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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마태복음 *

마태복음 5:27-37(2) 눈을 뽑고 손을 자른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일까?

by 朴 海 東 2021. 1. 22.

눈을 뽑고 손을 자른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일까?

마태복음 5:27-37

 

눈을 뽑고 손을 자른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일까?마태복음 5: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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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보시는 죄는  
죄악 된 행위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죄를 유발시키는 내면의 생각까지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하시는 
이 엄중한 주님의 말씀은

앞선 말씀에서는 살인을 예로 들어
마음의 분노와 미움까지도 
살인으로 등식화 시키셨는데 

이제 오늘의 말씀에서는 
간음이라는 행위뿐 아니라 
간음을 유발시키는 
정욕 된 마음과 음심의 눈빛까지도
죄라고 지적하시는 말씀 앞에서

당시 죄악 된 행위만을 죄로 간주하며
나는 이만하면 의롭다고 자부했던 
종교지도자들과 율법주의자들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벌거벗기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촛불 만한 자기 의를 가지고 자만하는 자들을  
찬란한 의의 태양 빛 앞에 세우는 것 같은 
이 수준 높은 도덕적 요구 앞에
과연 어느 누가 자신을 세울 수 있으리요?

따라서 제7계명과 관련된 오늘의 말씀은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모든 이들의 입을 막고
심령이 가난한 자
곧 영적 파산자의 자세가 되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겸손의 자리로 이끌게 하는 말씀으로 받아드린다.

짧다고 할 수 없는 지난 온 나의 신앙생활 중에서
제7 계명과 관련된 이 말씀은
전적 타락과 부패의 존재로서 나를 보게 하였고  
예수를 믿고 거듭난 이후에는 
더욱 자주 나의 부패 된 심리를 들여다보게 하는
척도로써 나를 괴롭게 하였는데 
그러나 한 편 이로써 나를 더욱 성화시켜 나가는  
거룩함의 촉매제로 사용된 것도 솔직한 고백이다 

요즘도 내 손안의 스마트 폰을 가지고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면
야한 사진이나 웹툰 같은 것들이 
눈길을 끄는 광고 창으로 떠서 
내가 음심의 눈길로 바라보게 만들기도 하는데 

내가 이런 것에 눈길을 줌으로써 
이런 것을 미끼로 하여  마귀가 조작하는 
이 블랙 홀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조심하게 된다. 

종교 개혁가 루터의 말처럼
새가 우리 머리 위를 날아가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내 머리 위에 집을 짓는 것은 막을 수 있음같이
나쁜 생각들이 얼마든지 나의 생각을 지나가지만 
내 안에 탐심의 집을 짓지 않게 하는 것은
나의 의지로 막을 수 있는 일인 것을 생각할 때 

내 눈으로 들어온 욕심이 내 안에 탐심으로 품어져
죄를 낳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마음에 새긴다 

 

 

이제 제7계 명이 말하는 죄의 깊이가 
어디까지 인가를 말씀하신 주님은
우리가 이런 죄의 늪에 빠져 살아서 
무서운 지옥에 들어가지 않게 되도록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빼 버리는 것이 낫다고 하시며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불구자가 되는게 더 낫지 않겠느냐? 하시는데
신학자들 사이에 이 구절에 대한 논란이 많다.

기독교 역사에서 유명한 오리겐 교부는(AD185-254)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서
자신이 이런 죄에서 자유롭기 위하여 
스스로 자신을 거세하고 고자로 만들었는데(마19:12)
그는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고자의 길을 택했고
그의 제자 중에서도 같은 길을 택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성경 교리 반에 참석하는
여인들을 바라보며 음심의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렇게 하였다고 하는데 
어찌 보면 천국을 위한 환관의 길을 택한 셈이다 

통계적으로 보면 일반인들의 수명보다 
거세된 환관들의 수명이 더 길다고도 하는데 
아무튼 오리겐의 이러한 결단과 실행은 
당대의 금욕주의 신앙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본문의 내용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이렇게 금욕주의적으로 살아가면서 
교육과 집필에 힘쓰며 삼위일체 교리의 기초를 놓고
수많은 저술을 남긴 그가 그의 사후에 
AD 553년에 열린 콘스탄티노풀 공의회에서
엄격한 정통교리주의자들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를 받은 것은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아무튼 예수님께서 제7계명과 관련하여 주신 오늘의 말씀에서
차라리 범죄 하지 않기 위해 네 눈을 뽑고 
손을 자르는 것이 낫다고 하는 이 극단적 처방의 말씀에 대해
문자 그대로 해석하거나 가르치는 신학자는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구절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지금 전개되고 있는 산상 수훈의 문맥적 흐름을 따라가 보면
이 충격파를 던져주는 말씀 속에 담긴 한 뜻을 엿보게 되는데
그것은 네가 네 눈알을 뽑고 네 손을 자른다 해서
이런 죄에서 자유로 울 수 있겠냐? 하시는 것이며 
전적 부패와 타락의 인간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파악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 의지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으로 이해하게 한다. 

이제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죄와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내 대신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눈알 하나 뽑는 정도가 아니고, 
손 한쪽 자르는 정도가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찢기시고 유린당하시면서까지 
나같은 죄인을 무서운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올려 드리게 된다 

더불어 아직도 나 자신을 다 포기하지 못해서  
내가 나로서 살아가려는 자신을 어서 속히 비우고 
오직 예수로만 살아야 희망이 있다는 성령의 가르치심을
내 신앙과 삶에서 이루어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린다.

주님! 
그동안 주님을 많이 실망시킨 나의 모습이지만
나를 오랫동안 기다려 주시는 그 사랑을 힘입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살아야 희망이 있다고 하시는 
말씀과 성령의 가르치심을 내가 거절하지 않으며
사도 바울이 고백하는 갈라디아 2:20절이 
나의 신앙과 삶에서도 온전히 실현될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