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치유와 회복을 위하여
예레미야 11:9-17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아침 일찍 가기위해
어제 밤 자명종을 5시에 마추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 두 시에 잠에서 깨었다.
거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로
줄기차게 비가 쏟아지고 있다.
어제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밤새도록 내리는 것을 보니
가뭄으로 시들했던 밭작물들이 다시 생기를 얻고 살아날 것 같다.
그간 비가 오지 않아 갓 심은 고구마며 고추와 참외 같은
밭작물들이 말라 죽지 않도록 물을 길어다 주었는데
당분간 이런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메마른 땅에 비를 내려 주시고 해갈하게 하시는 주님께
내 갈한 심령에도 단비를 내려주시고
이아침에도 읽게 되는 생명의 삶 오늘의 본문을 통해
내게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을 주시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말씀을 편다. [예레미야 11:9-17절의 말씀 이다]
두 번, 세 번 말씀을 읽어보아도 마음에 닿아지는 것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 가운데 유독 마음에 닿아지는 두 구절이 있다.
우상 숭배의 죄악으로 이미 심판이 예정되어 있는
유다 백성들에 대해 하나님의 애증이 담긴 말씀의 표현인데
나의 사랑하는 자가 많은 악한 음모를 꾸미더니
나의 집에서 무엇을 하려느냐? [15:11a] 와
여호와께서는 그의 이름을 일컬어 좋은 열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였으나......[11:16a] 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 백성 유다 민족에게 주신
아름다운 호칭이며 사랑스럽게 바라보신 모습인데
아 ~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들은 돌아서도 너무 돌아서버렸다
그 돌아섬이 너무 지나쳐
하나님께서 "반역"이라는 표현을 쓰셨다. [11:9]
자신들의 보호자시며 왕이시며 주군이신 하나님을
철모르는 아이들이 신발을 벗어 엿 바꾸어먹듯
자신들에게 생명같이 소중한 하나님을
헌 신짝 버리듯 버리고 다른 우상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했던가?
아니다 그들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그 축복의 땅에서
먹고 배부르며 부족함이 없게 된 축복 속에서
감사로 하나님을 찾고 찬양함으로 경배하며
이 복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며 행복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자신들의 육욕적, 정신적 만족을 위해
그 땅에 남아 있는 가나안 이족들은
어떻게 만족을 추구하며 사는지 엿보다가
마침내 미혹되었고 하나님보다 그것들이 좋게 보였다.
그들이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마땅히 쫓아내야 했던
그 땅 가나안에 남은 이족들의 우상 문화가
그들에게 그렇게도 매력적이었던 것일까?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택했다
그런데 자신들이 택한 우상 하나 하나에도 양이 차지 않았는지
끝없는 만족을 채워가기 위해 계속 우상을 바꾸다 보니
그 우상의 수효가 많고도 많아져서
하나님께서 자신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유다 백성들을 향해
"유다야 !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와 같도다." 탄식하실 지경에 이르렀다[11:13]
그러나 그들은 선지자를 통하여 보내오는
여호와 하나님의 애타는 호소와 탄식을 들으면서도
어찌된 일인지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며
많은 우상을 숭배하면서 한 편
그들의 존재 이유와 목표가 되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해서는
그래도 좀 미안하고 걸리는 마음도 있는지
성전에 들어가서 소나 양 같은 재물을 드려 제사 드리는
이중성을 보였는데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많은 악한 음모를 꾸미더니
나의 집에서 무엇을 하려느냐
거룩한 제물 고기로 네 재난을 피할 수 있겠느냐
그 때에 네가 기뻐하겠느냐 ......[11:15]
우상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기는 위선적인 이중성에 대해
하나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너의 어떤 제사와 제물로도 너에게 예정된 심판을 돌이킬 수 없다.
나는 나의 영광을 그 어떤 우상에게도 주지 않는다.
나는 네가 너의 성읍 수와 같이 많은 우상들을 버리고
나 하나로 만족하며 나 하나만을 사랑하고 섬기기를 원한다.
적용하기
아내가 오늘 아침 8시에 수술을 받는다.
이전에 응급실로 가서 거의 열 바늘을 꿰맨 손목 상처가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손등이 저리기도 하고
감각이 없는 부분도 있고 해서
오늘 성형외과에서 재수술을 받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응급실에 가서 상처를 꿰맬 때
손목에서 손으로 가는 신경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된 치료를 했어야 했는데
그냥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고
그냥 상처만 봉합해 버린 것이
이렇게 상처 부위를 다시 절개하고 다시 신경을 찾아
신경을 이어주는 수술을 해야 하는 것 같다.
어제 저녁 마취과에서 전신마취에 대해서도 상담하고
싸인을 했는데 아내는 잠시나마 이지만
죽음의 세계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 병실을 나서기 전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
손목에 깊이 페인 상처를 십상이 여기고
그냥 상처만을 봉합만 해버린 것이
이렇게까지 번거로운 수술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오늘의 묵상과 매치되어 교훈이 된다.
진정한 회개는 죄의 상처만 봉합해 버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요즘 한국 교계나 선교지에도 치유 상담이라는 것이 만연하여
너도 나도 치유 상담자들로 나서는 것을 보는데
자칫 값싼 치유 상담으로 전락할 까 염려하는 마음도 있다.
상한 감정의 치유가
자칫 상처만 봉합해 버리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죄의 내적 문제를 근원적으로 다루어서
다시 상처를 절개하고 열어낼 필요가 없을 만큼
나를 위해 상처 입은 치유 자가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완전한 죄 사함의 자리로까지 나가야 한다.
나에게 우상이었던 것들은 끊어버리고
손과 손목속에서 끊어진 신경을 다시 잇듯
내 영혼의 핏줄어며 신경이되시고
생명선이 되신 그리스도에게 다시 연결되어야한다
이렇게 될 때 상처 뿐 아니라
상처가 유발할 수 있는 고통으로써 죄책감의 문제까지도
완전히 치유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묵상 글을 올리는 동안 어느덧 창밖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이제 나도 일어나서 속히 병원으로 가보아야겠다.
주님!
오늘 아침 아내가 오르게 되는 수술대
의사와 간호사들 사이에
주님께서도 함께 서시고
이 수술을 주관해 주옵소서.
수술은 사람이 하지만
주관하시고 낫게 하시는 것은
주님의 임재 가운데 있으니
모든 것을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시련을 극복하고도 남을
은총으로 이끌어 주옵소서.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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