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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예레미야

예레미야 8:13-22 지금은 위로와 축복보다 회개를 외쳐야 할 때

by 朴 海 東 2019. 6. 1.

지금은 위로와 축복보다 회개를 외쳐야 할 때예레미야 8:13-22

묵상하기

[뜻으로 읽는 오늘의 말씀 개요]

앞선 말씀에서 유다 백성들이 망조의 길로 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전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전달하게 만든
서기관의 거짓 붓장난이라는 표현으로 지적했으며[8:8]

이로써 그들이 딸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다고 하였는데.[8:11]

이어지는 오늘의 말씀에서는 이런 거짓 위로의 결과로 
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고침을 입을 때를 바라나 놀라움뿐이로다 탄식한다[8:15]

그들은 속았다. 철저하게 속았다. 
아니 속았다고 하기 보다는 자기들이 듣고 싶은 말씀
그러니까 죄에 대한 지적과 책망, 회개 같은 것들보다
위로와 축복 같은 이야기만 듣고 싶어 하니 
자연이 당시대에 거짓 선지자들이 양산되었고 
마침내 이런 쓰디쓴 결과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더 놀랍고 두려운 것은 그들이 이처럼 북방군대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전쟁 상황에서 농사를 지을 수 없어
그 땅의 주산물인 포도와 무화과를 얻지 못함으로 [8:13]
꼼짝없이 죽게 된 상황에 내몰리고 이렇게 된 것이
모두 자신들의 죄악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회개하며 돌아가기보다 

「우리가 어찌 가만히 앉았으랴 모일지어다! 
우리가 견고한 성읍들로 들어가서 
거기에서 멸망하자.[8:14] 말하고 있으니 

죄를 깨닫게 된 때에도 회개하기보다 
조금 더 수명을 연장한 후 
멸망으로 가겠다는 이 완악한 마음들이 더 무서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은혜 받지 못하고 
멸망으로 가게 되는 자들의 모습인 것 같다. 
진정한 참회와 회개는 아무나의 것이 아니다
이 것 역시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이고 축복인 것을 본다. 

회개하고 살길을 찾아야 할 때 
끝까지 교만을 버리지 않으며 허튼 소리나 하고 있는
유다 왕국 말기의 백성들을 보면서 이악한 시대에 
참선지자로 말씀을 전한 예레미야의 고통을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오늘의 말씀 후반부[8:18-22]는 
유다 민족이 당할 끔찍한 일들을 바로 눈앞에서 보면서 
상한 마음의 탄식을 쏟아내는 예레미야의 고통을 본다.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병들었도다. [8:18]

딸 내 백성이 상하였음으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8:20-22]

적용하기

1. 지금은 위로와 축복보다 회개를 외쳐야 할 때[8:13-17]

평소 가깝게 지내는 장로님 한 분과 만날 때 마다 
교회 이야기를 많이 듣곤 하는데 **에 있는 자신의 교회는 
병원 의사들만도 60-70명이 되며 법조인들은 물론
사업가들도 많아서 은행 지점장 정도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대한민국의 엘리트 교회라는 것을 은근히 자랑처럼 말씀하신다. 

어디 그 뿐인가 교회 목사님 자랑도 많이 하시는데
특히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서 자랑이 많으시다. 
내가 어떤 설교를 하시는데 그러냐고 물으니 
주일 교회 예배에 나오는 성도들에게 어떻게 하든지
위로와 축복의 말씀으로 Up grade[업그레이드]시켜서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가게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목사님이시라고 하기에 
그 장로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럴 듯하게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연속되고 있는 예레미야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설교는 유다 왕국 말기의 거짓 선지자들이 했던 것이며
이런 설교에 길들여지고 중독된 성도들이 세상으로 나가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한 영향력의 사람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세상에서 자신의 부와 잘됨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 
특별히 사회적 약자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람들이 됨을 본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최근 병원을 많이 드나들면서 
환자들을 눈 밑으로 내려다보고 갑질 하는 의사들을 보았다. 
자기 돈 내고 치료받는 환자의 알권리라던가 인권 같은 것들이
무시를 당하고 중요한 이야기도 간호사를 통해서 전달해주며
간호사가 전하는 전화 한 통화로 끝내 버리는 의사들도 보았다

내가 당신을 치료해 주는 사람이며 당신은 나의 환자 이니까 
당연히 나의 의도대로 따라야 한다고 하는 것 같은 
의사와 환자 사이의 갑질 횡포 같은 것을 느끼면서 
우리 사회가 인권 운운 하지만 
아직 인권의 사각지대가 특히 의료계에도 많은 것을 보았다.

나는 나에게 자기 교회와 목사님을 자랑하며 
병원 의사들도 60-70명이나 된다는 그 잘난 교회에서 
그렇게 설교도 잘하신다는 그 교회 목사님이 
진정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사회의 죄악을 진단하며
성도들의 죄악을 책망하고 회개함으로 섬김의 자리로 내려가라고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설교를 
과연 몇 번이나 했을지.......나름대로 의구심을 가져본다. 

오늘 우리 사회가 부패하고 완악한 사회로 가는 이면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바른 생활을 가르치기보다 위로와 축복, 번영과 성공 같은
그럴듯한 말씀으로 포장하여 성도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거짓 평안 가운데 살게 만든 말씀 강단의 책임이 큰 것 같다.

정말 이렇게 나가다가는 오늘의 말씀 마지막 구절의 한탄처럼
길르아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들도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8:22] 한탄하는 때가 도래할 것을 염려한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로서 
예례미야의 상한 마음의 기도 본받기[8:18-22]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멸망 직전과 직후에 
유다 백성들의 운명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알게 하시는 말씀을 받아 전하는 선지자가 되어서 그런지 
그 어떤 시대의 선지자들보다 단장의 눈물을 많이 흘린 
눈물의 선지지가 된 것 같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시기 한 주일 전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도 이제 30여년 후면[주후 70년]
로마군에 의해 무너지게 될 예루살렘의 운명을 내다보시며
성벽이 금으로 입혀진 것을 자랑하는 제자들의 질문과 달리
예루살렘 성벽을 바라보며 우셨는데[눅19:41-48]

오늘의 말씀이 보여주는 예레미야의 슬픔과 눈물이
예수님의 슬픔과 눈물에서 다시 터져 나왔고 
이것은 다시 오늘 이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나]의 가슴과 기도에서 눈물로 나와야 할 것을 배운다.

예레미야를 통해 주시는 말씀을 묵상해 나가면서 
내가 예레미야의 가슴에 있었던 그 슬픔의 덩어리와 
그 탄식의 기도를 보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다면
이 예레미야 말씀의 묵상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기도하기

주님의 임박한 심판과 진노를 앞에서도
회개하지 않는 백성들과 

끝까지 회개를 거절하고
그 영혼들이 치유 받지 못한 채
멸망으로 가는 백성들을 보며

단장의 눈물을 흘리고 울어야 했던 
예레미야의 상한 마음의 고통과 
기도를 내 안에도 주셔서
 
나도 이 시대에 주님 앞에 
내가 속한 이 나라와 민족을 대신해서 
두 손 들고 항복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한 사람이 될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