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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예레미야

예레미야 41:1-18(2) 난세에 악하고 불안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길

by 朴 海 東 2020. 10. 5.

난세에 악하고 불안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길

예레미야 41:1-18

 

예루살렘 멸망 이후의 사건들과 관련된 예레미야 39장-44장은
계속해서 우울하고 무거운 이야기들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바벨론으로 가지 않고 그 땅에 남아있는 유다 백성들은
악하여 먹지 못할 무화과 열매 같으리라는 예레미야 24장이
그 배경이 되고 있으며 한편 연속되는 일련의 사건들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하게된다 

묵상에는 망원경식 묵상으로 전체적인 흐름에서 조망하는 것도 있고
현미경식 묵상으로 본문 안에 세세하게 들어가는  것도 있는데 
유다 백성들의 총독으로 세워진 선인 그다랴가 
악한 왕족인 이스마엘과 그 패거리들에게 죽임을 당한
오늘의 말씀을 앞에 놓고 이 두 가지 방식을 다 적용해 보게 된다. 

유다의 총독으로 세워진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의 죽음이 애석하지만
그의 죽음을 유다왕국의 마지막 선한 왕이었던 요시야와 비교하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될 것같다. 
요시야는 몰락하는 유다 왕국을 바로 세워보려고 과감한 종교개혁으로 
하나님 앞에 그의 선함과 의로움을 인정받은 왕이지만 
바벨론 왕과 싸우러 가는 애굽 왕 느고의 앞길을 막았다가 
애석하게도 무깃도에서 애굽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전사하게 되는데 
왜 이 선한 왕을 이렇게 허무하게 그리고 일찍 데려가셨는가 의문이다

그러나 망원경 식으로 이 사건을 조망해볼 때
그가 바로 느고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귀 담아 듣지 않아서보다(물론 이것은 표면적 이유이다) 
이미 유다 왕국은 누적된 죄악으로 하나님의 심판에 처하여
바벨론에게 정복되게 하시는 작정과 섭리 가운데서 볼 때 
이 선한 왕 요시야의 죽음은 편안히 조상에게 돌아가도록 
화액 전에 취함을 입은 것으로 이해하게 되는데[사57:1-2]
실제 그의 사후 3년이 지나 여호야김 4년에 바벨론 군대가 왔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사반의 손자이여 예레미야를 위기에서 구원했던 
아힘감의 아들 총독 그다랴가 총독으로 임명된지 겨우 두 달이 지났는데 
허망하게 이스마엘의 칼날에 쓰러진 것에 대해 인간적인 안목으로 보면
매우 애석하지만 참새 한 마리의 목숨도 관장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되며
이미 악하여 먹을 수 없는 무화과 열매로 비유한
유다의 잔류민들을 이끌고 나가는 지도자로써 더 큰 고통이 오기 전에 
데려간 것으로 이해한다면 나의 생각이 너무 비약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현미경식 묵상의 방법으로 이어지는 오늘의 말씀을 파고 들어가 보면
오늘의 말씀은 그댤랴에게 초점을 두기보다 그를 죽인
악한 왕족 이스마엘에게 초점을 두고 많은 구절을 할애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1. 그는 총독 그다랴가 이미 들은 정보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믿어주고 
자신의 관저로 초대하여 식사 자리까지 베풀어주는 호의조차 무시하고 
함께 떡 먹는 자리에서 죽였으니
마치 예수님이 가륫 유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함과 같은 배신자로서
배신 중에 더 큰 배신을 때릴 만큼 악한 자였다 

2. 그는 그달랴를 죽인 것 뿐만 아니라 그다랴와 함께 있던 유다 사람들과
총독의 관저를 지키는 바벨론 보초들까지 많은 사람을 죽인 악한 자로서
이틀이 지나도록 이 사건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전혀 방비가 없었던 사람들을 계획적으로 죽인 살육자이다[41:4]

3. 그는 잔인하고 비정한 것 뿐 아니라 그의 내면에는 
거짓된 슬픔과 악어의 눈물도 흘릴 수 있는 위선이 가득함을 보여주는데 
이는 북이스라엘에서 예루살렘의 멸망 소식을 듣고 마음 아파하며 
소제와 유향을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80명 중에서 
70명을 살해한 것에서 보여지는바 
그는 이들과 함께 슬퍼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그들을 미스바 성읍으로 유도하여 죽인 것이다. 

