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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신명기*

신명기 9:9-21 다시 생각해 보는 우상 숭배의 본질

by 朴 海 東 2020. 4. 24.

다시 생각해 보는 우상 숭배의 본질

신명기 9:9-21


칭찬하는 이야기보다 잘못을 지적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결코 유쾌할 수 없고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할 수 있는데
어제 오늘 이어지는 말씀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지나날 잘못들을 교훈적으로 들쳐 내는 것을 본다. 

앞선 말씀에서는 너희가 가나안을 정복하게 될 것이지만
이것은 너희가 공의롭거나 정직한 백성이어서가 아니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지적함으로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을 강조하였는데

오늘의 말씀 역시 저 호렙산 언약 체결의 날에 있었던
금송아지 숭배 사건을 회고하는 이야기를 통해
이제 곧 가나안 진격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교훈하고 있다.

그 때는 출애굽 후 약 50일 정도 지났을 때 이었는데
이스라엘은 호렙산에 임재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현현과
또 그의 입을 통해 울리시는 음성을 들으며 언약을 체결하였다

그 때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십계명의 말씀을 반포하셨으며
언약의 당사자가 되었던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이 말씀을 지켜
하나님의 충실한 언약 백성이 되기로 하였고
또 하나님께서 계속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이 너무 두려워
더 구체적인 율례의 말씀들은 모세가 하나님께 나아가 듣고
전달해 주기를 원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고 

모세는 호렙산에 올라 40일 금식[단식]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거주하기 위한 성막의 제조법과
또 자기 백성들의 지켜야할 율법을 받는 가운데 
산 아래 있는 백성들 사이에서 금송아지 숭배가 발생한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자신들을 출애굽 시키셨고 그곳 까지 이끄신 
여호와 하나님의 실존을 확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채 40일이 못되어 자신들을 이끄시며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과 그의 말씀으로부터 신속히 떠나서 
자신들을 위한 하나님의 대체용으로써 송아지 우상을 만든 것이다.

오늘의 말씀과 같은 내용을 다루는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이 송아지 우상은 여인들과 그 자녀들의 금귀고리들을 모아 녹여서 
조각하여 만든 것인데 자신들이 가진 금부치들을 
하나님의 성막에 필요한 성물들을 만들기도 전에
우상을 만드는데 아낌없이 드렸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있다. 

그 시간 하나님께서는 호렙산 위의 모세에게 언약의 대표성을 띤
십계명을 두 돌 판에 친수로 써서 모세에게 주셨는데 
이 언약의 말씀이 백성들에게 반포되어지고 마음에 새겨지기 전
이미 그들의 마음 판에서부터 깨어졌기 때문에 
모세는 산 아래로 내려오면서 백성들이 둘러쌓고 유희하는 
이 송아지 우상을 향하여 이 두 돌 판을 던져 깨트려 버렸다.

[이것은 참을 수 없는 모세의 혈기를 드러낸 것이라기보다 
이미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채 40일도 못되어 깨어진 것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였고 이렇게 입증한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모세는 이 송아지를 불살라 티끌같이 분쇄시켜서 
흘러내리는 물에 뿌렸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닌 무용한 것임을 드러내었다. 

이 사건을 통해 백성들이 진멸당할 위기에 놓였고
아론조차 이 죄에서 벗어날 수 없었음으로 이 진노를 막기 위해 
자신이 나서서 기도한 것과 그리고 다시 산에 올라가 40일 동안 
떡도 물도 마시지 않는 금식에 들어갔던 것을 회고함으로써 
그 때 그 자리에 없었던 출애굽 2세대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자기 조상들이 애굽에서 지내면서 보았던 금송아지 우상을 
출애굽 여정에서 그것도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그 신성한 장소에서 하나님 대체용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이 무서운 죄악을 뼈저린 교훈으로 삼아 전달하고 있는 
모세의 지난 세대의 회고담은 
이제 곧 가나안을 향해 정복해 들어가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가나안에서 마주치게 될 가나안의 현란한 우상들과 
그 우상의 문화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묵직한 교훈으로 마음에 남겨지는 것은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하나님의 현현을 목격하고
자신의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극적인 체험을 하고서도
(그 은혜의 효력은 40일도 채 지나지 못하며)
하나님을 신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 수 있다는
자기중심적이며 자기 본위의 속성인 것을 여실히 드러내줌으로써 
인간이 얼마나 부패한 존재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점이다. 

이것이 과거 이스라엘의 모습이면서 
이것이 또한 나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며
하나님께 죄악된 것이라도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신속하게 떠나 
죄악을 짓고야 마는 인간의 이 부패한 속성을 어찌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나 자신을 보게 하신다. 
나는 이스라엘처럼 송아지 형상의 우상은 만들지 않는다 하여도
그 송아지 우상을 만든 것이 자기를 위한 우상으로써[9:12. 16]
“자기 자신 곧 자기만족”을 위해 그렇게 표출된 것이라고 한다면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죄악의 내면에는 
내가 하나님을 등지고서라도 나의 만족을 채워야지만 
속이 시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기 고집이 있으며 
나 곧 나 자신을 하나님 위에 두는 우상이 될 수 있음을 본다.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두 구절이 마음에 남는다.
이스라엘이 금송아지 숭배로 범죄 하게 될 때에 
곧 여호와의 명하신 도를 빨리[신속히] 떠났다는 “빨리”와
그 금송아지 우상이 “ 자기를 위하여”라는 구절이다. 

신앙의 여정에서 거룩함을 이루어가는 성화 성장의 과정은
많은 세월의 시간과 연단을 필요로 하지만 
내가 어느 순간 죄로 인하여 거기서 추락하는 것은 
매우 신속하고도 빠를 수 있다는 것이며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또한 얼마나 소모적이고 힘든 가를
백성을 대신 한 중보자 모세가 다시 산에 올라  
40일간 떡도 물도 마지지 아니하면서 
다시 언약 회복을 상징하는 
두 돌 판을 받아 내려오는 것에서 엿보게 된다. 

한 편 이러한 모세의 중보 사역은 하나의 예표(Typology)로써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맺어주신 
우리의 중보 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수고를 엿보게 하는데 
오늘 내가 내 신앙여정의 성화 성장의 과정에서 
어느 순간 추락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 후유증을 최소화 시켜주며 본래의 자리로 회복시켜 주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가 모세로 수고로 예표 된 
나의 구주 예수님의 증보사역에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더불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의 본질이
“자기를 위하여”라는 것에서 시작됨을 볼 때
신약 성경, 특히 바울 서신이 그토록 강조하는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인생이 되는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또 이렇게 되기 위하여 나에 대하여 속히 절망하며
내가 나를 포기하고 나를 내려놓고 
오직 예수! 
오직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살아가는 
로마서 8장의 성령의 사람이 되는 길만이 
나의 희망이고 목표이며 살 길 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새긴다. 

[ 찬양으로 드리는 기도: 가지나무새 ]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외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