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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예레미야

예레미야 43:1-13(2)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말로 들려지는 저주

by 朴 海 東 2020. 10. 9.

[아래 1번은 중복 내용임]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말로 들려지는 저주

예레미야 43:1-13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말로 들려지는 저주]

유다의 남은 백성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를 만한 충분한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예례미야가 유다왕국 4명의 왕들의 시대를 거쳐오는 동안 
줄기차게 예언한 것들이 그대로 성취되어 
유다가 바벨론에게 함락 된 결과를 목도하였고 
지금 그들 역시 그 성취된 말씀의 연장선상에 서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도구로 삼아 이끌어가시는
섭리를 읽어낼 수 없었고 선지자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전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예례미야를 거짓말장이로 몰아세우며 
억지로 애굽으로 가는 대열에 합류시키는 굴욕을 안겨주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정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유다의 남은 백성들과 함께 강제로 애굽으로 합류되어 가는 
예례미야의 비통함이 마음에 닿아진다

왜 그들에겐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 되지 못하고
거짓말로 들려졌을까? (42:2)
정녕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지게 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게 되는 사람들이 
그 말씀을 받아 드리게 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직접 음성을 울리는 방법도 쓰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위해 좋은 방법이 아닌 것을 아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자신이 세우신 사람을 통하여 
자신의 말씀을 전달하시는 원칙을 세우셨다. (출애굽기 20:19)

그래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것이며, 
겸손한 자들이 그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하셨다

유다의 남은 백성들과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말씀에 대한 인식은 가지고 있었으나 
그 말씀의 전달 도구로 사용되는 한 사람 예례미야를 거절하고
배척하므로 곧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배척으로 나아갔다.

오늘의 말씀은 그들에겐 들을 귀가 없었으며,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깃들일
겸손이 없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43:2)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받아들일 겸비함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과 고집으로 가득차서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였으니
하나님의 말씀이 깃들일 곳이 없었다.

예수님께서도 일찍이 말씀을 듣고자 나아온 자들에게 
말씀 듣는 자들이 말씀에 반응하는 자세를 통하여 
어떻게 구분되는지 4가지로 말씀하셨다 (마13:1-23)

예수님은 특별히 말씀의 능력이 역사 되어 
결실하는 자들의 모습에 대하여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자들이라고 하셨다(눅8:15)

사도 바울은 이방의 사도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이 
참 하나님의 말씀으로 역사 되기 위해서 어떠해야 하는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칭찬하는 말 가운데 나타내고 있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 역사하느니라 (데전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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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으나 겸손과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하고
교만과 완악함으로 반응하는 유다 백성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하는 나의 자세를 돌아보게 한다.

오늘도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 서게 된다
그러나 그 말씀이 참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되는 것은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참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려면
착하고 좋은 마음, 그리고
비록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 된다 하여도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으로 받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귀의 입을 통해서조차 말씀하게 하신 하나님 이시라면
하물며 사람을 통하여 말씀하지 못하시랴 (벧후 2:16)

유다의 남은 백성과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겸비함과 착하고 좋은 마음
그리고 하나님께서 직접 그의 음성을 울려서가 아니라
기록된 말씀이나 
그가 세운 사람들을 통해서 전달하신다는 영적 원칙,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께 대한 신뢰함이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말로 들려지는 저주 가운데
파멸의 길 곧 애굽으로 향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  

주님!
말씀을 들을 때에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받게 하시며 
나에게 들을 귀를 주사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는 
은혜와 축복이 되게 하소서 -아멘-

적용하기

2. 의지하지 못할 것을 의지하는 자들의 어리석음. [43:8-13]

예례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한 후 그가 가져온 기도의 응답을 
거짓말로 매도한 유다의 남은 자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따를 수 없는 예레미야와 바룩도
강제로 함께 애굽으로 데려가서 
(바로의 별궁이 있는)애굽 땅 다마네스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이번에는 상징적 행동을 통해 
자신의 뜻을 전달하시는 행위계시를 나타내게 하셨는데
그것은 유다의 남은 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바로의 궁전 대문을 축성한 곳 아래를 파고 
거기 큰 돌 여러 개를 묻고 진흙으로 덮은 후 
바로 이 자리로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을 오게 하여
그 위에 큰 차일[군막]을 치게하며 
거기 느브갓네살이 자기 보좌를 베풀고 
유다의 남은 자들이 의지하고 있는 
애굽과 애굽의 신들을 멸하고 심판할 것을 예언하게 하신다.

이 예언의 결과는 에레미야 44:26-30절에 기록되어 있고
그때 애굽에서 칼을 피해 도피한 소수의 무리가 
다시 유다 땅으로 돌아와 이 사실을 알려서 
이 예언이 성취된 것을 알게 되리라고 하신다[44:26]

그리고 실제 오늘의 말씀을 인류 일반역사에서도 살펴보면  
바벨론과 애굽의 전쟁은 BC 605년에 일어난
갈그미스 전투 외에도 유다의 남은 자들이 애굽으로 도피한
BC 586년 이후, BC 572년과 BC 568년 두 차례 있게 되고 
이때 느브갓네살의 애굽 원정으로 애굽을 무력화 시키게 되며
이러한 사실은 에스겔 29:19-20절의 예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예레미야가 가져온 기도 응답으로써 하나님의 답변을 버리고
애굽을 의지하여 내려간 유다의 잔류민들의 이야기는 
3년 전 여름 어느 날 나의 쓰라린 사고를 떠오르게 한다. 

그날 새벽 나는 비가 내릴 것 같아서 긴 우산을 가지고 나갔다. 
목적지에 이르러 비교적 발판이 높은 승합차에서 내리면서  
편하게 내리려고 우산대를 지팡이 삼아 차에서 내리다가 
그만 우산 대가 부러지는 바람에 발을 겹지르게 되었는데 
나는 그날 발목이 한쪽으로  휘 돌아갈 만큼 큰 사고를 당해 
평생 불구가 되는 줄 알았다. 
다행히 치료를 받고 정상으로 돌아오기는 하였는데 
그 때 내가 지팡이로 삼아 의지하고 내려온 그 우산대는
내가 지팡이로 쓸만한 강도가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사용하여 사고의 빌미가 된 것이다.

구부러질 우산대에 의지해서 내리다가 발을 겹지른 그날 이후 
두고 두고 기억이 나며 마음에 깊이 깨달게 되는 것은 
내가 견고한 것을 의지하지 못하고 
구부러러지거나 꺾일 것을 의지하면
반드시 어리석은 대가를 치루게 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자신들의 안전지대로 의지 해야 할 주님의 말씀을 버리고
애굽으로 가는 유다의 남은 자들의 이야기와 그 결과는
오늘 곧 내가 나의 신앙과 삶에서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지 
잊지 말라고 주시는 주님의 교훈인 것을 마음 깊이 새긴다. 

주님!
의지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의지하는 
어리석은 자의 길로 가지 않게 하시고
나의 의지할 방패요 반석이 되시며 
나의 의지할 지팡이가 되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