4. 그는 악하고 비정하며 위선적인 자일 뿐 아니라 재물에도 욕심이 많아
북이스라엘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80명 중 10명이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감추어둔 곳을 알려줄테니 죽이지 말라 했을 때 
살려준 것에서 엿보게 되는데 
그는 도적이며 강도 떼 우두머리 같은 사람인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5. 그는 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들
 곧 바벨론 왕이 그달랴에게 위임한 자들을 잡아 암몬 자손에게로 갔는데 
그러고보면 이 날강도 같은 이스마엘을 뒤에서 사주한 자는 암몬 왕이며
그는 유다 왕 여호야김이나 시드기야처럼 반바벨론 정책을 편 자로서
결국 유다의 잔류민 중 많은 백성을 살육한 것은 
악한 왕족 이스마엘  이전에 하나님 나라의 적대자 암몬 왕이며
그는 이스마엘 안에 밭동한 그다랴에 대한 시기심을 적절히 이용한 것같다

 

6. 그는 자신의 음모를 뒤늦게 알고 군사를 몰아서 대적하러 온 
또 다른 왕족 요하난과 기브론 큰 물가에서 만나 접전하게 되는데 
부하 10명 중 두 명이 죽자 나머지 8명과 함께 암몬 땅으로 도주함으로
암몬 왕과 내통한 악한 자의 도모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 

이 접전 이후에 이스마엘에게 잡혀서 암몬으로 가던 유다의 잔류민들이
해방되어 기뻐하며 요하난의 휘하에 들어가 큰 무리를 이루게 되는데 
요하난은 이들을 데리고 본래의 자리인 미스바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애굽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게 되는 바 이는 이 사건의 여파로 닥칠 수 있는 
갈대아 군의 재침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41:16-18]

아히감의 아들 선한 총독 그달랴의 죽음과 관련하여 
그리고 예루살렘 멸망을 슬퍼하며 
소제를 드리러 가는 북이스라엘의 경건한자 80(70)명이
악한 자 이스마엘 일당에게 일시에 죽임을 당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러한 일들에 관련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드려야 하는지......(?)

그리고 왜 이런 말씀들이 여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이토록 세세하게 쓰여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예레미야 39-45장을 관장하는 전체적인 흐름은
예루살렘 멸망 후의 일까지 내다 본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증명하는 의미로 
유다의 잔류 민들에게 닥치는 부정적인 이야기들로 이해하게 되지만

한편 악한 자 이스마엘과 그의 패거리들이 행한 
이 악한 일들과 그 뒤에서 이 악한 일을 조정한 암몬 왕의 이야기는
오늘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환난 날에 헤쳐나가야 하는 이 세상이 
얼마나 사악한 세상인 것을 알려주며
암몬 왕으로 상징된 악한 마귀에게 사주받는 악한 자들이 
이스마엘처럼 마귀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이 불안하고 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준다
 
그것은 예례미야처럼 그리고 그의 동료이자 서기관인 바룩처럼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살아서
마치 그의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 같은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을 
교훈하는 것으로 마음 깊이 깊이 받아 드린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가운데 
시험에 들게 마시고 악[악한 자]에게서 건지시옵소서는
그래서 더욱 매일 드려야 할 기도인 것을 다시금 마음에 새긴다. 

현미경식 묵상에서 
다시 망원경식으로 적용하는 오늘의 말씀의 결론은
예루살렘 멸망 후와 관련된 39-45장의 마지막 장면으로
45장에 나오는 바룩의 이야기에서 
주님께서 그에게 하신 한 특별한 말씀을 주목하게 된다.

“보라 나는 나의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이러하거늘 
네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냐 
그것을 경영하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그러나 너의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로 생명 얻기를 노략물을 얻는 것같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렘45:4-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