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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학개

학개 2:10-23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부정한 것이 되겠느냐?

by 朴 海 東 2020. 3. 21.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부정한 것이 되겠느냐?

학개 2:10-23


[오늘의 말씀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학개 선지자의 메세지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은
그의 백성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聖) 俗(속)의 구별없이
곧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사모함이나
거룩하신 하나님을 상대하는 아무런 감각도 없이 
함부로 예배에 임하는 것이나 헌금 드리는 것을 싫어하시며
그러한 것들을 역겨워하신다고 하시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드리는 예배나 헌물(헌금)이 
부정하게 된 것을 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관점을 잘 설명하기 위해서 학개 선지는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율법을 맡은 제사장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한 가지는 하나님께 드리는 성물이 부정한 것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고 질문하며 [레21:1]]

또 한 가지는 반대로 부정한 사체를 만져서 더러워진 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성물을 만지면 
그 성물이 어찌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성물이 되겠느냐고 질문함으로 [ 민19:11, 22]
그것은 (마땅히)부정한 것이 된다는 답변을 받아내면서[2:10-13]

"여호와 앞에서 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며
그들의 손으로 하는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헌물/헌금]도 그러하다는
따끔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다. [2:14]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기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이미 신명기 28장에서 주신 축복과 저주의 말씀에 따라 
그 땅에 자연재앙과 저주를 내리신 것이라고 깨우치시는데 

그것은 그들이 포로지에서 돌아온 후 처음에는 
성전건축에 열의를 가지고 성전 대지 기초 작업을 잘 하다가
주변 민족들의 방해로 어려움이 생기자 그것을 핑계로 해서 
하나님의 전은 뒷전이고 자신들의 부를 쌓는 것에 빨랐는데
성전의 기초를 쌓는 일을 중단한 그 때부터 
그 땅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복이 그쳐지고 오히려 
하는 일 마다 헛수고가 되는 저주가 임한 것이라고 한다.[2:15-19]

여기서 학개 선지자는 그 당시 그들이 성전의 지대를 놓으며 
성전 건축에 임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며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으로 비유한 셈인데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포로지에서 돌아온 후 
가장 먼저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신앙을 회복하고
하나님 중심의 나라를 재건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전건축에 어려움이 생기자 더욱 하나님께 매달리기보다
자신들의 생업과 건축과 부를 쌓는 것으로 돌아서고 흘러버렸으니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한 삶의 추구를 버리고 
성속의 구별도 없이 세속화 되어버린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날은 그러했다 해도 그들이 학개 선지자를 통해 전달된
[BC 520년 6월 01일] 하나님의 책망을 달게 받아 드리고 [1:1-8]  
[BC 520년 7월 21일] 성전 건축을 재개함으로 격려를 받고 [2:1-9]
[BC 520년 9월 24일] 이제는 복을 주시리라로 바뀌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 중심에서 벗어남으로 발생되었던 이전의 일[저주]를
기억하고 비교하여 봄으로 [2:15-19A] 
이제 [바르게 돌아선] 오늘부터는 복을 받게 되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해하게 된다. [2:1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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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신 말씀의 바른 적용을 위하여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학개 선지자가 율법을 맡은 제사장들에게 던진 질문으로부터
성속의 구별 즉 거룩함과 부정함의 구별이며
무엇이 하나님 앞에 거룩한 것이고 
무엇이 앞에 부정한 것이 되는지를 분별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러한 성속의 분별이 없으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나 헌물(헌금)이라고 하여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역겨운 것이 될 것이며
제사[예배]나 헌금이 무용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학개 선지자의 글을 읽으면서 이와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한
이사야 선지자의 글도 생각이 나는데 그것은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이 소돔의 관원 같고 
고모라의 백성같이 살아가면서도 예배는 뻔질나게 드린 것에 대한
하나님의 역겨움을 그렇게 표시 하신 것이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 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 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이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1:11-14]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요즘 우리 교회들의 모든 공적 예배나 모임이
중단되고 있는 것에 대해 오늘 주신 말씀의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된다.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세계 경영을 들여다보면 
세상에 있는 자기 백성들[구약은 이스라엘 / 신약은 교회]를 중심으로 
세상사를 주관하신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런 관점에서 근자에 중국 우한에서부터 시작하여 중국 전역과
우리나라를 덮쳤고 지금 세계를 덮쳐가고 있는 
이 코로나 19 바이러스 역시 우연한 자연재난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피해가 너무나 막심한데 무엇보다 하나님의 교회들조차 
모든 공적 예배와 모임을 중단하야만 하게 된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세상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저주나 심판이라고 말하는 것을 싫어하며
그렇게 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라고도 하는데 
그러나 나는 오늘의 말씀에 비추어 
우리 교회들의 모든 예배가 멈춰지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 사함 받고 법적 칭의를 얻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지만
구원 그 이후에도 죄의 굴레[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복음으로 용서받은 죄인일 수밖에 없는데 
이 십자가의 은총을 너무 값싼 복음으로 전락시키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대한 성속의 구별도 없이 
만연한 예배에 나아가며 성회와 함께 악을 행하면서도
거룩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각 없는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더 이상 예배 받으시기가 힘들어진 이사야 시대나
하나님께서 자연 재앙을 내려서라도 깨우치시는 
학개 선지자 시대와 같이 된 것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는  
우리가 거룩하신 그 분의 존전에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그의 거룩하신 임재에 대한 두려운 경외감이 앞서서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의지하는 참회의 제사가 우선되어야 하고

이어서 속죄의 은총에 보답하는 감사와 찬양과 고백과 이어서 
세우신 설교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매시지[말씀]을 받고
주신 말씀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 나의 헌신을 결단하며
헌금으로 표시하고 더불어서 그가 예배에 나오는 자들에게 
기꺼이 주시는 평강의 축복을 받아야 하는데[민6:24-27]

우리는 그간 너무나 만연된 예배 속에서 
이러한 예배의 본질들을 놓치고 내용과 깊이가 없는 
중독된 예배만을 반복적으로 드린 것은 아닌지........
요즘 예배당에서 함께 모여 드리는 모든 예배가 
어쩔 수 없이 중단된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결론적으로 학개 선지자가 던진 질문처럼
무엇이 거룩한 것이며 무엇이 부정한 것인지
성속의 분별을 가지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과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거룩한 예배에 나감으로 
참회와 성찰이 전제되지 않는 예배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도 이사야 선지자와 학개 선지자 시대가 보여주는 것처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뻔질 나는 예배는 드리면서도 
하나님보다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종교생활이 우선시 되어
심지어는 하나님도 예배도 교회까지도 모두 
자신과 자기가 속한 집단을 위해서 이용하는 자들이 될 수 있고

세상 속에 나가서도 일반 세상 사람들보다 더 악한 
소돔의 관원과 고모라의 백성같이 됨으로 
우리의 예배 자체가 하나님의 얼굴을 돌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삼가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 드리게 된다. 

따라서 지금 예배가 중단된 이 상태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이 땅의 교회들을 보호하시고 염려하시는 것 때문에 
이 땅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창궐하던 악성 이단인 
신천지의 비행들을 드러내시며 
더불어 우리 교회들까지도 잠시 예배를 중단하게 하신 기간을 통하여
우리가 겸비히 자신들을 돌아보는 진정한 참회의 기간을 가짐으로  
오늘 주신 말씀처럼 심판과 저주로 표현된 자연 재난들이 종식 되고
이제부터는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는 말씀[2:19] 이 
이 땅에서 실현될 수 있기를 이아침 주님 앞에 간절히 기원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