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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마태복음 *

마태복음 8:14-22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by 朴 海 東 2021. 4. 13.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마태복음 8:14-22

 

1. 가버나움으로 이사한 베드로의 집에서 

갈릴리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한 산에서 
천국백성의 헌장으로써 산상팔복의 선포와
산상수훈을 깊이있게 가르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산 아래로 내려오는 길에 가장 먼저
나병 환자를 만나 고쳐 주시고 이어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 한 백부장의 간청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죽어가는 하인을 살려 주셨는데 

오늘의 말씀은 벳세다에서 가버나움으로 이사한
베드로의 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다 

베드로의 집은 본래가 가버나움의 북쪽에 위치한
벳세다에서 살았고 제자 중 한 사람 빌립도
안드레와 베드로 형제와 같은 고향 친구이다[요1:43]

그런데 베드로는 벳세다에서 
언제 가버나움으로 이사한 것일까?
아마 그는 예수님이 세례요한의 체포 소식 이후 
본격적인 천국 운동 사역을 위하여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셨을 때[마4:13] 
자기도 예수님의 가족을 따라서 벳세다에서 
가버나움으로 이사한 것으로 이해하게 되는데 
이런 이사와 관련하여 예수님과 지근 거리에서
따르고자 하는 그의 헌신도를 엿보게 된다. 

내가 아는 한 권사님은 수십 년간 차를 몰고 다니다
나이가 들어 교회에 갈 때 차를 몰 수 없게 되자
아예 교회 근처로 이사를 하여 그의 남은 노년에 
주님을 더 가까이 섬기고자 하는 열의를 볼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내가 전도사 시절부터 알고 지낸 한 선생님은
자신이 교회 문제로 시험이 들어 괴로워하다가 
평소 존경해온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로 가기 위해 
신촌의 집을 팔고 멀리 상계동까지도 이사 가는 것도 보았다

집을 사거나 팔면서 남는 차액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헌신하고자 하는 일과 목표와 대상을 위하여  
기꺼이 이사도 불사하는 베드로를 닮은 이런 모습들은
주님을 감동 시키고 더 친밀함으로 나가게 하는 것같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집을 방문하시어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시며
베드로의 병든 장모의 손을 만져주시는 애정 표시로 
그의 열병이 떠나가게 하시며[8:15]
앓아누운 자가 일어나 수종 들게 하시는 것을 본다 

손은 아무나 잡아주거나 만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관계의 표시이며 우정 또는 사랑의 표시인데
주님께서 베드로의 장모에게 이런 표시를 하신 것은
그만큼 주님의 마음에 그녀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런 의미에서 같은 예수를 믿어도 
주님을 더 가까이 따름으로써 
주님과 특별한 관계가 되거나 
특별한 관계를 가지는 가정이 된다는 것은
은혜요 축복인 것을 보게 되는데 
나도 이렇게 주님께서 나의 손을 잡아주시며
내 아내나 자녀가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을 때
손을 만져주시는 애정의 표시로써 일으켜 주시는 
특별한 관계가 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그리고 이렇게 주님과 특별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멀찍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주님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베드로와 그의 가족처럼 집을 이사하면서까지도
주님과 가까이 있고자 했던 그 열성이 내게도 있기를 기도한다

적용하기

2.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Bore our diseases)  [8:17]

예수님은 베드로의 집에서 그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시고
그날 해가 질 무렵에는 소문을 듣고 그 집 대문간에 몰려든 
많은 귀신들린 자들과 병인들을 상대하게 된다.

이들이 해질녘에 몰려든 것은 
같은 내용을 다룬 다른 복음서에 보면
이 시각이 안식일이 막 끝나는 시점인 것을 보며[막1:21]
그날 안식일 낮에 주님은 회당에서도 가르치신 것을 본다.

이날 베드로의 집 앞에서 벌어진 황혼녘 치유현장을 보면
예수님은 말씀으로 귀신들을 내어 쫓아내시고
병자들을 다 고치셨다고 하셨는데[8:16]
여기서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으로 말씀을 사용하신 것과
또 찾아온 병인들을 선별 치료하신 것이 아니라
찾아온 병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All)” 고치셨다 했으니
이 축귀와 치유사역에서 예수님의 몸이 많이 피곤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무리하게 몸을 놀리신 이유에 대하여 
이 복음서의 저자 마태는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여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를 
성취하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8:17. 사53:4]

여기서 담당하고(Take up) 짊어졌다(Bear)는 것은
그가 귀신들린 자들을 회복시키시며 병인들을 고치실 때
단순히 말 한마디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시며 
자신의 것으로 떠안으시는 것으로 인해
그만큼 그에게서 기력이 빠져나가는 고통을 엿보게 하는데

병인들을 향한 그의 동정심이 끓어오르는 마음 때문에 
이런 모든 고통스러움도 넘어서시며
하늘 아버지께서 자신을 관통하여 나타내시는 능력으로
선지자의 예언처럼 아버지께서 자신을 보내신 사역을 
충실히 감당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제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나는 병인들을 볼 때에 혹은 귀신이 들렸거나 
기타 정신질환으로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볼 때에
그들의 치유를 위해 기꺼이 나의 기력을 소진해가면서까지 
나 자신을 치유 사역에 던질 수 있을지 자신을 돌아본다 

한 병인이 고침을 받을 때 그냥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시며 안으시고 떠맡으시는
주님의 사랑과 희생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을 가르쳐주는 
이사야의 예언과 이 예언에 대한 마태의 해석을 보면서 
오늘 내가 주님의 치유사역에 동참하고 싶어하는
나의 동기와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나 자신을 검검해본다 

주님!
병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시는 사랑에서
흘러나왔던 그 치유의 역사가 
오늘 나의 신앙과 삶에서도 나타날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