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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마태복음 *

마태복음 6:16-24(3) 바른 금식관 바른 물질관

by 朴 海 東 2021. 1. 25.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금식

마태복음 6:16-24

 

절기상으로 일년 중 가장 추운 겨울의 한복판이 되는
1월 중순과 하순으로 가면서도 이상 기후 현상인지
요즘 며칠간은 봄 날씨처럼 온화하고 따뜻하였다 

어제 주일 오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한강 변에 나가보니 
강가에 얼어붙었던 얼음들이 다 녹아서 
청동오리들이 물질하며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도 보았다.

코로나 펜데믹 가운데 우울하게 지나가는 
이 겨울의 한복판에 들어서서 
요즘 조금 풀린 날씨와 
강 건너 보이는 작은 구릉의 언덕들을 바라보며
불현듯 이제 곧 다시 찾아올 봄을 그리며 기다리게 된다 

이어지는 주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은 
앞선 문맥에서 나타난 구제와 기도의 문제를 지나서 
이제 오늘의 말씀은 금식과 헌금에 대해서 
또는 물질 축척의 방향성과 목적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올바른 금식 [6:16-18]

율법서에서 명하는 금식은 일 년에 단 한 번 
대 속죄일에 금식하며 기도하라고 하셨다[레16:29-34]

그러나 성경에는 이처럼 죄와 관련하여 
자신의 슬픔을 표시하는 이런 금식이[민29:7-11]
다른 이유로써도 많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전쟁에 패했을 때[삿20:26]
사별했을 때 [삼하1:12]
슬픈 소식을 들었을 때[[느1:4]
전염병에 들었을 때 [욜1:14 2:12-15] 등 등
애통하는 마음을 금식으로 표현하였으며
신약으로 들어와 최초의 이방인 교회였던 안디옥 교회는
선교사 파송과 같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금식했다[행13:1-3]

그런데 이 같은 금식의 형태가 예수님 당시에는
하나님 앞에서보다 자신을 드러내는 종교적 행위로써
금식을 위한 금식 곧 굶식이 되어버렸는데
예수님이 바른 기도가 무엇인지 가르치시기 위해
한 바리새인인과 세리의 기도에서 비교하신 것처럼

당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앞에서보다는 
백성들에게 자신의 경건을 과시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하는 금식에서 
위선의 절정을 이루었다[눅18:12]

“나는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하며......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나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진정한 금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선포했는데 
이것은 정말 순수한 동기이든 불순한 동기이든
금식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는 사람들이
귀 담아 들어야할 올바른 진리의 말씀이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58:6-9]

 

 

2. 물질 때문에 
내 마음의 눈이 어둡지 않기 위하여 [6:19-24]

1)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6:20a]
2) 이렇게 해야할 이유로써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함께 따라가기 때문이다

3) 육체의 눈이 시력을 잃거나 실명하여 어두우면[6:22]
눈을 통하여 나아가는 방향성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하나님보다 우위에 둔 물질 때문에 [6:24]
네 마음의 시력을 잃어버리게 될 때에 모든 것을 잃게 되리라

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음같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으리라[6:24]

왜 천국백성인 성도들이 하나님과 물질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게 되는 것인가? 
이에 대한 결정적인 이유는 
나의 모든 것을 아시며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리에 재물의 신으로써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물질을 두게 되는 것같은데
이어지는 말씀(6:25-34)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하늘 아버지를 신뢰할 수 있는  이유들을 가르쳐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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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선교사의 길로 나선  
1997년 이후로 지금까지 살아오는 24년 동안
월급같은 고정 수입이 단 한번도 없는 가운데서도
물질적인 압박을 받지 않고 
일용할 양식에 부족함이 없이 살아온 것을 확인하게 된다 

여느 선교단체들이 가르쳐주는 방법처럼
교회나 지인들에게 선교 후원 모급을 한 것도 아니고
파송교회가 있어서 사역과 생활의 보장을 받은 것도 아니며
본래 유산으로 받은 재산이 많다거나
혹은 내가 벌어서 쌓아놓은 물질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내 생활의 보장은 물론이고 선교지 교회 설립 사역뿐 아니라
많은 나눔을 실천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을 돌이켜 보면서 
나도 모르는 가운데서도 내 삶 속에서 깊이 개입해주신 
주님의 손길인 것을 깨달으며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된다 

약 1년 전부터 퍼져나가기 시작한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선교지로 가는 길이 막히면서 선교 사역도 멈춰지게 되고
많은 선교사들이 돌아오게 되는 이 와중에 
그동안 선교 사역에 연결되었던 몇 교회들이 끊어지면서 
요즘 인터넷 뱅킹을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 내 모습을 보며
내가 주님 앞에서 마치 통장의 돈을 의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예전에 없던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게할 것을 마음에 새긴다

성경 모세 오경을 묵상하면서 인상 깊게 남겨지며
한편  미스테리한 의문으로 남아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물 한 방울, 쌀 한 톨 얻을 수 없는 
광야 40년 세월을 지나가면서 
만나와 메추라기와 반석의 샘물로 
생존을 이어간 것도 기적이지만 
그보다 더 광야 여정을 지나는 것 때문에 
농사나 경공업이나 그 어떤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무려 40년이나 이어진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된다. 

그들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내려 주신 
율법과 율법의 실천을 위해 공부하는데 시간을 쓴 것일까?
아니면 가까운 미래에 부딪히게 될 가나안 전쟁을 위해 
군사 무술 훈련을 하는데 시간을 보낸 것일까.......?
성경을 보면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은데 
그들은 그 많은 시간을 무엇을 하면서 보낸 것일까?

사람이 일이 없으면 그 자체로서도 
무기력 증에 빠지게 됨으로 일을 구하게 되는 법인데 
광야 이스라엘이 특별한 소일 거리 없이 
40년 세월을 지낸 것 그 자체로써도 기적 중의 기적(?)이며
이런 가운데서도 먹고 살아가는 생존에 대해서는 
아무 문제가 없이 하나님께서 보장이 되어 주신 것은 
아직까지도 나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선교지로 가는 길이 막혀서 특별한 일이 없는 요즘은  
주님께서 섭리 가운데 맡게하신 번역 일을 하고 있는데
꼭 나의 생계를 위한 수익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이렇게 할 일을 주심으로

생활의 리듬을 이어가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오늘 아침에도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나가 전망대에 올라
도도히 흐르는 강물의 흐름을 만끽하고 왔는데 
돌아오는 중에 한강과 연결되어있는 서울 식물원 안의 큰 호수는 
여전히 얼어있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무슨 차이인가 생각하니
흐름과 흐르지 않음의 차이인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은 또한 계속 물을 흘러내리는 갈릴리 바다와 
흘러 들어온 물을 가둬두기만 하는 
죽음의 바다로써 사해 바다와 같은 차이인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주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하늘 금고에 쌓는 자세로
나에게 있는 것이 많든, 작든 계속 흘려가게 하는 것은
나의 신앙과 삶에 생명력이 넘치게하며
얼어붙지 않는 신앙과 삶이 되게 하고 
주님의 무한 자원을 체험하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긴다.

주님! 
몸의 등불로써 눈의 시력이 밝아야 하는 것처럼
내 영혼의 등불로써 내 마음의 눈이 밝아
주님이 원하시는 삶의 목표와 방향으로 
흔들림없이 올곧게 나아가는 신앙과 삶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수익의 유무와 다소를 불문하고 
내 마음의 시선을 물질보다 주님께 고정하며 
지금 나의 현실에서 나에게 허락하신 이 일을
감사함으로 잘 이루어 갈 수 있게 하옵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