상 예쁜 건물은 축복이 아니다.
부담이다. 사명이다.

뼈까지 달라붙는
쇠꼬챙이같이 마른 몸을 하고
목마른 눈초리로 쳐다보는
아프리카 검은 대륙의 저 어린 것들이 있는 한
하루 세 끼 따박따박 먹는 것은
더 이상 복이 아니다. 부끄러움이다.

잘 먹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할 일이 아니다.
잘 먹게 되어 죄송하다고,
우리만 잘 먹는 게 못내 죄송하다고
내가 가진 걸 나눌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평생 설교 요청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부흥회 한 번 해보지 못한 동역자가 있는 한
내가 부흥회, 세미나를 인도한다는 것은
결코 자랑이 아니다 두려움이다. 빚을 지고 살아왔다.

이 빚을 갚기 위해 뼈를 깎는 훈련과 성실로
영혼의 보석을 만들고 영혼을 맑게 행궈내야 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가슴 아파 울고 있는 교우가 있는 한
더 이상 내 자식이 건강하게 자라는 게 복이 아니다.
남들보다 앞서고, 칭찬거리가 많은 게 자랑이 아니다.
입 다물고 겸손히 그 분의 은혜를 기억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