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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예레미야

예레미야 6:1-15 탐심으로 망친 우리 동네 밭농사 이야기

by 朴 海 東 2019. 5. 26.

탐심으로 망친 우리 동네 밭농사 이야기예레미야 6:1-15

묵상하기

우리 동네 밭농사 이야기 

김포공항 근처 “나곡마루” 쪽으로 이사 온 것이 어느덧 5년이 지났다.
한강이 가까운 곳이라서 그런지 이전에 이 지역은 논이었다고 하는데 
서울 Sh공사가 땅들을 사들여 한참 신도시 개발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팔리지 않고 놀고 있는 땅들이 많아서 
우리 아파트 주변만 해도 한쪽은 엄청나게 번화한 도심인데 
한쪽은 들녘에 파란 풀들이 자라는 공터로 남아 있어
주변 사람들이 그 공터에 농사를 짓게 된 것이다.

나도 그 곳에 들어가 마치 미국 서부개척시대 사람들처럼 
내가 농사하고 싶은 만큼의 땅을 확보하여 경계선을 치고
여러 가지 작물들을 심었는데 입 소문이 퍼지면서 멀리서도
이 곳으로 농사를 지러 오는 사람들이 생기다 보니
농사 짓는 사람들 사이에 첨예한 이해관계가 발생하고 
싸우는 일들도 종종 일어났다.

나와 이웃한 밭 아주머니는 어떤 욕심쟁이 아주머니와 
밭 가운데 길을 내주는 문제로 시비가 붙어서 
서로 엉켜 싸우다가 손가락이 부러지는 사고까지 났는데
아무튼 이 곳에 조그마한 땅이라도 붙이고 일하다 보니 
사람들의 심리 속에 들어있는 탐욕이라는 것이 
서로의 이해관계가 부딪힐 때 어떻게 발동될 수 있는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본래 자신들의 땅도 아니면서 임의로 들어와 농사 짓게 되는 처지에
고맙게 생각하고 조금씩 양보하는 마음으로 서로 사이좋게 이웃하며
행복한 농사를 지으면 좋으련만 사람들의 심리 속에 담겨 있는 
이 무서운 탐심이라는 것이 충돌하여 
조금이라도 더 땅을 차지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물고 물리는 싸움이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탐심의 불똥들을 많이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농사 짓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이 공터 주변에 살고 있으면서도 뒤늦게 뛰어들려고 했지만 
농사에 참여하게 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에 시기 질투가 일어나서
관련 관청에 어떻게나 많은 민원을 제기하였는지 
어느 날 더 이상 이 곳에 농사 짓지 말라는 팻말이 여기저기에 붙었고
농사지기를 시작한 4년 차 지난 가을 마침내 이 넓고 넓은 곳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뺑뺑 둘러 철재 펜스를 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마음껏 욕심을 내가며 농사 짓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는 일이 되어버린 셈인데 
나는 그나마 우리 아파트 후문 쪽에 살다 이사 가는 사람이 
자신의 집터와 쪼그만 밭을 남겨 놓고 간 것을 인계 받아
소일거리 삼아 여전히 작물을 재배하는 은혜를 누리고 있다

아무튼 우리 아파트 주변에서 벌어진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통하여
사람의 심리 속에 들어있는 
탐심과 탐욕이 만들어 내는 무서운 충돌과 
또 다른 사람들의 심리 속에 들어있는 
더 무서운 시기와 질투라는 죄적 요소들이 
얼마나 불행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를 
나의 몸을 부딪쳐가며 경험한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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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들어 연속되고 있는 예레미야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연일 연속되는 전쟁 재앙의 경고와 회개의 촉구
그리고 그들을 파멸로 몰고 가는 죄악이 무엇인지를 보게 된다.

오늘 주신 말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을 내가 멸절하리라 하시며
북방 군대의 침입으로 그들이 아웅다웅 싸워가며 재산을 확보했던
아까운 처소들이 전쟁으로 훼파되어 
고작 양떼의 풀을 먹이는 처소로 변할 것이라고 하시는데[6:1-6]

이 전쟁을 발발시키는 자들이 북방의 군대 바벨론이기 이전에 
야곱의 집 유다 백성들의 언약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 자신이시며
이렇게 까지 하실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죄악들을 열거하신다.

1. 예루살렘- 천벌 받을 성, 그 안에는 오직 포악한 것뿐이라[6:6b]
2. 샘이 물을 솟구쳐 내는 것같이 포악을 쏟아내
폭력과 탈취와 구타와 질병[상처]와 살상이 가득하고
3. 들을 귀가 없어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받기보다 
자신들을 향한 욕으로, 공격으로 받아 드리는 자들이 되었다[6:10]
[어디 그뿐인가]
4.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하고 [6:13]

5. 거짓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병적 신앙을 고쳐주기보다 가볍게 여기며
평강하다 평강하다고만 자장가 소리나 하고 있으면서 [6:14]
자신들의 거짓에 대해 양심의 가책도 없이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니
언약의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 
그들을 징벌하시기를 그들이 거짓으로 속삭여준
평강의 반대로써 꺼꾸러뜨림 당함 것을 예고하신다.[5:15]

적용하기

오늘의 묵상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 유다가  
왜 하나님의 싫어하심을 받아 황폐하게 되고 70년간 
주민이 없는 땅이 되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보게 되는데[6:8]
많은 죄상들이 열거된 오늘의 말씀에서 한 가지로 축약한다면
그 것은 “탐욕”의 죄악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6:13]

물론 사람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재산자본을 확보하려는 
강력한 심리적 욕구가 있어서 이것이 자본주의를 생성하고
발달시키는 원리가 되기도 하는데 
문제는 사회적 약자인 이웃과 공익을 헤쳐 가면서까지
자기 이익을 도모하고자 할 때 
여기서 무서운 탐심이 발동하게 되고 사회 공익을 해치며
따라서 부득이 정부가 나서서 시장이 자본논리만 가지 않도록
공평과 공의를 위해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발생 된다. 

그러나 예레미야 시대 그러니까 유다 왕국 몰락에 즈음해서는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그리고
이런 사회적 악을 책망하고 견제해야할 지도적 위치에 있는 
선지자와 제사장들까지 모두 이런 사회악들을 눈 감아 주고
평강하다 평강하다고만 속삭였으니 
하나님께서 개입하시지 않으면 안 되는 막다른 상황에 몰린 것이다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이 “탐심”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내 마음 속에 산상 수훈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다.
천국백성의 헌장이라고 할 만한 저 유명한 산상 팔복과 
산상수훈[마5-7장]이야 말로 탐심과 탐욕으로 충돌되는 이 사회에서
예수를 나의 왕, 나의 주로 모시고 
천국의 백성 되고 예수의 제자가 된 성도들이 마음 깊이 새기며
탐욕과 탐욕이 충돌되는 이 죄악 세상에서 도리어 빛으로 드러나고 
천국의 빛을 발하게 하는 기회가 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네가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5:42]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48. 16]

기도하기

주님!
지극히 작은 이해관계 속에서도
서로의 탐욕이 충돌하는 
이 죄악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내 안에 탐심이 부추기는 
자본주의 논리로만 
살아가지 않게 하시고
천국백성의 헌장인 
산상 수훈의 정신을 실천하는 자로서
이웃과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천국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시며

그 언젠가 주님을 뵈옵는 그날 
내가 세상에서 살다온 날을 결산하실 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여 
너는 나의 착한 제자라고 하시는
주님의 위로와 칭찬을 받을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