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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학개

학개 1:1-15 성전 건축에 대한 열심 제대로 알고 실천하기

by 朴 海 東 2020. 3. 19.

성전 건축에 대한 열심 제대로 알고 실천하기

학개 1:1-15


신약 요한복음 묵상이 마쳐지고 구약 학개 선지자의 글로 들어왔다.

-----[오늘의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한 역사적 배경]------

다윗 왕국으로 일컬어지는 유다백성들은 
1.2.3차에 걸쳐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는데 [B C587] 
이 바벨론을 무너뜨린 바사(페르샤) 제국의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다시 포로에서 돌아올 때도 1.2.3차에 걸쳐 돌아오게 되며
성전건축과 관련된 오늘의 말씀[학개 1장]은 
포로지에서 1차로 귀환한 약 5만 명의 백성들이 시작한 
성전건축과 관련하여 주시는 말씀이다.[BC 538-515]

유다 백성들에게 있어서 바벨론의 침공을 받았을 때 무너졌던 
솔로몬의 성전을 다시 재건하는 것은 그들의 신앙과 삶을 
다시 회복하고 하나님 중심에 세우게 만들어주는 
매우 중요한 사역이었다. [에스라 3:8 -13 참고]

그러나 바사제국의 초대 왕 고레스가 죽고 난 후 
유다 백성들의 흥기를 두려워한 사마리아인들과 주변 민족들은 
유프라데스 강 주변 총독들을 앞세워 거짓 조서를 올려 
성전건축 중단 운동을 벌이게 되는데
이러한 방해공작은 에스라 4장에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

따라서 고레스 칙령에 힘입어 BC 537년에 시작되었던 성전건축은
고레스의 아들 캄비세스(BC530 -522]때 중단하게 되고 
이어서 스메르디스 왕[BC522]과 다리오 1세 즉위까지 [BC522]
약 15년간 중단하게 되다가 다리오 왕 2년에 다시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 고레스의 후계자로 나오는 캄비세스 왕이나 
스메르디스는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성경 밖 문헌의 인물들이다]

오늘의 말씀은 다리오 왕 제2년 6월 1일 
학개 선지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 당시 유다 민족의 총독이었던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전달되면서 시작되는데 
당시 유다 백성들에게 임한 자연재난이나 경제적 궁핍이
성전 건축을 중단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하는바[1:5-7. 9-11]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성전건축이 중단되어 있는 것은  
이방민족들의 방해 때문이라기보다 유다백성들의 게으름과 태만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전에 대해서는 소훌 하고
자신들의 집에 채우기에 빨랐던 불신앙과 불충성에 있음을 지적하신다.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 
판벽한 집[백향 목으로 지은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1:4]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1:6]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 너희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1:10-11]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1:8 ]

학개 선지자의 이러한 책망은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들은 달게 받아드렸으며[1:12]
이어서 학개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격려와 [1:13]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신 역사로 성전 건축을 재개하게 된다.[BC520]

그리고 이 성전건축은  다리오 왕  1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가운데 
4년 후가 되는 BC 516년에 완성을 보게 되는데 
이미 성전기초 공사는 되어있는 상태에서 재개한 공사이어서 
빠른 시일 안에 완공을 이룬 것 같다. 
[참고로 이어지는 예루살렘 성벽의 공사는 느헤미야에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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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건축과 관련된 오늘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전의 의미가 완성된 
우리 신약시대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구약시대에 성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이며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써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성전의 의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통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사람의 손으로 세운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을 가두어 두는 공간이 될 수 없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이 성전을 우상시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이 성전 안에 가두어 놓고
자신들만이 하나님을 독점하는 이상한 유대교로 전락하여서
성전이 우상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어버리라, 
내가 사흘 안에 일으키겠다고 까지 말씀하셨다. [요2:19]

신약교회의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집사 역시
유대인들의 잘못된 성전 관을 지적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이러한 잘못된 성전에 대한 개념은 성경 계시의 완성인 
신약으로 들어와서 더욱 구체적으로 교정되는데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였다[고전3:16]


이제는 구약에 존재했던 성전 의미의 진정한 완성 자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자들이 곧 성전이라고 하는
이 파격적인 하나님의 계시를 생각할 때 
구약의 성전 개념을 그대로 계승하여 신약에 적용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며 이제는 성전이라는 개념보다 
믿는 성도들의 회합을 위한 장소로써 
예배당 또는 교회당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말씀에서 성전 건축을 위해 열심을 내고
충성하라는 말씀은 이 성전의 진정한 의미가 되시는
예수님께 대하여 열심을 내고 충성하라는 말씀으로 적용 된다.

