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성서당/* 갈라디아서 *

갈라디아서 1:11-24 (2) 바울의 간증에서 배우는 것

by 朴 海 東 2019. 4. 5.

바울의 간증에서 배우는 것

갈라디아서 1:11-24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의 2차 선교여정에서 세워진 교회 인데 
그가 떠난 이후 유대에서 올라온 어떤 거짓 교사들에 의해 
변질된 복음이 전해져서 
복음과 율법이 교묘히 섞여진 다른 복음에 유혹된 것 같다. 

그런데 이 거짓 교사들은 바울이 예수님의 직계 제자가 아니라고 
그를 깎아 내리는 방법으로 
그가 전한 복음에 대한 권위와 순수성도 깎아 내렸던 것 같다. 

오늘의 말씀에서 바울이 자신이 직접 주님의 계시를 받은 자로서 
사도적 권위를 밝히며 특별히 다메섹에서 있었던 첫 회심에서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간증으로 밝힘으로써 
자신이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 아닌 
주님께 직접 받은 복음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의 간증으로 구성된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의 회심 이후 이방인의 사도로 우뚝 서기까지 
세 가지 동선 변화에 주목하게 된다 

1. 다메섹 회심이후 
어제의 핍박자가 오늘의 전도자가 되어
약 2년 이상 3년까지 아라비아(광야)로 들어가 
수도사적 삶을 살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2. 아라비야(광야)수련기를 마치고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다가 
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앞선 사도들을 만나 교제하려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3. 그는 왜 할 일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 
자신의 고향인 길리기아 다소로 돌아가야 했던가?

오늘의 말씀에서 추론되는 위의 세 가지 의문을 묵상하면서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을 구하게 된다. 

1-1 그가 아라비아(광야)로 가야했던 이유

그의 간증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하나님께 선택 되었고 은혜를 받은 그는  
다메섹 회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극적인 체험을 했지만 
그에게 각인 되어 있던 유대교와 율법의 틀에서 벗어나 
율법을 완성시킨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에 깊이 들어가게 되기 위해서 
이렇게 광야 수련의 기간으로 이끌림 받은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생명 같았던 유대교와 율법의 신념과 신조를 내려놓고 
평생 복음 전도자의 길에 목숨을 걸만큼 돌연변이적 변화를 체험한 것 같다. 

2-1 그는 왜 광야에서 돌아와 다메섹으로 갔던 것일까?

그가 다메섹으로 간 것은 주님을 처음 만난 회심의 장소였고 또 일시적이나마 
그곳에서 자신이 만난 그리스도를 전했던 곳이기 때문에 그리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다른 사도들을 만나고자 한 것은 
그가 아라비아 광야 수련기간 중에 받은 주님의 계시가 
너무 크고 소중하며 많았기에 앞선 사도가 된 자들로 더불어 
서로 받은 계시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밟고자 한 것 같다. 

3-1.  
그런데 왜 그는 할 일이 많은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 길리기아 다소로 가야했을까?

부정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곳은 예루살렘에서는 이전의 기독교 핍박자 였던 자신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런 와중에 자기를 변호해주는 바나바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에는 이미 터를 잡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과 또 다른 전도자들이 있어서 
자신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그곳을 떠나 고향 길리기아로 돌아갔지만 

긍정적 관점 곧 하나님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는 태중에서부터 이방인을 위한 복음 전도자로 택함 받은 자였기에 
하나님께서 유대인 전도 중심의 예루살렘을 떠나게 하신 것이었고 
수 년후 예루살렘에서 그의 변호자요 추천자였던 바나바를 통해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수리아 안디옥 교회로 부름을 받아 
그곳에서부터 세계 선교의 길이 열리며 그를 부르신 뜻을 이루게 되는 것을 본다

적용하기

자신이 받고 전한 복음이나 다른 사도들이 받고 전한 복음의 계시가 
모두 일치한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변질된 복음의 가라지를 덧뿌리고 간 
거짓 교사들을 막아내고 성도들을 순전한 복음적 신앙에 다시 세우는 
바울의 진솔한 인생 역정의 간증을 읽으면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기까지 이끄시고 간섭하신 주님의 섭리를 엿보게 되며 
이러한 섭리와 이끄심은 바울 한 사람의 생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시대에도 복음을 위해서 부름받은 사람들 
그리고 나에게 까지도 적용되는 주님의 오묘한 섭리요 이끄심인 것을 확인하게 된다. 

나는 정말 어디에도 명함을 내밀 수 없는 미력한 복음 전도자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이러한 나를 여기까지 세우시기 위해 
주님께서 나 역시 내 어머니의 태중에서 나를 택정하신 것을 믿으며 
이 귀한 은혜를 입혀 주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더불어 내가 살아온 인생의 날들이 
많은 질곡과 협착한 골짜기를 지나온 것 같지만 
그리고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설 자리가 없었던 것처럼 
나 역시 인정을 받지 못해 마이너 리그로 밀려내려가기도 했지만 
이러한 많은 변화의 동선들이 그려진 것도 
결국은 지금의 나를 세우시며 특별히 국내에서보다 
이방 선교지에서 사용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섭리와 이끄심 이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설 자리가 없어
고항으로 돌아갔지만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그를 바나바를 통해  부르시고
넘치는 사역의 기회를 주셨으며
14년 후에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2:1)
이방인 교회를 대표는 사도로 인정을 받으며
율법과 복음의 상관관계를 해결시키는 자로
쓰임 받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은 내가 나서서 찾기보다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의 간증을 통해 재삼 확인하게 된다

기도하기

주님! 
오늘 주신 말씀에서 
바울의 간증을 묵상하며
그의 간증 고백이 
곧 나의 간증이요 고백이며
동일하신 주님의 이끄심 가운데
오늘의 내가 서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부르신
이 복되고 의미있는
나의 인생과 삶을 감사드립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개척했을 때
그리고 지금 이 편지를 쓸 때에도
안질을 앓고 거의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불타올랐던 심정처럼

나도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교회를 살리는 
순전한 복음을 위하여 
나의 모든 것을 쏟을 수 있는
신앙과 삶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