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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갈라디아서 *

갈라디아서 1:1-10 (2) 진리의 싸움에서 저주까지 사용하기

by 朴 海 東 2019. 4. 5.

진리의 싸움에서 저주까지 사용하기

갈라디아서 1:1-10



1. 권위의 출처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 [1:1]

바울은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직계 제자는 아니었지만 
그들보다 더욱 충성되고 더 많은 고난도 자처한 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과 
그 후로 아라비아(광야)로 가서(그의 간증 고백처럼:갈1:11-17)
부활하신 주님의 더 깊은 계시를 받은 것에 근거한다.

사명이 사람을 만든다는 밀이 있다.
바울은 예수님의 직계 제자가 아니어서
그의 사도적 신분과 권위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는 자신이 부활하신 주님께로 부터 계시를 받고
또 보냄을 받은 사도적 신분과 권위에 충실하였다

오늘 나는 예수님께 직접 파송을 받았던
직계 제자들과 바울처럼 사도적 신분은 아니지만 
그들이 가졌던 사도적 사명에 입각하여 
먼저 복음을 받고 구원 받은 자로서 
밤이 밤에게 말하고 낮이 낮에게 전하는 말처럼 
이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하여 지는 
이 영광스런 복음 전도의 사명 자가 될 것을 마음에 새긴다. 
 
2. doxology[송영: 영광의 송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성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목숨을 내어주시까지 
그리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 주신 이 영광스런 복음의 이야기는
우리[내]가 드리는 예배에서 혹은 어느 때에든지 
영원히 칭송할 doxology[송영: 영광의 송가] 이다.

우리가 가진 찬송가의 앞부분에 있는(1-10장 내외 찬양들)은
순전하게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찬양으로 구성되어 있는 바 
예배 찬송 중의 찬양의 꽃인 송영(doxology)들로서 
예배 시간 외엔 잘 안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앞으로는 더욱 자주 부르는 기회를 가져야 되겠다.


3. 저주 [Let them be under God"s curse] (1:6-9)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1:8]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서라면 
겸손하게 자신을 가장 낮은 자리에 놓는 바울이지만
이 복음을 변질시키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가장 단호하게 저주까지 퍼부을 정도로 
과격해질 수 있는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에게 죄 사함을 얻게 하고 생명을 얻게 하는 
이 복음 진리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얼마나 그를 휘어잡고 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누군가 말하기를 코카콜라 사장의 혈관에는
코카콜라가 흐른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바울의 심장을 관통하여 온 몸에 흐르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피를 연상케 하는 
이 복음에 대한 애착과 집중 때문에 
그가 복음 변질 자들에 대해 퍼붓는 이 저주의 말이
그냥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나는 과연 사람의 죄를 사하고 생명을 얻게 하는 
이 복음에 대해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애착하는 자 인가(?)

젊은 시절 첫 개척 목회를 부산 광안리 바닷가 쪽에서 했는데
그 곳은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곳이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전도지를 만들어
매일 이 집, 저 집 대문을 두드리며 복음을 전하였다
(물론 지금은 이단들이 이런 방식으로 하도 극성이어서 
잘 써먹지 않는 방법이나 그 당시 통하는 전도 방법 이었다.)

이렇게 전도하다 몰몬교 건물 앞에서 몰몬교를 믿는다고 하는
한 청년에게 전도하였는데 그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내가 전하는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교회에도 나올 것을 약속했다

그런데 그날 수요일 밤 예배이었는데 예배가 마칠 무렵
예배당 입구에 서 있는 그 청년의 모습을 보았는데
낮에 보았던 것과는 달리 눈에서 미움과 중오가 번뜩이며
살기 띤 눈빛으로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낮에 내가 전한 복음을 무효로 해달라고 하며
자신이 믿는 몰몬교로 가겠다고 말하기에 만류하였는데
어찌나 완강하게 대들 듯이 하는지 이상하게 생각하고 
주변을 보니 코쟁이(미국인 몰몬교 선교사)가 그를 데리고 와서
뒤에서 조정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예배드리러 온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없는 늦게 까지도
남아서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혔는데 
진리를 받아드릴 마음의 자세는 없고 이미 결론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대드는 이 사람들에 대해 나는 더 이상 싸우기보다 
그럼 알아서 하라는 말로 이 진리 논쟁을 종결 짓는 것으로 끝냈다.

그런데 복음을 변질시키는 자들에 대하여 
저주까지 퍼붓는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복음에 대한 진리 사수와 변증에 사활을 걸지 못한 나의 모습을
주님 앞에 진심으로 참회하게 된다.

대체로 일반 사람들은 저주를 무서워하는데 
왜 나는 그 때  잘못된 교를 퍼트리며
복음을 거부하는 이 사람들에 대해 
왜 좀 더 과단성 있게 맞대응하지 못했는지 정말 마음이 아프다.

물론 하나님의 선택에서 배제되고 유기되는 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도 그냥 내버려 두시며 알아서 하게 하시는 것도 
무서운 처리 방법 중 하나이지만
그래도 바울처럼 저주까지 퍼붓는 적극성으로 나가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내 마음에 흑점으로 남았고 내 마음에 아픔이 되며 
이후로 진리 싸움에 대해 내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경종이 되었다.

주님!
진리의 싸움을 할 때
목숨을 거는 자세로 
저주까지도 퍼부을 수 있는 자세로 
복음을 사수하고 
복음을 변증하는 진리의 일꾼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