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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이사야

이사야 53:1-7 이사야가 전하는 예수님의 자화상을 보면서

by 朴 海 東 2019. 4. 20.

이사야가 전하는 예수님의 자화상을 보면서

이사야 53:1-7


이사야가 전하는 예수님의 자화상을 보면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살았던 예수님의 삶은
이새의 줄기에서 나오는 한 싹으로서 [사11:1]
부드러운 흙을 뜷고 나오는 것같은 행복한 출생이 아니라 
마치 몸부림을 치면서 메마른 땅을 뚫고 나온 고운줄기처럼 
그 출생부터가 박복하고 힘겨우셨다

가축의 우릿간 여물통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삶은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헤롯의 살해 위협을 당해 
가족이 애굽으로 피신해야 했으며 
후에 다시 돌아온 유대 땅에서 터전을 잡지 못하고 
가난한 변두리 인생들이 모여사는 갈릴리 빈촌에서 자라셨다

성장기에는 적어도 여섯 명 이상의 동생들과 함께 자라면서
배도 많이 고프셨는지 그가 전하신 기도 비유 가운데 
늦은 밤 이웃 집에 떡 세덩이를 빌리러 가는 이야기에서 
그가 식민지 여느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처럼 
가난과 질고를 벗어날 수 없었던 성장기를 엿보게 한다. 

특히 3-4절에서 간고를 많이 겪었고 질고를 아는 자라고 
반복해서 강조되는 것을 보면 
위생시설도 갖추지 못하고 지금처럼 병원도 없던 그시대에 
병치례도 자주 하셨던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또 그가 가진 배움의 기회란 무엇이 있었겠는가 
고작 동네 회당에서 토라를 배운 것 외에 달리 무엇이 있었을까? 

그러나 깊은 밤, 깊은 땅속을 흐르는 지하수처럼 
그는 나자렛 마을의 빈들이나 언덕 위에서 
혹은 목공 일을 하는 공방에서 
고요한 묵상과 침묵 가운데 맑은 영성을 키우며 
자신을 불러내시는 부르심의 때를 기다리셨는데 

그러다가 마침내 이사야의 예언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들려왔을 때
이제 그만 세상을 향해 나가라고 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부르심으로 들으셨고
이사야가 자신에 대해 기록한 그 자화상을 따라 나가셨다. 

아무 자랑할 만한 출생성분도, 명문 가문도, 학벌도 갖지못한 그가 
나서서 하는 일들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고 
오히려 비웃음과 멸시가 따랐기 때문에 
주로 갈릴리를 중심으로  사역하셨는데
그나마 예루살렘과 유대에 있는 기득권 세력들에게 
위험인물로 낙인 찍혀져 마침내 십자가 사형으로 내몰리게 되셨다.

그는 십자가 사형으로 처형되는 그 과정에서도 
선지자 이사야가 그려놓은 자화상에 충실하셨는데 
그것은 우리를 위한 대리적 대속적 죽음에 자신을 내 맡기는 것이었다

"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째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4-5]

적용하기

우리 앞서 주님을 섬겼던 믿음의 선인들이 
가장 인상깊게 받아 들였을 오늘의 말씀 곧
수난의 종으로서 주님의 자화상은 
영광의 종을 꿈꾸는 나의 자화상을 부끄럽게 한다

나는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그 분의 자화상이 그려내고 있는 수난의 종으로써 보다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영광의 종이 되기를 얼마나 탐내고 있었던가 

한 가난하고 볼품없는 목사, 선교사의 길을 가게되더라도 
결코 그가 가신 길을 피하려고 하지 말자
항상 주님을 따라 다녔던 멸시와 거절당함과 
질고, 슬픔, 고난 속에서 주님을 만나자
그래서 나의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걸어가신 
그 자화상의 밑그림 만이라도 그려지게 하자.

영감있는 성화를 많이 그려낸
독일 신부 지거 쾨더 (Sieger Koeder)가 그린
세족식 그림을 보면 한 제자의 발을 씻어주기 위해 
무릎을 끓고 구푸린 예수님의 얼굴은 볼수 없지만
대야 속의 더러운 물속에 비쳐진 예수님의 얼굴은 
오늘 내가 진정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의 얼굴을 보고 싶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림으로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데
이사야 53장이 전하는 
수난의 종으로서 섬김의 길에 그 해답이 있음을 본다.

[기도]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영광의 종을 꿈꿨던 부끄러운 자화상을 지웁니다 
내 안에 다시 그리는 수난과 섬김의 종으로써
주님의 자화상을 다시는 지우지 않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