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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누가복음 *

[누가복음 7:11-17] 생명의 주 예수를 보라

by 朴 海 東 2022. 1. 26.

2022/1/25 [누가복음 7:11-17] 생명의 주 예수를 보라 오늘의 말씀을 읽으면서 크게 네 가지 주제로 나누게 된다 1. 생명의 주 예수[7:11. 14] 2. 죽어서 관속에 들어간 청년[7:12] 3. 슬픔에 빠진 어미(과부) [7:13] 4. 다시 살아난 청년 [7:15] 5. 그 현장에 있었던 많은 무리의 반응과 결과[7:16-17] 가버나움에서 백부장 집의 하인을 죽을병에서 건져주신 예수는 제자들과 또 그를 따르는 무리로 더불어 가버나움에서 남서쪽을 40여키로 떨어진 나인 성으로 향한다 옛 잇사갈 지파에 속했던 이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은 무슨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일까(?) 예수의 발걸음이 가는 곳은 생각 없이 무작정 가는 곳은 없었고 늘 기도 가운데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어서 매우 관심이 간다 발길이 닿은 곳은 나인이란 성인데 성 입구에서 성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예수를 따르는 큰 무리와 반대로 성안에서 성 밖으로 나가는 한 장례 행렬이 마주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예리한 영적 감성의 필치로 바로 나인이라는 성문 입구에서 생명과 사망, 희망과 절망이라는 두 행렬을 대비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이 마주한 장례 행렬의 사연인즉 한 과부의 외아들이 죽었다는 것이며 이 불쌍한 과부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듯 모든 소망이 끊어지는 슬픔이었다 1. 생명의 주 예수 이 책의 저자 누가는 마치 생명의 주 예수! 소망의 주 예수! 위로의 주 예수! 를 바라보라 하는 것처럼 장례 행렬을 마주한 예수의 행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7:13] 장례 행렬의 맨 앞에서 서서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과부를 보시고 예수의 마음은 연민과 동정의 마음으로 격동되셨는데 불쌍히 여기시는 그의 마음은 이 슬픔과 사망의 행렬을 그냥 지나칠 수 없으셨다 장례 행렬의 맨 앞에서 가고 있는 이 가련한 여인에게 "울지 말라" 하시는 이 위로의 말씀은 오늘도 더이상 길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슬픔 가운데 처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이 아침 성령께서 내 마음에도 닿아지게 하신다. 울지 말라! 예수는 나의 슬픔과 절망에 대해 함께 울어주시는 분이시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마리아의 눈물을 보시고 함께 우셨고 히브리서 저자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동정하시는 분으로 그 자신 역시 우리를 위하여 심한 통곡과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아버지 앞에 기도하신 분이신 것을 가르쳐준다[히4:15] 2)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맨 자들이 서는지라[7:14 A] 사람의 시체를 담고 있는 관에 손을 대는 것은 그 자체로써 율법을 범하는 것이며 스스로 부정하게 되는 것인데 예수는 이러한 금기사항을 초월하시어 스스로 부정함을 입으면서까지 죽은 청년을 향하여 다가가신다. 예수는 우리의 죄로 말미암은 부정과 죽음에 닿아지기까지 우리를 죄와 더러움에서 정결하게 하시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3)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7:14 b] 오직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말을 예수는 죽어 관속에 들어가 있는 청년을 향해 발하신다. 이 얼마나 권세 있는 자의 입에서 나가는 선포인가. 앞선 문맥에서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예수의 이 말의 권세를 알고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7:7] 라고 하였는데 지금 생명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 곧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는 인간을 사망 가운데 묶고 있는 마귀와 어둠의 세력을 향하여 사망을 풀어놓으라고 명하는 것이며 사망 가운데 들어간 그 청년이 이 권세의 말을 따라 일어서게 한 것이다. 누가는 이 놀라운 기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 것일까? 나사렛 사람 예수! 그는 우리와 같은 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와 있었어도 사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안에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을 이렇게 그 말의 권세를 통해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4)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7:15] -아멘- 죽은 사람을 살려낸 것을 보여주는 성경의 기록은 구약에서 두 번 신약에서 세 번이 나온다 구약에서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그리하였는데 그들은 한 가정의 죽은 아이를 살려낼 때 그들의 몸을 아이 위에 세 번 구푸려 가면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다소 시간을 들여서 살려냈는가 하면 예수의 경우는 여기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회당장 야이로의 딸과 후에 마리아 마르다 오라비 나사로를 살려내는 과정을 보면 다만 말씀 한마디로 살려내심을 본다 예수는 다시 살아난 청년을 그 어미에게 주셨다고 하였는데 이 짧은 한마디 구절 속에 그는 슬픔과 절망을 당한 가정에 위로와 소망을 주시며 우리들의 가정이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마음이 담겨있음을 본다. 5)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7:16] 나인이라는 성문을 놓고 성으로 예수를 따라 들어가던 사람들과 장례 행렬을 앞세우고 성문에서 나온 많은 무리가 뒤엉켜 이 놀라운 현장을 목격하고 절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그러나 아직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눈이 열리지 못한 무리들은 예수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사 위대한 선지자를 일으키셨다는 안목으로 기뻐하고 있음을 본다 어찌되었던 이 사건을 소문에 소문을 물고 나가면서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져나갔으니 지금처럼 매스컴에 없는 당 시대에도 예수는 전국적인 관심 인물이 된 것이며 이는 또한 그가 우리에게 진정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갈보리 십자가로 가는 길을 서서히 열어가고 있었음을 본다. 생명의 주 예수님! 당신은 우리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모든 고통과 비참과 죽음의 권세를 풀어 놓으시기 위해서 이 땅에서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생명과 위로와 소망이 되시는 주님을 의지하여 힘차게 살아가는 신앙과 삶이 되게 하소서