그러나 아직도 이 성전의 개념이 잘못인식 되어 
구약 적 사고방식으로 성전건축을 진행하는 것 때문에 
많은 부작용이 벌어지는 것도 곳곳에서 보게 된다.

지난 달 일산에 있는 한 교회에 가서 두 주간 예배를 인도했는데
그 교회는 교회당 건축과 관련하여 큰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교인 수가 백여 명이 되는 교회인데 엄청 큰 건물을 지었다
대출을 받아 건축을 하려고 하다 보니
장로님을 비롯하여 제직들 가운데는 자신들의 집까지 
담보로 내 놓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제1 은행권에서 대출이 안 되니까 제2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아
예배당 건축을 완공한 것 같다. 

그러나 건축 후 빚을 갚지 못하자 공사를 맡았던 건축업자들이 
재판을 걸었고 교회당 건물은 경매에 들어가 
결국 신천지와 비슷한 이단으로써 안상홍의 아내 장 길자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떠받드는 “하나님의 교회”가 낙찰을 받아서 
그 건물에 들어선 것을 보았다.

교회당 건물이 경매에 들어가 건축업자들이 돈을 나눠 가짐으로
교회는 한 푼도 건지지 못했는데 
또 하필이면 교회가 세를 얻어서 들어간 건물에서 이 이단 교회가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것 때문에 더 마음이 아프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성전 건축이라는 미명하에 무리한 건축을 시도하다가 
빚을 감당하지 못해 나가떨어진 교회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또 그러한 건물들을 하필이면 이단들이 낙찰을 받아 들어가는 
안타까운 현상들을 많이 보게 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주시는 많은 교훈을 생각해 본다. 

정말 교회당이 비좁은 것 때문에 건물을 크게 지으려 한다면
예배 참여 인원을 1.2.3 부 등으로 분산하면 될 것이고
그래도 안 된다면 고생하는 부교역자들에게 
개척교회로 분가하여 주면서 교인들을 붙여주면 좋겠지만
이렇게 하는 교회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목회자 개인의 비전을 앞세워 세워지는 성전건축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는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앞세워
많은 목회자들의 야망을 불러일으켰던  
미국 로버트 슐러 박사의 크리스탈 교회에서 본다. 
이미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드러난 것처럼
그토록 자랑스럽게 칭송되었던 이 아름다운 교회당도
경매로 넘어가고 말았다. 

요즘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로 예배당의 모임조차도 어려워지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면서 
엊그제[3/17일] 내가 올린 묵상 글에 댓글을 달아주신 
어떤 분의 의견이 떠오르는데 그것은 한 마디로
그동안 우리가 간과하였던 작은 모임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우리 주님께서도 “두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고 하셨는데 
우리는 왠지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그리고 크고 아름답게 지어진 건물에서 드리는 예배만 
예배답게 여겨지는 잘못된 생각이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들어내고 있는 신앙의 풍속도는
이제 교회당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드리는 예배가 아닌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가정교회 모습인데 성경에 나오는 
초기교회들이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 같은) 특별한 경우를 빼고
대부분 거의 모두 이런 가정 교회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나님께서 지금 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해 주시는 교훈 중 하나는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라고 하시는 것도 포함된 것이라고 생각 된다.

이제 너무 길어진 묵상 글을 마치면서 
오늘의 말씀으로 주신 학개 1장의 교훈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데 
구약에서 성전 건축에 쏟기를 바라셨던 그 열심과 헌신이 
이제는 이 성전 의미의 완성 자이신 예수님에게 쏟아져야 하며
또 이 예수를 마음에 모심으로 성전이 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소중히 여김과 섬김이 요구된다고 하는 것으로 오늘의 묵상을 내린다. 

주님!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성전 건축에 대한 열심과 충성으로
이 성전의 의미를 완성하시고
우리 교회의 머리가 되신 
주님께 드릴 수 있게 하시며

이제는 건물에 대한 투자보다
주님을 마음에 모심으로
성전이 된 믿음의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소중히 여기고 섬기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신앙과 삶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