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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마태복음 *

마태복음 4:1-11(3) 예수님이 받은 시험에서 배우는 것

by 朴 海 東 2021. 1. 18.

예수님이 받은 시험에서 배우는 것

마태복음 4:1-11

 

예수님이 받은 시험에서 배우는 것

마태복음 4:1-11

 

오늘의 말씀은 첫 구절에서부터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잇는다 

1. 왜 성령님은 예수님을 시험받는 자리로 이끄셨을까?
성령님은 우리에게도 시험의 자리로 이끄는 분이신가?

2. 왜 마귀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많고 많은 시험 가운데
첫 번째 시험으로 먹는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했을까?

3. 예수님은 시험을 물리치는 수단으로써
세 번 다 기록된 말씀을 사용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1-1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시험의 자리로 이끄신 이유: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 마을에서 보낸 30년 세월을 뒤로하고
마침내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입소문을 타고 온 유대와 갈릴리까지 이르렀을 때
이는 하늘 아버지께서 자신을 불러내시는 소리로 받아드리셨다 

그가 탄생하실 때 주어진 이름 "예수" 곧 자기 백성들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을 이루시기 위해 
마침내 나서야 할 이 때가 이른 것을 아시었다. 

예수님은 먼저 자신의 길을 닦는 세례요한에게로 가시고 
물로 세례를 받으시는데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그에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시면서
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늘 아버지의 친자 확인을 받으셨는데 

따라서 예수님의 세례가 가지는 의미는
그가 우리 인간처럼 죄가 있어서 세례의 자리로 가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죄인의 자리에 들어가시는 
대속의 자리로써 장차 다가올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며 
또 그가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 백성의 대표로서 
임명을 받으시는 "왕의 대관식"으로서 세례의 의미가 있음을 본다.

"예수" 이름이 가진 의미처럼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속하기 위한 
이 의미 있는 출발의 시점에서부터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이끄셨는데
그것은 저 에덴동산의 날에 자기 백성을 죄와 사망 가운데 몰아넣은 
시험하는 자 마귀와 한 판 겨루는 대결을 통해 
사역의 주도권을 가지셔야 할 필요가 있었음을 본다.

2-1  왜 마귀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많고 많은 시험 가운데
첫 번째 시험으로써 먹는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했을까?

예수님이 받으신 첫 번째 시험이 먹는 문제로 왔는데
이는 우리의 대표로써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 중앙에 있었던
선악과를 따 먹는 것에서부터 실패하고 추락하였기 때문에
자기 백성의 대표로써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 역시 
시험하는 자 마귀로부터 이 먹는 문제로 시험을 받으시는 것을 본다 

아담과 하와는 모든 것이 풍족한 에덴동산에서 시험을 받은 반면에
예수님은 먹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유대 광야에서 
그것도 40일 동안이나 금식하신 후에 조우한 마귀의 시험이어서 
아담과 하와가 받은 시험에 비교가 되지 않는 시험을 받으셨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하라!"

마귀는 40일간 금식하여 굶주린 가운데 있는 예수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간파하여 시험했는데 
예수님은 첫번째 시험을 신명기 8:3절의 말씀으로 물리치신다. 

신명기 8장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광야 40년을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가운데 주시는 말씀으로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의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고 하시며
또 너를 낮추시고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네가 알지 못하는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었다고 하신다.[신8:2-3]

여기서 마귀가 예수님께 시험의 미끼로 던지는 것으로써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에 함께 묻혀들어온 시험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함정을 판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에 대한
자존적 증거를 가지고 계신 분이신데
그 나이 열두 살이 되시어 처음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갔을 때도
돌아가는 길에 그를 잃어버린 요셉과 마리아가 찾아내었을 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에서
엿보게 되는 것처럼 이미 의식에 눈을 뜨셨을 때부터도 
그 자신이 하나님의 친자로서 세상에 내려와 있음을 아셨고 

또 불과 40일 전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으셨기에
마귀의 요구대로 돌로 떡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으셨다.

 

한 편 어찌 보면 이 시험은 예수님에게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서 
굳이 십자가의 길로 가지 않고도 돌로 떡을 만드는 것같은
기적을 행하는 방법으로 자기 백성들의 신임을 얻고 
자기를 따르게 만드는 구원의 방법을 제시한 것으로도 보이는데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의 요구대로 이런 기적 남발의 방법으로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자신이 수난받는 종이 되시어 자기 백성의 죄를 대속하시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겠다는 것을 밝히 드러내신 것을 엿보게 된다. 

3-1 예수님은 시험을 물리치는 수단으로써
세 번 다 기록된 말씀을 사용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시험[유혹]을 세 번 다 
기록되었되로 시작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신 것은
오늘 그의 백성이 되어 따르는 우리에게 본이 되신 것인데 
기록된 말씀의 권위 그 이상은 없다는 것을 보이신 것이며
더 나가 이 기록된 말씀이야 말로 
우리가 어떤 종류의 시험을 받을지라도 이 기록된 말씀 속에 
시험을 퇴치할 수 있는 해결이 있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엡 6:18) 

내가 어떤 종류의 시험을 받게 되던지 그 시험의 와중에서 
나를 유혹하는 욕심 쪽으로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기록된 말씀으로써 
성령께서 떠오르게 하시는 말씀을 마음에 담고 있게 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물론 나의 욕심과 기록된 말씀이 서로 충돌하는 그 자체로 
내 마음이 일시 괴로울 수 있겠지만 
이 괴로움 자체도 사실은 나에게 유익한 것으로써
나를 성화 성장시키는 성장통으로 작용하게 되며 
내가 말씀을 계속 붙잡고 있으면 이 말씀이 "말씀의 검", 곧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검이 되어 시험을 물리칠 수 있음을 본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6-17]-아멘-

 

 

주님!
매우 굶주리신 가운데서 받은 마귀의 시험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
다시 한 번 재천명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결코 떡으로만 만족할 수 없는 영혼의 존재로서
나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잊지 않게 하시고 
일정한 음식보다 주의 말씀을 귀히 여기게 하옵소서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됨의 증거와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서 사역의 증명을
기적을 행하는 것으로 
증명하려는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친히 본을 보여주신 것처럼
기록된 말씀 위에 내 존재의 증명과 
내가 하는 사역의 권위를 가질 수 있게 하옵소서.

그리고 주님! 마지막으로 구할 것은 
나에게도 시험하는 자가 와서 
여러가지 모양으로 유혹힐 때에 
주님께서 최종적으로 사용하신 명령과 선포처럼 
사탄아! 물러가라!를 명하여 승리할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