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성서당/* 갈라디아서 *

갈라디아서 6:11-18 나의 자랑과 상처는 무엇인가

by 朴 海 東 2019. 4. 16.

나의 자랑과 상처는 무엇인가

갈라디아서 6:11-18

 

갈라디아서(편지)는 지금의 터어키 지역( 남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로 보내진 편지라고 하는데 그 지역의 교회들이 회람하면서 읽은 편지로 추정된다.
1차 선교 여행 때 선교했던 남부 갈라디아 지역에 복음을 전했는데 보통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였고 또 이방인들에게 전하였음으로 자연히 교회의 구성원들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섞인 교회가 되었고 따라서 갈라디아서의 핵심 논제가 된 율법, 특별히 할례 문제가 이들 교회 안에 이슈가 된 것 같다. 

바울은 실라와 함께 떠난 2차 선교 여행 때는 파송 교회인 안디옥으로부터 도보로 걸어서 이 갈라디아 지역 교회들을 순회하면서 지나갔는데 아마 그 때 자신이 없는 사이에 교회에 침투된 율법주의 변질된 복음이 교회를 위협한 것 같고 그는 2차 선교 여행 중에 이 편지를 쓴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그리스도 인이면서 할례를 받아 기독교와 유대교 양쪽을 다 만족시키려고 했던 이 풍조는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에게 잘 먹혀 들었던 것 같은데 이 할례의 문제를 바울 서신의 마지막 장 마지막 인사 글에까지 언급하는 것을 보면 순수 복음을 해쳤던 이 할례 문제는 끝까지 바울을 괴롭히는 문제로 작용한 것 같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6:17]

더불어 그는 이 문제에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게 하기 위하여 못을 박듯 선을 긋는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6:15]

[적용하기]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인상 깊게 닿아지는 두 가지 주제가 있는데 
그것은 나는 무엇을 자랑하는 사람인가? 와
나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상처)가 있는가? 이다. 

1. 나의 자랑은 무엇인가? 
나는 예수의 흔적(상처)를 가졌는가? [6:13-14. 17]

1) 자랑 
갈라디아 교회의 할례 신봉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로써 유대교에서 주장하는 할례와 복음이 회개의 표시로 증거하는 셰례 두 가지를 다 붙잡고 싶어한 것 같은데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몸에 표시로 남지 않는 세례보다 몸에 표시로 남는 할례를 더 선호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자신에게 적용하고 인치는 표시로써 세례 받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밝히며 자신은  십자가만을 자랑하겠노라고 선포한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6:14]

바울의 고백이며 선포인 이 십자가의 자랑을 묵상하면서
내가 세례를 통하여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나의 죽음으로 받아드린 표시로 세례를 받은 후 
나는 이 십자가에 대해 어떤 관계로 살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이 박해했던 예수를 빛 가운데서 만나고
예수 십자가의 죽으심이 자신을 위한 것인 것을 깨닫고
그 곳에 사는 예수의 제자 아나니아에게 안수(세례)를 받은 후[행10:17]
예수 십자가의 죽으심을 자신의 죽음과 철저히 동일시하며 살은 것같다.

그는 예수를 만나기 전 모든 유대인들이 부러워할만한 
화려한 스펙도 가진 사람이었지만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고[빌3:8]
세상이 내게 대하여 그리고 내가 세상에 대하여 못박혔음으로
내게 중요한 것은 십자가 뿐이며 더는 아무 자랑할 것도 없음을 밝힌다. 

그런데 바울의 이 고백이 나에게는 너무 먼 고백인 것을 발견한다.
나는 아직 세상에 대해서 죽지 못해서 얼마나 자주  세상의 것들에 연련하며 
나에게는 자랑할 것들이 없음을 인하여 기가 죽는지 스스로 한심할 정도이다. 

엊그제 어느 공동체에 밭일을 도와주러 갔다가 우연히 CGNTV 방송을 켜니
신학교 때 같은 반에서 공부한 동창이 강남의 수천명이 모이는 교회  목사가 되어
방송에 설교하는 모습이 나오기에 나는 어디 한 번 화려한 곳에 불려가지 못하고 
잡역부 선교사가 되어 이렇게 종처럼 일만하고 사는가 한스럽게 여겨졌다 

그러나 나는 예수 십자가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과 동일시하며 
자신이 세상에 대해 그리고 세상이 자신에  대해 죽은 바울의 고백을 보면서 
내가 절대 이래서는 안된다고 나 자신을 추스리며 나 자신에게 다짐하게된다

주님! 
자랑할 것이 없음으로 한탄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 십자가의 죽음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은 것을 한탄하며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해 철저히 죽은자가 되게 하옵소서

2) 상처
바울은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에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 예수의 흔적은 무엇일까?
예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다 이곳 저곳에서 
동족의 위험/강과 바다위 위협/ 그리고
태장과 수없이 많이 맞은 채찍의 위험들이 
그의 몸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것은 오히려 작은 것이며 그는 그가 개척한
여러 교회들이 시험에 빠지고 위기에 처할 때 마다 
많은 심적 고통을 받으며 이런 것들이 상처가 된 것 같은데
겉으로 드러난 육체의 상처보다 교회들을 염려하는 
마음의 상처가 그의 몸을 더욱 쇠약하게 했고 
사역 말기에 눈도 실명되어 다른 사람이 대서 해준 편지를
마지막 인사 글이나마 자신의 친필 싸인인 큰 글씨로 써야 했을만큼 
몸과 마음에 많은 예수를 위한 흔적이 남은 것 같다.

요즘 선교지에서 돌아와 사역 20여년 만에 남은 것은 
거의 청력을 잃어가고 있고 질고를 얻었으며
선교지 이곳 저곳에 교회를 세우고 많이 도와주고도 
때로 받은 상처들로 마음이 우울할 때가 많았는데 
오늘의 말씀에서 바울이 자신의 몸에 지니게 된 상처들이
예수의 흔적이라고 하는 말에서 큰 위로가 된다. 

바울이 몸에 지녔다고 하는 예수의 흔적과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오히려 말하기가 부끄러운 흔적들이지만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온 무명의 용사처럼이라도
나의 선교 사역에서 발생된 이런 상흔들을 
주님께서 알아주신다는 위로로 마음 깊이 받아드린다.

주님! 
나의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들을 
비관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고백을 통해 
나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후로는 내 몸과 마음의 상처들을
괴롭게 생각하지 않게 하시고
영적 싸움터에서 많이 싸우고 돌아온
영광스런 상처로만 남아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