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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마태복음 *

마태복음 3:11-17(2) 영안이 열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by 朴 海 東 2021. 1. 17.

영안이 열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마태복음 3:11-17

 

1. 세례요한에게 나타난 예수님에 대한 인식의 변화

예수님과 세례요한이 서로 만나게 되는
유대 광야 요단강 세례 터의 이야기에서
나에게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것은 
세례요한이 자기 앞에 나타난 예수님을 단박에 알아보고 
황송해하며 그 앞에 겸비한 자세가 되어 그를 맞은 것이다.

세례요한은 지금 자기 앞에 등장하신 예수님을 
어떻게 알아본 것이었을까?
그들은 이전에 서로 알고 지낸 사이였을까?
물론 서로 알고 지낸 사이였을 가능성도 많은데 
세례요한의 집과 예수님의 집안이
서로 친척 관계 이었다는 말씀도 있기 때문이다[눅1:36]

세례요한은 분명히 그의 모친 옐리사벳으로부터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신비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고
또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예수님을 임신한 직후에 
자신의 집에 와서 3개월을 지내다 간 적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출생과 관련된 신비도 들어서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4복음서의 기록을 서로 보완해서 보게 되면
세례 요한은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는 
그가 이스라엘이 기다려온 매시아-그리스도 시라는
인식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누가복음에서는 세례요한이 빈들로 나가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었을 당시
유대 나라의 정치적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밝히면서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인 
세례 요한에게 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며[눅3:2]

요한복음에서는 그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 
하나님께서 미리 알려주시기를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고
하신 것에 비추어 볼 때 [요1:33]

설령 세례요한이 예수님과 이전에 
서로 아는 사이로 지냈다고 하여도 
설마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의 구주로 오신 분
곧 “메시야-그리스도”라고까지는 생각지 않았던 것같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해 세례요한 스스로 말하기를 
"나도 그를 알지 못했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이가
말씀하시기를“"에서 엿보게 되는데[요1:31]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관계는 인간적으로는 서로 친척이며 
크게 존경할만한 사람으로는 아는 사이였어도
예수님이 설마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명을 받아
기다리고 있는 사람으로까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 평시 예수님과 아는 사이였고
그에게 세례 베풀기를 황송해하며 존경하였을지라도 
(나사렛 청년) 예수님이 누구신가? 
그 신분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된 것은

요단강 세례 터에서 세례를 베풀던 그 날
비로써 그의 눈이 열리고 
이가 바로 내가 지금까지 기다려 온 분이고 
이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분이시며 
이가 바로 내가 신발이라도 들어드리는 
자신의 상전으로 모시고 싶어한  
바로 그분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세례요한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가진
요한복음에 보면 세례요한은 세례를 베푼 그다음 날부터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호칭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로 바뀌며[요1:29. 36]
자신의 두 제자(그중에 한 사람은 베드로의 형제 야고보)를
예수님께 보내 예수의 제자가 되게 하기도 한다[요1:36-42].

세례요한의 예수님께 대한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영안이 열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려주는데 
그것은 곧 세례요한에게서 나타난 인식의 변화처럼 
내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의 구주로 알아보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물론 세례요한이 바라본 것처럼 영안이 열린다는 것을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며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심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신비체험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세례요한이 경험한 이 신비체험의 목적이
예수를 바로 알아보게 하는 것에 있었다면

신비체험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를 바로 알아보게 되는 인식의 변화에 있음을 볼 때 
오늘 나 같은 죄인에게도 이런 신비체험과 관계없이
말씀과 성령 안에서 나의 영안을 열어주시고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바로 깨닫고 
나의 구주로 모시고 살게 하신 은총에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

 

 

2. 세례에서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

오늘의 말씀 가운데 또 한 가지,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세례요한의 세례 터에서 있었던 이 세례의 날이야말로 
성자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의 몸을 입은 한 인간으로 태어나시고
나사렛 마을에서 고요한 침묵 가운데서 
삼십 년을 보내오신 예수님 자신이[눅3:23]

당시도 여전히 인간의 몸을 입고 있는 한 청년이었지만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중 제2위 하나님 되심을 
인증받은 세례식 (인치심)이 된 것을 보게 된다. 

그때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요단강에 발을 딛고 서시고 
성부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소리를 내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신 것이며
성령께서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위에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의 형체로 내려오심으로써

하나님은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로 존재하는 분이신 것을 
보여주신 것인데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오직 성부 하나님 한 분만을 생각해 온 구약 적 배경에서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하는 놀라운 계시가 되었다. 

주 예수님!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시어
우리에게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를 알게 하시고
그분이 구약의 백성들이 생각해 온 
바로 그 무섭고 두려운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에게 자비한 아버지가 되심을 
가르쳐 보여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셔서
우리의 영안을 열어 주님을 알게 하시고 
또 주님께서 비둘기같이 온유하신 것처럼
사나운 짐승의 마음으로 살아가던 우리를
평화의 사람들로 변화시켜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2021년 1월 17일 주일을 맞아
코로나 방역으로 교회당에는 나가지 못하지만
주님이 받으신 세례 터에 나타난 은혜처럼 
하늘 아버지의 주시는 말씀을 받으며 
비둘기 같은 주의 영(성령)의 임재 가운데 
충만한 위로와 감화 가운데 새 힘을 얻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