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새 계명을 이루기 위하여
요한복음 14:15-24
어제 파들을 옮겨심는 작업을 마치고 오늘 아침 내리는 봄 비를 보니
이 것들이 잘 뿌리를 내리고 자랄 것이라는 기대도 가지게 된다.
어제 아침은 당장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은 재빛 하늘로 시작했는데
낮엔 기온이 올라가 해볕도 따사로운 봄날씨를 연상케 하여서
계획했던대로 텃밭의 대파와 쪽파를 옮겨심는 작업을 하였다.
추운 겨울을 지나는 동안 서로 촘촘히 엉겨 붙은 뿌리들을 분리시켜
옮겨 심는 작업인데 추운 겨울 동토의 땅에서도 파란 쪽빛을 지니고
생생히 살아있는 대파, 쪽파들을 매만지면서 여러 식물들 중에
겨울 추위보다 더 강한 생명력을 가진 것들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런데 세상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는 생명은
아버지께로부터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이 주신 생명
곧 영원한 생명으로써 영생의 선물이다.
요한복음 14장은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대신 내어주시는 십자가의 죽음을 몇 시간 앞두고
예수님의 고별사를 기록하고 있는데
3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제자들과 작별하는 그 때 그 순간을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은 바로 어제 일처럼 기록하고 있다.
보통 다락방 강화[講話]라고도 불리어지는 이 고별사는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까지 이어지는데
고별사의 첫 번째 내용이
내가 떠나더라도 근심하지 마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는 것이었다면[14:1-14]
고별사의 두 번째와 세 번째를 보여주는 오늘의 말씀은
1. (내가 떠난 후에라도) 너희가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이미 너희에게 명한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며 [14:15]
2. 너희가 고아처럼 외롭게 버려지지 않도록
또 다른 보혜사로서 성령을 보내어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겠다는 위로의 약속이다. [14: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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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의 12 제자 면면을 보면 서로가 하나 될 수 없고
독립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우리 중에 누가 크냐? 는 우열다툼은 3년 내내 이어졌는데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과 작별해야하는 그 순간에 이르러
이 점이 가장 마음에 걸리셨던 것이었을까(?)
너희는 서로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목숨까지라도 함께 나누어야 할 믿음의 형제들이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사랑의 본을 보인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어지는 말씀은 이 사랑의 축복도 이야기 하시는데
1)서로 사랑하면 이것은 나를 사랑하는 증명이 되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14:21]
2)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14: 23]
3) (그러나)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리니
너희가 듣는 내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내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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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고별사를 보여주는 오늘의 말씀에서
강조점 임펙트는 분명히 "서로 사랑하라"인데
그렇다면 이 사랑이란 무엇이며
이 사랑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묵상하게 된다.
1.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라는 말처럼 추상적인 것이 없다.
우리 말 성경에는 사랑에 대한 단어가 사랑 한가지로 나오지만
이 성경이 기록된 원어에는 사랑의 네 가지 실체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남녀 간의 사랑으로써 에로스가 있고/
그리고 친구 간의 사랑으로써 필레오가 있으며/
혈육의 사랑으로써 스톨게가 있고/
모든 사랑의 근원이 되는 절대 사랑으로써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의미하는 아가페가 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서로 사랑은
이 무조건적인 절대 사랑으로써 아가페 사랑 이며[요13:34]
너희가 나를 아가페 한다면 서로 아가페 하라고 하심이다.
그리고 이 아가페 사랑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떻게 나타나는 것인지는 또 다른 사도인 바울의 글에서 보게 된다
사랑은 오래참고/온유하며/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교만하지 아니하며/무례히 행치 아니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믿으며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아멘-
2. 아가페 적 사랑의 실천을 위하여
예수님은 자신이 우리[나]에게 아가페 적 사랑을 주신 것처럼
나도 주님을 그렇게 사랑하라고 하시고
서로 사랑하는 것도 이 아가페로 하라고 하신다.
아무 조건 없이 베푸는 하나님 사랑의 실천으로써
이 사랑의 실천을 하는 것은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고 하여도
이해관계에 매일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는 거의 불가능하게 보인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의 앞선 문맥을 보면
먼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가 나오고
또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에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또 다른 보혜사(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도 나온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기에는 너무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인 것을 아시며
그래서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사랑할 수 없음도 아신다.
그래도 이렇게 다 아시면서도 새 계명을 명하신 것은
우리가 주님이 주신 이 새 계명 곧 서로 사랑(아가페)를 이루기 위해
주님께 사랑의 파워를 간구한다면 " 내가 행하리라" 하심을 이루시며
또 이것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을 수 있는 것이기에 [롬15:30]
보혜사 성령으로 내주하시며 함께 하심을 약속하여 주신다. [14:16-17]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세 가지를 정리하게 된다
1. 우리[나]는 아가페 적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안에서 한 형제 된 사람들을 사랑(아가페)하라는 명을 받았다
2. 그러나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나에게서 이런 사랑이 나올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3. 사랑은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아가페)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지적인 동의와
의지적 결단으로 시발되고 나의 기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이뤄지는데
먼저 내게는 이런 사랑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 사랑의 파워(능력)을 주님께 기도로 간구하여
내가 나타내는 사랑이 아니라
성령으로 내 안에 내주하시는 주님께서
내가 기도하면 “내가 행하리라”약속하심을 따라
주님께서 나타내시는 사랑으로 사랑[아가페] 하여야 함을 배운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아가페 적 사랑을 나타내게 하실 때
바울 사도를 통하여 나타내 주신 사랑의 실체처럼
오래참고/온유하며/투기하지 않으며/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무례히 행치 않으며/진리로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믿으며/바라며/견디는
사랑의 인격과 성품으로 나타내야 할 것을 마음에 새긴다.
보통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지체가 된 사람들 끼리
혹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믿음의 형제가 된 사람들에게
이 사랑의 실천은 큰 숙제이고 도전이 되는데
오늘 주신 말씀에 따라
이 계명을 받들어 순종하고자 하는 착한 마음과
또 내 힘으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
내 안에게 계신 주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부어주시는 사랑으로 가능하며
이를 위하여 내가 사랑의 은사를 구하는
가장 중요한 이 기도에 깨어있고 힘써야 함을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마음 깊이 새긴다.
주님!
내 힘으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
주님이 나타내시는 사랑으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어진 바 된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사랑의 실천을 위하여
주님이 사용하시는 사랑의 도구로
기꺼이 나 자신을 드릴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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